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해가 그 독한 술을 여섯 일곱 잔 먹은 것 같은데 몸은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걷는다. 아마 이 정신도 타국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한 정신이라 생각이 든다. 나는 술을 먹든 안 먹든 뒤뚱거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바해는 내 손을 잡고 택시를 타고 자기 집 앞까지 가서 내렸다.

시중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야. 들어가자. 내 손을 이끈다.

집은 자기 가게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나라의 연립식 아파트다. 바해는 열쇠로 아파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나에게 말한다. 나는 등에 멘 배낭을 지고 바해의 집으로 들어갔다.

바해의 집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누가 여자가 사는 집 아니랄까봐 냄새도 좋고 나름 예쁘게 꾸며 놓았다.

나는 여기저기를 둘러 보며 '야 집 좋은데! 이게 몇 평이야?'

12.

방 두 개에다 혼자 살기에는 딱 인데?

그래 여긴 아직까진 집세가 싸서 살만해.

바해는 자기가 먼저 씻는다며 욕실로 들어간다.

나도 일단 짐을 작은 방으로 가져가 배낭에서 가러 입을 옷을 꺼내 챙겨 입었다.

집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바해가 타국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

바해는 다 씻고 나오더니 나 보고 씻으라고 한다.

나도 씻고 나오니 바해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탁자에다 꺼내 놓고 있었다.

맥주를 따더니 한 잔 따르며 나부터 주며 시원하게 한 잔 마시란다.

그러며 자기도 한잔 따라 마신다.

우리는 그렇게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맥주를 마신다.

샤워를 간단히 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하니 아까 술집에서 먹은 독한 술이 맥주의 시원함에 사라지는 느낌으로 목구멍 저 끝까지 적셔 준다.

바해는 나를 보며 말을 한다.

시중 아까 내가 좀 주책이었지? 나도 모르게 내 감정에 그냥 눈물이 나오더라고. 이해해줘?

아니야. 그런 바해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다가와 난 내심 넘 기뻤는걸!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그냥 믿은 거 아냐? 그 만큼 바해가 외로웠다고 느껴지니 내 마음이 좀 안 좋더라. 바해가 혼자 이 낯선 중국에 와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봤어.

나 같으면 도저히 혼자는 그렇게 못살 것 같아. 바해가 따라 준 맥주를 또 마시며 대단해 최고야.

듣고 있던 바해가 얼굴에 살짝 웃음을 머금으며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사실 시중이가 왠지 모르게 처음 볼 때부터 편하게 느껴지더라. 난 여자고 시중은 남자인데도 말야. 그래서 시중한테 전화 왔을 때 반가웠어. 나는 여태껏 남자 친구를 만나 본적이 없어.

그런데도 시중이가 편해 보이더라고. 나는 부모님이 그렇게 되고 두 분 다 보기 싫어서 어떡하든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어. 그래서 도망치듯 여기 온 거거든. 그리고 내 힘으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만 하며 살았어.

바해는 아까 얘기 할 때와는 다르게 눈이 맑다.

그런 표정을 보며 바해에게 진짜 대단해라고 엄지를 세웠다.

우리는 또 잔을 마주쳤다.

배에서도 말했지만 나도 대학 갈 거야. 지금처럼 계속 간다면 여기서 정착하며 살아가는데 지장 없지 않을까 생각해. 그래서 내년에 북경대학 중문과에 들어갈 생각이야. 내가 집 나와서 살아보니 삶이라는 게 참 단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돈이 좀 있으면 편하고 없으면 불편하다는 단순한 생각 말이야. 하지만 이 정신적 외로움은 돈으론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배 타고 다니면서 돈 버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 그 사람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봤어.

하루 벌어 그 돈 가지고 그냥 먹고 사는 다람쥐처럼 반복되는 삶을 살더라. 내가 보기에 무의미하고 허무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더라. 돈만 가지고는 인생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물론 그 사람들도 다 나름대로 삶의 철학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공허해 보였어. 또 나도 그 사람들 따라 다니며 돈을 벌었지만 나는 인생이 돈만 벌어 가지곤 참 의미가 없는 삶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서 그 때부터 어느 정도 돈을 벌면 공부를 계속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바해는 말을 하며 입을 비쭉이며 맥주를 마신다.

시중은 바해의 이야기에 또 감탄을 한다.

벌써 인생을 많이 살아 본 사람이 삶을 하나하나 통찰해 나가 듯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바해가 멋있게 비춰진다.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삶에 있어 많은 환경의 변화에 부딪치며 살아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나름의 인생의 통찰력을 깨닫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한 번 더 느끼게 해준다.’

바해! 대단하다. 벌써부터 자기의 삶을 통찰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니.

내가 뭔지 모르게 부끄러워지는 이 야릇한 기분은 뭐지!

앞에 있는 바해가 피식대며 잔을 부딪친다. 그러자 글라스의 투명한 소리가 공간속에서 공기를 가르듯 맑게 퍼진다.

내가 많이는 아니더라도 여행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 봤지만 이렇게 바해처럼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며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앞으로 내 사부로 모셔야 될 것 같아.

테이블에 있는 시중의 핸드폰이 울려댄다.

내 사랑이란 글자가 폰에 뜬다. 아름이다.

나는 웃으며 바해에게 손짓을 하며 작은 방으로 들어 가 전화를 받았다.

오빠! 아름이의 목소리가 폰 너머로 다정하게 들려온다.

오빠! 거기 간지가 언제인데. 전화 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전화도 안하고?

아름이의 투정이 걱정과 서운함의 감정으로 들려온다.

나는 뭔가를 들킨 것처럼 그냥 말을 좀 더듬으며 말을 한다.

아름아 잘 있지? 미안해.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 하려고 했는데 아름이가 먼저 했네. 여기 오니까 전부다 낯설어 정신이 없었어. 아름에게 전화한다는 것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숙소에 오면 또 이것저것 챙겨야하고 피곤해 그냥 곯아떨어지고 그랬어. 정말 미안해. 북경 여행은 대충 구경했고 내일부터 몽골로 넘어가려고. 본의 아니게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 놓고 있다.

아름아 보고 싶다. 시중은 아름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말 아름이가 보고 싶다고 느낀다.

아름도 오빠, 오빠를 연거푸 부르며 언제 올 거냐고 앙앙거린다.

그렇게 시중은 바해와 내일 떠날 몽골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며 이야기가 많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 또 이국땅에서 아름이 이후로 여자와 한 공간에서 삶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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