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도서관에서 아름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진동을 한다.
북경이라 문자가 뜬다.
아름이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바해의 이름을 북경으로 바꿔놓았다.
시중은 얼른 폰을
들고 아름에게 손짓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바해가 반갑다고 이름을 폰 너머로
부른다.
시중 나야 바해!
시중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듯
전화를 받는다.
바해!
잘
지냈어?
바해가 말을 받아 말을
한다.
잘 지냈지.
서울로 물건 하러
왔다 시중에게 전화 하는 거야.
그랬구나.
언제
가는데?
내일 저녁 배로 가게 될
거야.
시중 오늘 시간되면
저녁에 인천 연안부두로 올래?
시중은 좀 망설이더니 그래 그럼 내가
6시까지 그리로 갈게.
그래.
그럼 이따
봐.
시중.
시중은 바해의 전화를 끊고 바해와의 추억을
잊고 있었던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시중은 그 일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담고 있다.
어쩌면 아름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아름에게서 조차 느낄 수 없었던 사랑의 감정을 잊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안으로 들어와 아름 옆에 앉자 아름이가
‘누구야’
묻는다.
북경에서 만난 친구인데 서울 왔다고 오늘
저녁에 한번 보자고 그러네.
아름은 작은 소리로 옆구리를 건드리며 어떤
친구냐고 캐 묻는다.
시중은 아름의 집요함에 그냥 여행하며 만난
친구라고 말이 나갔다.
오늘 어디서 만나려고?
인천 연안부두로 오라는데 자기가 한턱
쏘겠다고.
아름의 결정적 한마디에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여자?
남자?
얼버무리듯 남자라고 말이
나갔다.
그때서야 아름인 아 그래. 오늘
좋겠네! 입을 삐쭉 거린다.
아름의 눈빛에 잘못하다 걸린 사람처럼 시중은
자신도 모르게 겸연쩍게 눈으로 웃는다.
아름은 시중이 무슨
말을 해도 믿는다.
그런 아름에게
바해와의 일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마음이 들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름과 헤어지고 인천 연안부두 근처 공원으로
가서 바해에게 전화를 했다.
바해가 연안부두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바해의 모습은 변함이 없이 늘씬한 키에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화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화장 끼 없는
얼굴에 수수해 보였었다.
바해!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바해와 악수를 하며
물었다.
잘 지냈지.
시중도 잘
지내지?
안 본 사이에 더 멋져
졌는걸.
바해도 시중을 보며
웃는다.
우리는 그렇게 반갑게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치 자기의 감정을 들키기라도 할 것처럼 탐색 아닌 탐색을 하며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마주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바해가 된장찌게를
시키기에 나도 같은 것을 시켰다.
시중 나 대학에
들어갔어.
시중은 바해의 말에 놀라는 듯 눈이
커지며 진짜 입학했구나?
잘했다.
축하해.
무슨 과에 들어갔어?
시중의 말에 중어중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시중이 상담을 통해 자신 있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나도 상담학과에 입학했어.
바해의 말에 시중은 한번 더 놀라며 와
그래?
뜻밖인데.
잘했다.
상담 공부하면 좋지.
그러지 않아도 그때
바해의 말을 들으며 내심 바해도 상담을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던.
잘
됐다.
아참 그럼 문학은
포기하는 거야?
아니.
그것도 계속
배워야지.
문학은 복수 전공으로
배워 볼까 생각 중이야.
그 사이에 밥이 나왔다.
상담 공부할만해?
아니.
어려워.
왜 울 것도 많고
머리가 아파!
가뜩이나 난 중국어로
공부하고 있잖아?
그래 바해 대단하다.
장사하랴,
그 힘든 중국어
문자로 상담까지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야.
밥을 먹는 내내 우리는 그 때의 일은 우리와
상관없이 잊어버렸다는 식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래 만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와 바다가
보이는 공원으로 가 캔 커피를 들고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초저녁 봄바람이
나플나플 우리의 코를 자극하며 시원스런 바다와 잘 어울린다.
바해가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캔을
이리저리 양손 바닥으로 비비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바해를 보며
시중은 말을 건넨다.
엄마한테는 갔다 왔어?
바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말에
‘어’ 주춤하며 말을 한다.
어.
안
갔어.
내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말을 하러 가야 되는데 그냥 가기가 싫더라.
가봤자 분위기 안
좋을 게 뻔 한데 하며 시중을 본다.
그래도 만나고 오지
그랬어.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
아냐?
나중에 말해도 돼.
그런 바해가 안쓰러워
보인다.
중국에서 돈 잘 벌고
이젠 대학까지 들어갔는데.
어찌,
아직은 그래도
자랑하고 싶고 내세우고 싶은 나이 인데 그 모든 걸 자기 혼자 감내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날이 어둑해진다.
바해가 옆에서 시중을 보며 말을
한다.
오늘 술 한 잔 할래?
좋지!
그럼 아까 밥은 시중이 샀으니까 술은 내가
살게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는 바해에게 시중은 말을
한다.
그럼 오늘은 바해가 한국 왔으니까 막걸리
어때?
먹어봤어?
난 막걸 리가
좋거든. 웃었다.
그런 시중을 보며 좋아,
오늘은 시중이가 먹는
막걸리로 먹어 볼까?
그렇게 우리는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신포동
먹자골목거리로 택시를 타고 갔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거리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걸으며 둘러보는데
지붕을 볏짚으로 둘러놓은 것처럼 그림을 크게 붙여 놓은 옛고을주막집이란 간판이 보인다.
바해!
저기로 가
볼까?
어.
진짜 막걸리 집
같네.
바해가 미소 지으며
‘좋아 가보자’
한다.
우리는 어둠 안으로 빛이 사라짐을 등에 지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동동주와 파전을 시켰다.
나 막걸리 몇 번 안 먹어 봤는데 오늘은
시중이 먹는 걸로 특별히 먹는 줄 알아?
바해가 나에게 다시
말을 한다.
왜!
우리 그때 사막에서
아이락 먹어 봤잖아.
그 맛이랑
똑같잖아?
시중은 무심결에 사막이야길
꺼냈다.
바해가 눈이 동글해 지며 겸연쩍어
‘아 그때’ 말끝을 흐리며 ‘맞아’
한다.
둥그런 항아리에 막걸리가 가득 담아 조그마한
쪽박과 함께 양은 잔이 나왔다.
시중은 쪽박에다 막걸리를 바해의 잔에 떠
주며 자기 잔에도 채운다.
그 사이에 파전도
나왔다.
바해!
우리 건배
할까?
바해의 사업과 상담학과에 입학한 것을
축하하며! 말을 하고 잔을 부딪치고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고마워!
시중 이렇게 나를
축하해 주는 사람은 시중 밖에 없다.
그래.
나는 바해를 몇 번
안 봤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멋지고 최고라고 생각해.
막걸리의 달착지근한 맛에 목 넘김을 기분
좋게 해준다.
바해와 그렇게 여행을
하고 헤어진 지 3개월 만에 만나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중은 바해를
잊으려 했다.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나일론 줄과 같이 끈질 긴 것이어서 한 쪽이 일방적으로 잊으려,
끊으려 해서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해가 어느 정도 술기운이 도는지 말을
한다.
시중!
나 너가 보고
싶더라.
바해의 말에 시중은 막걸리를 먹다 하마터면
막걸리를 쏟을 뻔하며 멈칫 ‘그랬어!
고맙네’ 말이 나간다.
너가 보고 싶었다고.
시중이 못들은 것처럼 하자 바해는 재차
강조를 한다.
나 그때가 처음이었어.
시중은 바해의 주저 없는 말에 내심 놀라며
바해의 눈을 보았다.
시중도 속으로 ‘나도 그때 너 하고의 그일 잊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지’
어두운 조명아래 슬픈 사슴처럼 시중을
바라보는 바해를 보고 있다.
시중!
왠지 모르게 난
너에게 마음이 간다.
우리가 그때 그거
해서가 아니라 그냥 시중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좋아지게 되더라.
바해의 적극적이고 일방적인 말에 시중은
당황하며 토끼처럼 바해만 바라보고 있다.
시중!
좀
놀랐지?
웃으며 잔을 들어
부딪친다.
얼떨결에 듣는 바해의 말에 시중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한다.
바해는 그 말을 하고 쑥스럽다는 듯 막걸리를
마신다.
바해!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니 고마워.
하지만 나는
장애인이고 학생이잖아.
바해는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고 사회인인데 나 같은 사람 말고도 더 좋은 사람이 있을 텐데.
바해가 시중의 말을 듣더니 장애인이
어때서!
그렇다고 시중 못하는
거 있어! 없잖아?
나는 중국에서 장사하며 여러 사람을
봤어.
몸이 멀쩡하게
생겼어도 자기 구실을 못하고 그냥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런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올바르고 깨끗한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에게
비교할 건 못되지만 시중은 몸이 약간 불편할 뿐이지 할 건 다하며 자기만의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가려고 하잖아?
바해의 말은 진지하다.
바해의 말을 들으며 이렇게 자기를 한
인간으로 온전히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워한다.
시중!
왜 내말이 부담이
돼!
아니면 그 때
사귄다는 그 아가씨 때문에 그래?
바해의 말은 적극적이고
직설적이다.
시중은 바해의 말에 술이 확 깨는 것
같다.
바해에게 천천히 말을
한다.
바해 정말 고마워.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바해라니 너무 좋아.
지금
말하지만.
나도 바해를 처음
배에서 만난 그때부터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
하지만 바해가 이야기
한 것처럼 난 여자 친구가 있잖아.
바해를 좋아하지만
그때 일은 내가 미안해.
사과할게.
바해가 듣고 있더니 ‘아니야.
그 일은 서로의
감정으로 일어난 일이니까 시중이 사과할 일은 아니야.’
시중!
그래도 난 네가
좋은데 어떡하지?
바해의 눈은 사슴처럼 슬픈 눈빛으로 시중을
보고 있다.
아마 그것은 바해가 혼자서 객지인 중국
땅에서 혼자 오래 살아오는 외로움이 더 시중을 받아들게 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 바해의 눈을
보며 시중도 모르게 마음이 요동침을 느낀다.
하지만 시중은
이성적으로는 안 돼하며 바해와 그 때 일이 시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넌 아름이가 있잖아’ 두 마음이 서로 날카롭게 대립을
한다.
시중은 자신도 모르게
바해를 보며 고개를 약간 저어 본다.
정말 난 시중의 마음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
거야?
오직 그 아가씨에게 만 시중의 마음을 줘야
하는 거야?
바해의 말에 시중은 어쩔 줄 몰라 막걸리만
들이킨다.
한 참을 생각하더니
시중이 바해에게 말을 한다.
바해!
그냥 우리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면 안 될까?
바해가 시중의 말을 듣더니 체념한다는 듯
깊은 숨을 내 쉰다.
내가 태어나 이렇게까지 남자에게 고백하긴
처음인데 시중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인정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니까!
그럼 내가 창피하잖아?
아니야.
바해의 마음과 같이
나도 널 좋아해.
하지만 난 여자가
있잖아.
그 여자는 내가
태어나 처음 사귄 내 첫 여자란 말이야.
그러고 나를 정말로
좋아하고 있어.
나 역시도
그렇고.
그런 사람을
모른척하고 바해를 사귈 순 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두
여자를 다 사귈 순 없잖아.
그런 걸 바해도
바라는 건 아닐 거 아냐?
또 그건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긋나는 일이고 도덕적으로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바해가 내 말을 듣더니 바로 시중이 그런
마음이 난 좋아.
체념 한다는 둣 그래 내가
인정한다.
우리 좋은 친구로
지내자며 술 잔을 부딧친다.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