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름은 저녁 6시까지 상담소에 도착하여 30대로 보이는 여자와 개인 상담실로 들어간다.

아름은 차트를 살피더니 시작하기 전 우리 부를 닉네임부터 정할까요!  말을 한다.

아름은 개인상담에서 꼭 닉네임을 정하여 내담자를 잘 묘사하는 상황을 만든다. 왜냐하면 더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배려하고 상담하는 본인도 내담자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일종에 스킬을 쓴다.

생각해보세요. 본인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닉네임이 무엇인지.

내담자는 좀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아름에게 말을 한다.

정했어요. 선생님.

아름은 차트를 보다 고개를 들어 보며 그래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해 보세요.

으로 할게요.

멍이요? , 그래요. 알았습니다.

아름은 기다렸다는 듯 무슨 촉을 느꼈는지 얼른 말이 나가며 그럼 저는 안심으로 하겠다며 말이 나간다.

지금부터 저와 하는 상담 내용은 철저하게 비밀보장 된다는 것 알아두세요.

시작해 볼까요?

멍은 한 참을 밑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안심인 아름도 내담자의 모든 걸 수용해 주겠다는 눈빛으로 멍을 보고 있다.

멍이 고개를 들며 천천히 입을 연다.

저는 올해로 결혼 3년차이어요. 결혼하기 전 까지는 직장 생활하며 평범하게 잘 살았어요. 그런데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 했어요.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결혼 초기부터 남편이 잘 대해 주었어요. 그런데 1년 넘어가면서 아이가 생겨 아이를 낳고 사는데 갑자기 남편하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허탈한 생각이 나고 아이 보는 것이 귀찮고 그냥 아무도 없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왜 내가 사는 거지, 이런 생각이 밀려오면 모든 것들이 그냥 쓸모없고 사는 자체가 무의하게 느껴져요. 아이를 보다가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멍해지는 거여요. 아이의 재롱에도 그냥 귀찮은 생각만 들고요.

남편은 잘 대해 주시나요?

. 남편은 결혼 할 때부터 저 만 바라보며 제가 제일 좋다고 이야기해요. 아이도 잘 봐 주고 집에 오면 집안일도 잘 도와 줘요.

그럼 남편 분 때문에 그런 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네요?

.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런 증상이 멍을 괴롭힐 까요?

멍은 말없이 바닥을 보며 미간을 약간 움츠리며 생각에 잠긴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갔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더니 거기에 엄마가 바르게 미동도 없이 혼자 누워 계시는 거여요. 그래서 저는 들어가 앉아 엄마 나 왔어!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려고 소리치며 엄마 팔을 잡았어요. 그런데 그때 내 손으로 느껴지는 전율은 나무처럼 딱딱한 엄마 팔이었어요. 그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어요. 저는 당황하고 놀라 엄마! 왜이래, 일어나!  흔들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꼼짝을 안하시는 거여요. 그래서 순간 무섭고 겁이나 엄마를 재차 흔들었지요. 그래도 미동이 없어 울면서 엄마 코에다 귀를 갔다대 보고 가슴에다 갔다 대보고 했어요. 아무 움직임이 없어 놀라며 그때서야 엄마가 돌아가신 줄 느꼈어요. 그때부터 그 충격이 저를 지금까지 괴롭히는 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는 엄마가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엄마가 내 앞에서 죽어 있었다는 충격이 지금까지도 무슨 일이나 또 날이 어두워지면 더 생각나고 무섭고 괴로워요.

그럴 땐 어떻게 대처를 하나요?

남편과 아이 없는데서 그냥 아무도 모르게 울어 버려요.

그럼 마음이 좀 후련해지나요?

. 조금은 후련해지는데 또 허무감이 저도 모르게 막 밀려와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오는 때가 많아요.

그렇군요. 정말 힘드시겠네요.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과 또 그 현장에 혼자 있었으니 그 충격이 너무 크셨겠네요.

멍이 그때서야 온 몸을 떨며 눈에서 비 오듯 눈물이 떨어지며 엉엉 댄다.

좀 울고 난 멍을 보며 안심은 말한다.

멍은 분리불안장애도 좀 있으신 것 같아요. 분리불안장애는 부모 혹은 다른 양육자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해 심한 불안과 고통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만 1세 정도의 모든 아이들에게 나타나고, 그 후 점차 사라지지요.

하지만 멍과 같은 경우에 초등학교 2학년 때 한참 엄마와 애착관계가 활발할 때 인데 그 시기에 직접 엄마의 죽음을 아무도 없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 목격했으니 그 충격이 어떤 것으로도 비교가 안될 만큼 크고 심했을 겁니다.

엄마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그것도 엄마의 죽음으로 엄마와 분리됐으니 그 충격이 누구보다 더 심했겠지요. 이런 것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혹시 생활하시며 복통, 오심, 구토 등 소화기계통의 증상을 느낀 적이 많나요? 아니면 심장박동의 불규칙이나 어지럼증, 기절, 질식감등의 증상을 겪은 적이 얼마나 되는지 말씀해 주실래요?

멍은 안심의 말을 들으며 대답한다.

평소에 그 어릴 때 일이 떠오르면 저도 모르게 구토를 해요. 또 소화가 안 되어 약을 먹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심장이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두근두근 거리는 때가 많아요. 이런 것들이 제가 어릴 때 겪은 그일 때문에 나타나는 건가요?

.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멍의 정황들을 살펴볼 때 그럴 수 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멍은 자신을 바꿔 보려고 여기까지 오셨으니 그 절반은 고치신 것으로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대개 이런 경우에는 우울증으로 빠져 심각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마치지요.

저하고 일주일에 한번 이 시간에 오셔서 6개월 정도 상담을 받으시면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여기서 개인상담을 받으시면서 시간이 되시면 원장님이 하시는 사람들이 모여 하는 집단상담도 받아 보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알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름은 상담을 마치고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핸드폰이 드르륵하며 진동을 한다. 발신 표시를 보니 엄마였다.

아름은 전화를 받는다.

. 엄마 왜? 아름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저녁에 집으로 빨리 오라는 것이다. 소아과 의사인 김 교수 아들을 초대해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 오늘도 늦게 오거나 안 오면 아빠가 가만 안 있는 다는 아빠의 말을 전하는 엄마다.

아름은 전화를 받으며 짜증을 내며 알았어 간다 가!  폰을 누르며 끈다.

그때 시중도 상담을 다 마치고 사무실 문을 열며 들어왔다.

아름 상담 잘 했어?

시중의 말에 정신없이 대답을 한다. 어 잘했어.

오빠! 나 오늘 집에서 아빠가 빨리 오라하는데 먼저 가볼게.

무슨 일인데? 시중은 손가방을 챙기는 아름을 보며 묻는다.

어 우리 아빠 내가 말해서 알잖아. 좀 그렇다고!  아름은 손을 저으며 내일 보자며 사무실을 나간다. 손을 흔들고 나오는 아름의 마음은 시중에게 미안하고 속상해서 가는 내내 자신의 갈등을 뿌리치려 고개를 젓는다.

이러다가 정말로 오빠와 헤어지면 어떻게 해야 되지!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오빠 뿐이야를 아름은 되새겨 본다.

오늘은 부모님께 말하자!  단단히 결심을 하며 집으로 향해 간다.

한편 시중은 상담소를 나와 차를 몰고 한적한 한 강 둔치로 가서 차를 세워놓고 맑게 떠 강을 비추는 반달을 보며 천천히 걷는다. 걸으며 생각한다. 아름이가 아직까지 나를 부모님에게 소개 안 시키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아름이도 낼 모래면 서른인데. 아름이가 나를 떠나면 어떻게 해야 되지. 난 아름을 정말 사랑하는데 세상에서 나에게 여자는 아름뿐이 없는데!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보며 생각에 잠긴다.

시중이 장애인이지만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시중을 좋게 봐주고 믿어준 덕이라 생각하는 시중은 또 하나가 자기 옆에 항상 함께해주고 힘을 주는 아름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아름이 시중 곁을 떠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다.

시중은 아까 아름이가 아버지 때문에 가야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아버지 때문에 아직까지 자기를 소개 못시키는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결이 일렁이는 한강 둔치 난간에 앉아 하늘을 본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맥이 빠지며 생각에 젖는다. 자기가 아무리 성공하고 좋게 살아가려고 해도 자신의 몸이 장애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 반달에 실어 본다. 한 숨만 나온다.

내가 왜,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나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죄가 많은 인간이기 때문인가. 그래서 이렇게 태어나 살 수 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옛날 중국 여행할 때 말한 그 할아버지 말대로 귀신이 장난쳐서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 시중은 답답해하며 아무도 없는 한강 둔치에 앉았다 벌떡 일어나 달과 강물이 자기와 친구가 되어주는 이 어두운 곳에서 힘주어 있는 힘껏 소리치며 갯기를 부려본다.

아~~~이 지랄같은, 야~~~~~ 엿같이 너 잘났다! 손을 힘껏 뻗어 휘저어 본다.

그러고 철퍼덕 앉아 강을 바라보는데 자신의 귓전에 속삭이듯 잔잔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시중 힘들지. 아마 힘들거야. 그렇다고 그렇게 욕 하지 마. 너에게 욕하면 되겠어! 넌 세상에 귀한 사람, 감사함을 잊지 말고 살아야해. 세상엔 너 같은 사람도 있지만 너보다 더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살아가는 데는 육체의 온전함이 다가 아니야. 그 편견을 너가 깨뜨리며 아름답게 살아가면 되는 거야. 너가 지금 하는 것처럼만 말이야. 삶이란 그냥 있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하지 않니?. 그리고 너가 늘 말하잖아. 나는 부랑아라고. 몸이 그래서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기를 포기하며 너만의 방식으로 그냥 이 땅에서 김삿갓처럼 떠돌며 아름답게 살다 죽겠다고 말이야!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