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7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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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인이며, 외국어에 능한 작가도 하니다. 그런데,그의 문장은 번역투 문장, 수동형 문장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흡인력이 있다.
독서일기 2권까지는 출판을 염두에 쓴 글이 아니라는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야말로 그의 일기의 일부를 본다는 느낌이다.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정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리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작가에게도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작가에게는 여지없이 칼날을 들이대고, 그가 경멸하는 작가일지라도 뛰어난 작품에게는 여지없이 박수를 보낸다.
인간 장정일에게 배울 점 한 가지를 발견한다. 보통의 독자라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고 한번 물려본 독자라면 두 번다시 그 작가의 작품을 읽으려 들지 않는 게 보통이다. 나만 그러한가?
그런데 그는 한 번 실망한 작가의 작품을 읽은 후 씹고 난 뒤에 다시 그의 다음 작품을 숨가쁘게 읽어나간다. 물론 계속 씹어가면서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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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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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모두 네 명의 저자가 쓴 문학이론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것은 서정시를 제외한 문학장르에 대한 이론서이기도 하고 미학론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그리고 플라톤의 <국가>에서 문학과 관계된 대화의 장, 그리고 작자미상인 호라티우스-숭고함에 대하여를 번역해 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이 성격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얼핏 느끼기에 마치 헐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를 양산하는 영화인에게만 적용될 듯한 이론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잘 읽어보면 그가 주장하는 바에 공감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요컨대 그는 뚜렷한 줄거리 라인을 가지고 서사를 시작하라는 말이다. 하긴 우리가 말하는 거의 모든 고전들은 이 규칙에서 위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줄거리를 이야기함으로 이것이 어떤 작품인지를 바로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독창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주 짧지만 나름대로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호라티우스는 주장한다. 숭고함은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그는 실제 당대 작가들이 창작을 할 때 유의할 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는데, 오늘날 읽어보아도 공감이 갈만한 내용들이다. 이 이론들은 18세기 서구유럽의 문학에까지 중요한 문학이론서로 취급받을만한 것이었다. 다만 오늘날 기준에서의 수사적인 형태를 직접적으로 적용하기 불가능한 말들이 몇몇 발견되기는 한다.

 또한 호라티우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이상야릇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감정은 성격에 우선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성격의 묘사는 천박함만을 남겨줄 뿐이다 라고 못을 박는다. 현대 미학과는 상당히 배치되는 이론이긴 하지만 한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실제 현대작가들은 현실감을 얻기 위해서 웅장함과 장중한 아름다움을 많이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니까.

 특히 그는 당대의 중요한 작가들의 문장들을 비교하는데, 특히 호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실제 그가 인용한 글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가장 웅장하고 지속적인 긴장을 주는 글들은 호머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문장을 읽고 난 뒤에 번역자의 각주를 읽어보면 모두 호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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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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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고, 설령 악인이라 불리울 만한 이들도 너무나 빠른 속도로 선을 배워 나간다. 이상주의자라기보다는 낙관주의자에 가까운 시각이다. 작중화자도 화자의 주변인물도 어찌나 동정심이 많은지 그려나가는 인물의 내면은 실세계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선이 과장되어 나타난다. 반면. 악은 텍스트 내부에서는 너무 미미한 형태로서 전달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현실 세계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이런 작품을 읽는다면 얼마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무척 아름다운 인간의 내면이 그려진다.

우리들은 아이들을 흔히 천사라고 비유하기 좋아하는데, 그건 아이를 완전히 모르기 때문이기나, 이제는 자신이 유충이었다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정심이 별로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할 줄 모른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은 사랑, 우정, 동점, 자애 같은 격조 높은 감정보다 불만이나 공포와 일차적인 욕망부터다. 쉽게 말해서 아이는 꼴리는 대로 행동하고, 머리가 좋으면 좋을수록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하는 특성도 있다. 교육에 의해서 아이들은 바람직한 인간으로 사회화되어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낙관주의와 이상주의는 구별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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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 돈쥬앙 1
아폴리네르 지음 / 픽션뱅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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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전래되던 '돈 주앙'과는 무관하고 이야기의 무대 역시 프랑스의 시골에서 시작된다.
샤트트르가 한 외설의 정의를 잠깐 떠올린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외설관을 제시했다. 정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떠한 행위도 외설이 될 수 없고, 바람이 불어 치마가 당겨 올라가서 여성의 팬티가 우연히 드러나는 장면들처럼 비일상적인 장소에서 일어나는 행동은 외설에 속한다고 정의했다.
이 작품은 외설적인 면이 적지 않다. 구조 또한 망사형 구조로 되어 있다. 실제 포르노 영화를 보면, 망사형 구조로 되어 있다. a와 b의 관계가 a와 c의 관계로 바뀌어도 스토리 진행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징은 포르노는 로맨스 소설보다 인간의 관능을 자극하지 않는 데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돈 주앙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완벽한 망사형 구조가 될 수는 없었고, 파장형 구조가 되어 버렸다. 주인공 돈 주앙은 기관단총에 탄창을 끼운 다음 뭇 여자들에게 무차별 난사를 하기 시작한다. 행위의 필연성이나 개연성이 허술하다는 점은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이 인물의 욕망(심리)이나 철학 따위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 나를 심하게 당황시켰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았다면, 로브그리외가 '질투'를 썼을 때의 문체로 '돈 주앙'을 그려나갔다고 생각해 보시길...
아직 내가 그의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아폴리네르의 시를 읽고 느꼈던 호감이 많이 반감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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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변현태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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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 포미치는 악의 한 가지 전형이다. 무언가에 경도--종교, 정치, 이데올로기--된 인간은 항상 주변부를 황폐하게 하거나, 어이없는 죄의식을 심어넣고, 존재하지 않는 불행을 인지하게끔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감염된다. 그렇다면 과연 포마 포미치(오삐스킨)은 과연 그가 그리고자 한 진정한 악을 대변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우리가 정말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안개처럼 흐릿한, 주변부에서 존재할 것만 같은, 하지만 쉽사리 인지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악을 느끼기 시작할 때이다. 포마의 형상은 지극히 단선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도저히 현실에 실재하는 인물과는 동떨어진 인물로 보인다. 마찬가지 이유로 예고르 역시 지나칠 정도로 착하다. 알료샤나 뮈쉬낀이 가지고 있는 불가해한 행동이나 태도가 전혀 없다.
2.샤샤, 일류샤 두 인물이 모두 필요했을까 하는 문제,
3.아무리 양보한다고 해도 쁘라스꼬비야 일리니츠나는 쓸데 없는 인물이다.
4.궁핍한 환경(가난한 아이에서 가난한 처녀로, 가난한 처녀에서 가난한 노처녀로)에서 살아간 여자의 모습은 <<백치>>의 나스따샤의 희화화된 모습이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그의 작품들 중 너무나 미끈덩하다. 문장도 깔끔하고, 상황도 아주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인물의 행동, 동선도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고, 예의바른 인물들로 가득차 있다. 타인의 삶의 영역에 침입하려 들지 않는다. (조금 의아스러운 한 부분만 지적한다면, 화자는 삼촌인 예고르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예고르는 자신의 어머니를 화자에게 소개시킨다. 이게 말이 되는가? 삼촌의 어머니라면 화자를 예고르보다 훨씬 잘 알고 있을 텐데..)
후기 대작으로 갈수록 그의 문장은 점점 그로테스크해지고, 우연적, 작위적 상황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인물을 한 장소에 집결시킨다. 한때 이 작가가 폭발적인 감성을 가진 반면, 논리적 감각은 좀 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제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다. 그런 의심을 종식시켜 준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소설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작품이 아니라면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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