-
-
111년 후 이 자리에는 커다란 삼나무가 자랄 거야 - 2025 화이트 레이븐스 선정작, 2024 IBBY 벨기에 그림책상 수상작
쥘리 두인 지음, 노에미 파바르 그림, 이세진 옮김 / 아이스크림미디어 / 2026년 6월
평점 :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 따뜻한 연대를 경험한 에디트가 훗날 어른이 되어 더 많은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뭉클한 여정을 보여주는 책으로 세상을 바꾸는 더 큰 변화의 씨앗이 되는지 묵직한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111년 후 이 자리에는 커다란 삼나무가 자랄 거야』는 제목부터 마음을 오래 붙잡는 그림책이에요. 111년이라는 시간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아주 멀게 느껴지지만, 그 먼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다는 설정이 참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상상이 단순한 놀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조금씩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따뜻하게 보여 줍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양귀비꽃 마을’이라는 예쁜 이름과 달리 꽃 한 송이 없이 콘크리트로 가득한 낡은 아파트 단지예요. 하지만 에디트와 아빠 바시르는 그 회색빛 동네를 그냥 삭막한 공간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산책을 하며 쓰레기장은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간식거리 냄새를 맡던 곳이 되고, 낡은 창문은 위대한 여사제의 흔적이 남은 장소가 되지요. 평범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곳에 이야기를 덧입히자, 동네는 순식간에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모험의 공간으로 바뀝니다. 아빠의 상상력과 다정함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에디트는 잔디밭의 똥을 가리키며 “111년 후 이 자리에는 커다란 삼나무가 자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어른이었다면 웃고 넘겼을지도 모를 말이지만, 아빠 바시르는 딸의 상상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요. 오히려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움직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 책의 가장 따뜻한 순간처럼 느껴졌어요. 아이의 말도 존중받을 때 힘을 얻고, 누군가 믿어 줄 때 진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니까요.

작은 씨앗 하나가 에디트에게 오기까지 여러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과정도 참 좋았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어른들이 마음을 보태고, 그 마음이 릴레이처럼 이어져 결국 씨앗 하나가 도착하지요. 아주 작아 보이는 행동들이 모이면 누군가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 된다는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한밤의 비밀 작전처럼 부녀가 씨앗을 심는 장면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만들어 낸 작은 기적 같았어요.

하지만 이 책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삼나무는 천천히 자라고, 그 곁에 벤치가 놓이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비밀을 털어놓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따뜻한 중심이 됩니다.

무엇보다 에디트가 훗날 어른이 되어 더 많은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흐름이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어린 시절 누군가가 자신의 상상을 진지하게 믿어 주고 함께 행동해 준 경험이 한 사람의 삶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이의 상상은 작고 엉뚱해 보여도, 어른의 지지와 만나면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아이에게는 상상하고 꿈꾸는 용기를, 어른에게는 아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는 책입니다. 읽고 나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장소도 조금 다르게 보이고, 지금 내가 심을 수 있는 작은 씨앗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 큰 변화를 만들지 못해도 괜찮아요. 오늘의 작은 상상과 따뜻한 행동 하나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고, 더 넓은 숲으로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 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