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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1977년 대학에 입학한 주인공의 시점에서 1977년과 2017년을 오가는 이야기이다.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여대의 학생이 된 김유경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고
그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기억이 책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40년이 지나 그 중 한 친구가 낸 소설을 읽다가 상당부분이 1977년 당시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고 그 책에 내가 기억 하는 내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의 나를 읽게 된다. .
빛난 나의 과거.
나도 빛이다.
책의 주인공이 대학생이 된 1977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다. 주인공과 나는 20년이라는 적지않은 나이차이가 나지만 내가 대학 신입생 때 기숙사에서 살던 기억, 내 대학 시절의 여러 추억, 그리고 이젠 중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대학생일 때의 기억이 더 많은 내 친구들이 책 속에 있었다.
작가님 팬이 되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유일하게 읽은 은희경 작가님 의 책이었고 그 땐 글자를 읽는데 연연했던 오래 전이라 책에 대한 감흥이나 기억이 없다.
이 한 권으로 작가님 책은 그냥 믿고 보는 걸로 정해버렸다.
역시 한국소설이 좋다.
예전부터 한국소설은 나와 정서가 맞는다는 이유로 좋았다. 이번 소설은 워낙 오랜만에 읽는 한국소설이라 더 행복했고, 거기에 더해져서 번역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작가가 쓴 글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 시절의 인생이 더 나았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 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생을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나에게만 유독 빛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면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나의 수긍과 방관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 p 278)
도대체 이 망할 장편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아시는지? 끝난 소설은 무조건 해피엔드이다. (p 342 작가의 말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