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12시 반 쯤 사무실 문을 노크하며 바해가 들어온다.

'시중! 바뻐'  바해가 소파에 앉는다.

어서와. 그래 잘 쉬었어?

어~

연락도 없이 왔어?

그럼 연락하고 와야 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이따 아름도 퇴근하고 온다 하니깐 우리 어디로 모실 건지 생각이나 해?

아름하고는 연락을 자주하나 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름이가 나한테 전화를 자주하는 편이지.

. 오늘 3시쯤 개인상담 있는데 해 볼래?

. 해 볼게. 어떤 사람인데?

대학생 여자인데 어제 와서 오늘 오겠다고 예약하고 갔거든.

바해가 청소년 쪽이니까 상담해 주면 좋을 것 같아. 점심 안 먹었지?

.

그래 우리 점심부터 먹으러 가자.

두 사람은 상담소를 내려와 일본식 우동 집에 들어가 우동과 튀김을 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엄마하고는 잘 지내는 거야.

그렇지 뭐. 엄마는 직장 다니며 동생하고 혼자 고생하며 사는 거 같은데 아빠는 다른 여자와 재미나게 사는거 같아. 가보니까 엄마보다 더 잘 해놓고 살더라고. 그걸 보고 속상해서 혼났어. 엄마는 그래도 동생과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사는데 말이야. 그래서 생각했지. 그때 내가 중국으로 떠 난 것이 백번 잘 한 일이구나!  말이야.

그래. 바해는 인간 승리 한 거야. 대단하다 내 친구.

바해는 시중의 말이 듣기 좋은지 피식 웃는다. 그렇게 둘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 왔다.

시중과 바해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타 앉아 마신다.

이윽고 시중은 집단상담이 2시에 있어 사람들과 방으로 들어가고 바해는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다.

폰이 울려 댄다. 아름이다.

여보세요?

언니! 나야. 점심 먹었어?

. 우동 사주더라?

에이 좀 맛난 것 사주지!

아니야. 저녁에 또 있잖아.

맞아. 언니 우리 오늘 오빠에게 맛난 것 사달라고 하자.

알았어. 이따 끝나고 보자?

. 언니.

250분 쯤 어떤 아가씨가 센터에서 실습하고 있는 대학원생 김소랑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소랑은 시중이 일러 준대로 바해에게 상담 받을 아가씨를 소개 시킨다.

바해는 아가씨와 인사를 하고 개인상담실로 같이 들어가 앉는다.

아가씨의 인상은 수더분하고 키도 아담하다. 바해는 아가씨가 기록한 신상기록과 설문지를 살펴본다.

우리 처음 보는데 소개부터 하며 시작 할까요?

자그마하고 둥그런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바해는 내담자를 웃음으로 보며 말을 한다.

나는 이 바해 라고 해요.

. 저는 신 정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하는 상담 내용은 비밀이 보장 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정균이는 조금 긴장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정균씨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바해는 말을 하고 차분히 정균의 머리부터 눈빛까지 하나하나 스캔을 하기 시작한다.

정균은 아래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잠간 말없는 정승처럼 있다가 준비가 되었는지 바해를 보며 입을 연다.

저는 불안한 마음이 늘 저를 괴롭혀요. 엄마, 아빠가 내 곁을 떠나면 어떻게 하지. 또 내 형제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늘 저를 괴롭게 해요.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겁이나고 두려워요.

바해는 들으며 정균의 손이 꼼지락 거리며 눈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 쫓기듯 말을 하는 동안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반응을 본다.

. 그렇군요. 그러면 가만히 자신이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살펴볼래요? 천천히, 아주 조용하게 자신이 왜 그러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정균은 바해의 침착하면서도 부드러운 말에 잠시 마음을 추스른다.

이윽고 정균은 몸이 좀 풀리는지는 손의 꼼지락거림을 멈추며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더 깊이 풀어 놓는다.

저는 4형제가 있는데 제가 셋째 에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셔서 늘 우리는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는 때가 많지 않았어요. 아침, 저녁으로 일찍 나가시고 늦게 들어 오시니까요.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저는 부모님이 힘들다고 잠시 막내 동생과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었어요. 그때 저는 부모님과 떨어지는 것이 싫어 막 울기도 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 댁에 적응을 하며 살았어요. 하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 옆에서 엄마 가슴을 만지며 자는 것을 못하니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러다 영원히 엄마가 내 곁을 떠나면 어떻게 하지하는 마음이요.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그 큰 집에 나만 남겨두고 오후에 장을 보러갔다 오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집을 보라며 나가시는 거여요. 그래서 저는 네하며 그 큰 집에 혼자 있었어요.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할머니와 동생은 안 오는 거여요. 그 때부터 불안해지며 저도 모르는 공포가 밀려오는 거여요. 그러면서 갑자기 제 생각에 들어오는 불길한 마음은 할머니도 날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나! 엄마도 날 버릴 것 같은데 할머니까지 나를 버리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몰려오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그 큰 집 대청마루에서 목이 터져라 막 울었어요. 그렇게 울고 있는데 내 울음소리를 밖에서 지나가는 이웃 아줌마가 들었는지 문을 열고 들어와 왜 우느냐고 하며 나를 안아 주며 할머니는 어디 가셨냐고 물으며 달래 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내 옆에 누가 없으면 불안해 지고 혼자서는 못 살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요.

말을 하는 내내 정균은 눈이 커지며 눈물이 글썽 거린다.

그때가 정균씨 몇 살 때 이었나요?

7살 때 인 것 같아요.

참 힘들었게네요.

엄마와 떨어져 지낸 그 시간들이 그 어린 나이에 정균씨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또 그 큰 집에 어둑해지는 때에 홀로 있었다는 것은 공포스러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겠죠.

바해의 말을 들으며 정균은 고인 눈물을 휴지로 닦으며 코에 콧물을 밀어낸다.

지금은 생활하며 어떤가요?

지금도 아무도 없는 공간에 가면 저도 모르게 불안해 지고 가슴이 뛰어요.

바해는 정균을 안락 의자에 안힌다.

잠시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아 보실래요. 그러고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 있는 거기에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 볼래요?

정균은 무서운지 몸을 의식적으로 움츠리며 말을 한다. 아무것도 안보여요. 불안하고 무서워요.

무서워 하지 마시고 컴컴한 저 끝에 문이 하나 보일 거여요. 천천히 천천히 한발 한발 발을 뛰면서 문 쪽으로 걸어가 보세요.

정균은 손을 꼭 쥐며 힘을 주고 눈을 감은체로 발을 뛰고 있다.

잘 걸어가고 있나요?

. 그런데 너무 무서워요. 선생님.

바해는 천천히 말을 한다.

내가 옆에 있으니까 두려워 말고 문이 보이는 쪽으로 천천히 끝까지 걸어가 보세요.

정균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문까지 다 걸어갔나요?

. 선생님.

문이 보이나요?

네. 큰 나무 문이 보여요.

그러면 가만히 손을 뻗어 문을 천천히 열어 보세요.

정균은 망설이 듯 눈을 더 꽉 조이며 말을 한다.

선생님. 못 열겠어요. 열면 내가 떨어질 것 같아요.

정균의 눈에 눈물이 고여 흘러내린다.

바해는 천천히 부드럽게 정균에게 다시 조용히 말을 한다.

불안해하지 말아요. 내가 옆에 있으니까요. 그 문을 열어서 정균씨가 만약 떨어지면 내가 잡아 줄게요. 용기 내어 문을 아주 천천히 열어 보세요? 아마 그 문을 열면 어둠은 없어지고 빛이 보일 거여요. 그 빛 속에 누가 있는지 보게 될 거여요.

정균은 바해의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에 용기를 내며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며 문을 천천히 열어본다. 문은 녹이 슬었는지 삐거덕 하며 정균의 손에 밀리며 소리가 난다. 순간 문이 열리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정균을 비친다. 눈이 부시다. 그런데 그 빛 속에 엄마와 가족들이 서 있어 자기를 보면서 환한 웃음으로 손을 펴 반기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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