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전쟁
딘 셔만 지음, 이상신 옮김 / 예수전도단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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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추천받았을 때 별로 읽고 싶지 않았다. 요즘처럼 허접하고 두서 없는 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구나 교양인과는 거리가 먼 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의외로 재미있고 글이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룩한 영역에서싸우지 않으면 세속적인 영역에서 싸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둠의 권세와 싸우지 않으면 그 대신 사람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97쪽)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 책을 통하여 사탄이 어디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왜 기도가 중요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도가 달라졌다.

 

이 책에서 깜짝 놀랐던 부분은 워치만 니의 <죄참행>(Sit, Walk, Stand)라는 책을 탁월하게 요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1.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 우편에 '앉았다.' (하늘 나라 시민권자), 2. 우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간다. 3.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고 강하게 선다.

 

* 사탄이 활동하는 세 장소는 생각, 마음, 혀이다.

1. 생각의 문에 보초를 세우라. 날마다 양치를 하듯이 생각을 씻어라. 2. 마음의 염려와 두려움은 신앙과 함께 없다. 교만버리고 자신을 낮추어라.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라. 두려움을 버려라. 이것을 기억하라. 총을 엉뚱한 곳에 겨누지 말라.

3. 혀의 권세, 말의 힘을 알지 않는가? 말의 힘을 회복하라. 창조적인데 사용하라.

 

* 영적으로 강해지는

1. 하나님과 열린 대화, 친밀한 대화, 하나님의 현존으로 들어가라. #기도

2.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성경묵상하기

3. 교제는 우리를 강하게 한다. 개방성과 솔직함.

 

신앙이 밋밋해진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중보적인 기도를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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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 (보급판 문고본) C. S. 루이스 보급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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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는 놀랍게도 뚜껑을 열어보니, 신정론을 다루고 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어떻게 심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모두를 구원하지 못하는가?

 

C.S. 루이스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신학적 논쟁을 원치 않아서 정통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본인의 잘못임을 인정하다. 자유의지는 설명이 쉽지 않으며, 창조이야기를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창조설화로 본다. 신화란 과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일어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루이스를 좋아하면서도 이런 면에서 의아해 한다. 나는 루이스의 진솔한 이성적 추론을 재미있기게 읽는다. 루이스는 놀랍게도 개혁교회의 핵심 교리인 전적 타락에 대하여 루이스는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타락했다면 어떻게 믿음의 접촉점이 있느냐 하고 반문한다.

 

창조와 타락, 자유의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창조는 선하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하다. 자유의지를 주셨다. 자유의지에는 악의 잠재성이 있다. 그러나 악이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것을 너무 강조하면, 제2의 선은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것으로 비쳐지고, 하나님의 주권은 약화될 소지가 있다고 루이스는 말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고통이 유래함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설명하는 부분이 탁월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한다.자기 자신이어서가 아니라 선자체이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좋은 선이 있었다면, 자신을 포기하고 그것을 사랑했을 것이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최고의 선이기 때문이다. 다른 최고의 선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고 그 선을 추구했을 것이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생명을 얻는 길이다. 씨앗도 살기 위해서 먼저 죽어야 한다.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인간의 타락과 함께 천국과 지옥의 문제를 다룬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우리가 얼굴을 알 때까지> 등에서 천국과 지옥의 문제를 다루는데,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이해를 정리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 이미 누군가가 그 작업을 해 놓았다. <천국 상상하기: C.S.루이스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규원, 웨인 마틴데일) "지옥의 문은 안에서 잠겨 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이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즐기고, 지옥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죄인은 천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이 지옥에 가는 것은 돌이키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심판한다. 아니 스스로 저들은 심판의 길을 택한다. 이 문제는 <지옥과 천국의 이혼>에서도 나타난다. 이 인용문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루이스는 영문학자다. 신화에 전통하다. 그는 어거스틴의 원죄론, 아벨라르의 대속의 만족설이나 보상설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짐짓 소신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매력이 있다.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진술에 있어서, 먼 조상의 죄에 대한 책임으로 심판받는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고통의 문제>는 내 예상과는 달리, 단순히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신론, 인간론, 구원론, 그리고 지옥과 천국 등의 주제를 변증적으로 다루는 평신도 신학서적이다. 신학, 영문학, 신화학에 정통한 평신도 신학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주제가 흥미롭지만, 무겁고 논리적이어서 따라가기 힘들어서 다시 꼭 읽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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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행참 - 앉으라, 행하라, 서라
워치만 니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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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ur position in Christ - "SIT"(Eph. 2:6) 함께 앉았다. 주님의 구원사역의 완성하셨다. "다 이루었다!" "다 지불하셨다!"
  • Our life in the World - "Walk"(Eph. 4:1)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아버지의 온전하시고 거룩하심을 본받으라, 시간을 아끼라.
  • Our Attitude to the Enemy - "Stand"(Eph.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보혈의 능력으로 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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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엘리아데 - 종교와 신화 살림지식총서 40
정진홍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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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데는 헝가리 사람이다(?) 그는 문학가로 고국에서 알려져 있고 종교학자이다. 한국의 종교학자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엘리아데는 신화, 상상과 인식의 긴장, 새 인간성의 도래, 인간의 변혁을 꿈꾸었다. 모든 제의와 신화는 공간과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역치'라는 말이 있다. 시간을 구분하고(주일, 설날), 공간을 구분하는 (예배) 것을 통해서 거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은 속의 깊이이다. 성현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역사를 가진다. 


신화와 제의는 결국 인간의 삶을 변용하고 새로워지는 것을 추구한다. 달력이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유래한다. 시간에 지배되지 않고 시간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창조물이다. 종교학자는 종교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종교적인가?를 묻는다. 


그는 신칸트주의자 같다. 트뢸취가 말했듯이 그는 종교적 선험성을 주장하고 있다. 나중에 그는 비판을 받는다. 무슨 설교가나 문학가나 사회 계몽가이지 종교학자로서의 객관적 근거도 없고 학문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사실 학문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해도, 실제로 얼마나 허술하고 현실을 담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엘리아데는 스스로 종교학자이면서 동시에 문학가이다. 그의 창작활동은 그에게 생명력을 주었고, 삶의 균형을 준 것이다. 


그의 종교학 저술들이 학문적이지 않다고 평가받는 것은 그가 추구했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문학과 종교, 문화와 종교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종교와 목회,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의 긴장관계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종교적이다." "종교성은 인간의 창조성을 말한다." (종교를 인간이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닌 듯한데. 그래 종교가 인간의 투사라고 규정하지는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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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름다운 우리 문장 43
장하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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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늘 선생님의 이 글을 통해서 주옥같은 글들을 접하게 된다.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어떤 문장이 좋은 것인가?

퇴고의 중요성 등에 대하여 배웠다.

본보기 글을 제시하고, 장하늘 선생님이 설명을 하니까, 글쓰기 공부가 살아 있는 느낌이다.

다음은 글의 내용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을 정리해서 모아보았다.


-책(이태준)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 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그러나 집에 와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이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선물로 받지 않고, 인간의 정신으로 창조해 낸 수많은 세계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청춘예찬(민태원) 
이상은 실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라 할지니, 인생에 가치를 주는 원질이 되는 것이다.

 

-‘좋은 문장’은 그 사람에게서 배어나는 향기다.(한승원) 
좋은 문장은 제작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인격체)에게서 배어나는 향기와 같은 것이다. 
스스로 자비롭고 넉넉해지는 마음 가지기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쉽게 쓰기’의 어려움(이형기) 
한동안 나는 이효석의 문장을 좋아해서 속으로 은근히 그것을 본받으려고 한 적이 있다. 정평이 나 있는 서정미 넘치는 문장, 한 단락 안에서 같은 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어휘, 그리고 한 번도 접속사를 쓰지 않고 수필 한 편을 거뜬히 써내는 그 솜씨가, 내게는 모두 경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자기 자신이 철저히 이해하는 일이다. 
서머셋 모옴의 『서밍 업』은 나에게 이런 태도를 가르쳐준 책이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독자에게, 자기가 쓴 글의 뜻을 이해하도록 노력해달라고 요구하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글’을 쓰려는 사람을 위해서 한 마디 적어두자. ‘쉬운 글’의 요소는 셋이다. 첫째, 비유법을 써서 표현할 것. 둘째, 구체적인 경험이나 실례를 들 것. 셋째, 인용법을 쓰되 짤막히 쪼크려 표현할 것.

 

197쪽의 4C 구성Clue 단서  실마리, 화제
,  Consideration    고찰    연구, 심화,  
Comparison   비교    다른 각도, 시점, 
Consent 동의    설득, 찬동 

글쓰는 일이나, 수업이나...
처음엔 글쓰거나 가르칠 꼬투리를 잡고, 그 내용을 깊이 연구심화하여 모으며, 다른 각도와 시점의 생각을 접합하여, 다른 이의 의사를 이끄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잘라버림으로써 문장은 성립된다.' 임선희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위해 버릴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과감히 버릴 것을 권한다. 간결한 문장은 뜻이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게 하며 속도감을 부여한다. 가위질은 형용사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하는데, 문장이 죽어갈 때는 형용사의 무성한 가지가 먼저 시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문의 명문장가인 소동파가 <적벽부>를 썼을 때, 그 습작 원고가 한 광주리를 넘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문호 발자크도 습작 시대에 쓴 미발표 원고가 자기 키 만큼 쌓였다고 한다. 모든 위대한 것은 훈련의 산물이다. 문장 수업은 하나의 고행도다. - 본문 중 안병욱의 글에서

저자에 따르면, 좋은 글은 많은 '퇴고', 즉 '고침질' 후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2년에 걸쳐 쓴 <개미>를 120번 고쳐 썼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400번 손질했으며,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완성하는 데 36년의 세월이, 괴테는 <파우스트>를 완성하는 데 60년! 최명희는 <혼불>에만 매달려 17년을 씨름했다 한다. 이처럼 '문장', 그것은 퇴고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엉겅퀴꽃'이 아닐까 하고 저자는 덧붙였다.

 

퇴고는 하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며칠 시간을 두고 해야 더 효과적이라 한다. 자기가 쓴 글에 콩깍지가 씌어 티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남에게 보여 잘못된 것이 있는지 쓴 조언을 보약으로 참고 마셔야 한다는 권현옥의 이야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예전에 어느 선생님에게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선생님은 '고칠 수 있는 데까지 고쳐 쓰는 것이 좋다'고 하셨는데,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진리를 말씀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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