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두운 외길이 쭉 이어진 골목길을 상상할 땐 으레 막걸리를 파는 주점이 따라다녔다. 그곳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몸을 못가누는 사람들과 그들이 벽에 손을 짚고 배출하는 온갖 오물들은 그 장소를 가장 잘 드러낸다 여겼고 거기서 아주 멀리까지 풍기곤 하던 찌링내와 그리고 울분이 담긴 고함소리는 아무 의미도 아무 즐거움도 없는 낙오자들의 표식이었다.
근데 모든 거리들이 깨끗해지고 모든 공간이 일률적인 규칙과 속물들로 가득차게 되니 나는 심하게 외로워지고 있다. 왜냐하면 최소한, 그 찌링내를 풍기던 사람들의 고함만은 진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정도의 진정성을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수단을 통해 말하고 들을 수 있을까
2. 「매미 울음」 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다. 매미 울음소리는 아주 선명히 들리지만 매미가 보이지 않아 그것을 잡을 수 없는 상태.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주 또렷하게 보이는 매미에 관해 쓰고 싶어졌다. 그것이 시가 될지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다.
3. 이오덕 선생님의 일기를 읽는 일은 아주 처참하고 아주 부끄럽고 아주 분노가 치밀며 아주 울고 싶어지는 일이다. 그 일기와 더불어 이 세상에 대한 나의 증오와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증오는 무섭도록 커지고 있다. 요즘 관련 사태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오덕 선생님의 아픈 외침처럼 ˝이 까짓 세상 빨리 망해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만 다행인 점은 내가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사실관계˝ 인과관계˝가 없는 일에 대해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 지금은 그 점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