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의 이혼 믿음의 글들 20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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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은 현대에 무용한 주제같으나 여전히 중요하며,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주제이다. 그런 면에서 C.S.루이스의 이 책은 매우 의미가 있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 주제를 문자적으로, 교리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문학적 장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언듯 보기에 '저 세상'의 주제를 다루는 책 같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책임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선택의 문제, 사랑의 주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은 인간의 선택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루이스는 자아도취적이고 아집에 사로잡힌 가짜 사랑의 실체를 날카롭게 폭로하면서,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도 제시하고 있다. 

 주인공이 지옥과 천국을 여행하는 꿈 이야기이다. 어디가 지옥이고 천국인지, 유령과 영은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한 두 번 읽어서 잘 들어오지 않았다. 분량이 비교적 적은 책인데, 나에게는 솔직히 어려웠다. 리뷰쓴 분들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어려웠던 이유는 판타지 소설에 내가 익숙하지 않고, 영미의 신화적 상상력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낯설기 때문이리라. 

가장 통쾌했던 대목은 기독교인들이 빠지는  '가장 교묘한 덫'을 지적한 부분이었다.(94쪽)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그리스도는 아예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다네." 기독교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는 미천한 채 행해지는 전도와 선교가 오히려 기독교 진리를 가리울 때가 있음을 보면서 이 구절이 가장 깊게 와 닿았다. 

 천국은 더 이상 상처가 없는 곳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하는 사람과,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주마."하고 하나님이 유기하고 자기 고집대로 파멸의 길로 가는 사람이다. (95쪽) 

이 책의 상상력과 통찰력을 탁월하지만, 책을 소화하기에는 낯선 은유들과 대화들 때문에 별 3을 주었다. 솔직히 50%도 이해못했는데, 꼭 거듭 읽고 싶은 책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국과 지옥의 결혼>, 피터 크리프트의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서>, 어느 저자의 <천국과 지옥-센스와 넌센스> 등 이 주제를 계속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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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설교학
이연길 지음 / 쿰란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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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설교학과는 다른 독창적인 방법, 한국에서 이야기 설교학의 개척자와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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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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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이 책을 읽었다. 상투적으로 끔찍한 유대인 고문과 학살의 고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문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유대인학살에 대한 끔찍한 고발은 이미 여러 책이나 영화에서 했기에 이 책에서는 극한의 한계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은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을 관찰한다고 하였다.  

 이 책은 심오한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쉽게읽혀지고 '내 이야기'처럼 공감하게 되는 점들이 있다. 감옥안에서의 유머와 예술과 사랑의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쓰레기에서 장미가 피어나듯, 절망가운데 인간의 영혼이 솟아나, 인간의 존엄성이 꽃피는 것을 볼 때에 감동....전율...경외감을 느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솟나' '참나'를 발견한 사람이라고 부르리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정신과의사이지만, 동시에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차별되는 로고테라피를 그 감옥에서 창안해 내었다. 과거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래에 초점을 두고, 환경에 결정된 인간이 아니라 책임적인 선택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섬,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빅터 프랭클이 실존사상을 인간치유의 심리학으로 응용했다는 사실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존주의철학의 용어인 의지, 선택, 책임, 자유, 역설 등의 용어를 놀라울 정도로 실용적인 정신치료법으로 적용시켰다. 역설치료법, 과잉투사의 해법 등을 제시하는데 놀랍다. 단지 <수용소에서의 경험>뿐 아니라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 <낙관속에서의 소망> 등의 주제 등 경험과 그에 근거하여 창안한 정신치료법을 제시하는 풍성함을 제공한다.  

두고 두고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군생활이 나에게 주었던 놀라운 체험들을 재해석하는 유익을 누릴 것이다. 고난을 통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고난의 의미, 시련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리라. 개인적인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는 간단하지만 오랫동안 유효한 방아을 발견하리라. 번역자가 이시형박사다. 사회에 공명을 일으키는 정신과의사로 알고 있다. 그가 저자를 각별히 생각하고 존경하는 것이 이 번역을 더욱 좋은 번역이 되게 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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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란 무엇인가
정용섭 지음 / 홍성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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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의 글은 목회간증이나, 신학논문, 교회성장방법론, 설교학강의나 나의 설교준비법과 다르다. 그 독특함은 설교비평에 있다. 제대로 된 설교비평을 감히 누가 하겠는가? 아무도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비판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설교의 의사전달법, 설교의 포퓰리즘과 주술성과 비합리성 등에 대한 감정적인 비판은 간혹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신학적이고 인문학적으로 차분하게 비평한 것은 드물다. 한국교회역사의 하나의 획을 긋는 역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김회권의 논찬이 더욱 좋다. 저자의 설교비평가 한국교회에 기여하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정용섭이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은 성령중심의 설교가 아닌 것처럼 말한다든지, 역사비평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설교가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든지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아닐까 하는 점을 시원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 솔직히 어떤 사람의 글이나 말을 100% 신봉하다 보면, 내것이 없어지고 유익한 게 아니라 자신감이 떨어지는데, 김회권의 논찬을 읽으니 정용섭의 글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는 장점이 있다. 무조건 그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점을 찾고, 어떤 점은 새롭게 알고, 어떤 점은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면서 읽어가기 때문에 <건강한 독서>가 된다고 느꼈다.

정용섭은 설교를 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등 큰 범주에서 소화했고 결국 성경의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설교해야한다고 주장한 점은 신선하다. 시원하다. 한 마디로 목회자의 무식함을 드러내주거나, 아니면 신학과 목회가 괴리되어 있는 건강하지 못한 한국교회의 현상을 잘 진단해주고 있다. 정용섭의 설교론은 성령론적 설교론, 삼위일체적 영성, 역사비평적 성경읽기와 영성적 성경읽기 등을 말한다. 또한 그는 판넨베르크 연구자로서 예수의 부활사건과 선취론적 종말적 관점을 중시한다. 삼위일체적 영성이라고 했을 때, 기독론 중심적인 경건주의나 청교도주의가 빠질 수 있는 현실의 책임에 대한 '자폐적 증상'을 지적한다. 기독교가 주술종교에 빠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개인적 영성에 빠져 창조질서의 보존과 동성애와 이념 등에 대한 자폐적 증상을 보이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13장으로 구성되며, 글은 매우 담백하고 정제되어 있으며, 논리적이면서도 진솔하여서 마치 저자와 대화하는 듯하다. 잘 썼다. 마지막 장에서 <나의 설교준비>를 제시한 부분을 나는 제일 먼저 읽었다. 그는 <국제성서주석>을 사용한다는 개인적인 이유를 자세히 말해주고 있으며, 설교준비에 얼마나 걸리는가, 그의 성서관, 그의 설교관 등을 진솔하고도 자세히 드러내주고 있어서 참 좋았다. 홍성사의 제안으로 이 장을 추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회권의 논찬을 후기에 실은 것은 책의 편집자들의 섬세한 배려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정용섭의 <설교란 무엇인가> <기독교란 무엇인가>는 그의 3편의 설교비평서의 후속작이다. 나는 그의 설교비평은 간간히 읽었으나, 오히려 그가 말하고 있는 <기독교와 설교>는 더 관심있게 꼼꼼히 읽고자 해서 두 권을 구입했다. 정말 흥미롭고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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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믿음의 글들 240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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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에로스와 프쉬케의 신화>를 간단히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읽으면 아주 재미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이 이 책의 앞부분에 이 이야기를 요약해서 소개해준다. 신화의 매력, 신화의 상상력속에 푹 빠져서, 흥미 진진하게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져서 그 자리에서 읽어야만하는 매혹적이 책이다. 

에로스와 프쉬케의 신화에서 프쉬케가 아프로디테(에로스의 엄마)의 질투를 받아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로스(사랑)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의심하여 확인하는 순간 에로스(사랑)의 관계는 깨어진다는 것. 여기에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요소에 루이스는 힌트를 얻은 듯하다. 프쉬케가 의심하여 에로스의 얼굴을 보게 된 사건, 에로스와의 관계가 깨어진 것, 지옥세계까지 내려가는 고난의 이야기, 지옥에서 미의 상자(box of beauty)를 가져와 에로스와의 관계회복 등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루이스가 각색했을까? 

푸른하늘님의 리뷰에서 기독교문학의 단순성을 참을 수 없다는 말에 난 공감한다. 이 책은 옳고 그름, 정통이냐 이단이냐하는 잣대가 없이 인간의 생각을 자유로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데, 여우선생은 모든 것을 자연과 이성으로 설명하고 있고, 마야(오루알)은 보이지 않은 신들의 세계에 대하여 회의하고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신비한 경험을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내가 재미 있었던 부분은 참나를 찾아가는 영적인 여정이다. 성서에 보면,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본다." "그 때에는 우리도 그와 같이 변화되리라"는 종말론적 소망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진면목을 실현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인간의 변화의 꿈을 잘 그려주고 있다. 인용:"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데, 어찌 신을 알 수 있겠는가?" "자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재미있는 장면들은 여우선생이 애써 프쉬케가 경험한 신비한 신들의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부정하는 대목들, 오루알이 신의 소리를 들은 이후에 더 이상 난폭한 아버지 왕이 두렵지 않게 된 대목 등이다. 참 재미있어서 정말이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C.S.루이스의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스럽다. 그의 책을 읽고 싶지만 쉽게 읽혀지지 않았고, 왠지 뜸을 들이게 된다. 이 책을 2007년도에 샀는데 오늘 읽었다. <나니아 연대기> <천국과 지옥의 이혼>도 읽다고 포기했는데, 눈씻고 다시 봐야지. 난 겨우 몇 번 씨름한 끝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책이 보배라는 것을 경험했다. 저자가 기독교 진리의 단순성, 문자적인 근본주의를 넘어서 그 풍성함과 희열과 꿈을 제공하고 있다니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숙제: 1. 표지그림-서있는 소녀와 그림자: 잔과 책에 대한 이해, 2.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라는 제목에 대한 이해? (오루알이 자기의 얼굴을 찾았다는 것인가 좀 모호.) 3. 기독교 진리를 은밀히 내포: 1) 정체성의 회복, 2) 사랑의 측면, 3) 믿음과 사랑이라는 주제, 4) 합리주의와 신앙의 신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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