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를 넘어 - 칼 세이건 이후 우주와 인간의 새로운 이야기
세라 알람 말릭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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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발견은 우리의 고전적 세계관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예측 가능하고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는 우주라는 개념을 포기해야 했고, 무작위성이 근본적 특성인 확률적 세계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새로운 현실은 우리의 직관에 너무도 낯설게 다가와,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그 체계의 창시자들마저 그 잠재적 여파에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다.




Mac Marnett의 그림책 <Sam & Dave Dig a Hole>에는 두 주인공이 보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열심히 땅을 파내려 가다 잠시 앉아 쉬며 생각을 한다. 혹시, 우리가 한 방향으로만 파는 게 문제는 아닐까? 이래도 괜찮을까? 발전된 사고를 거쳐 이들은 방향 전환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파내려가 이들이 끝내 마주한 것은 다시, 그곳이었다. 같지만 미세하게 달라 보이는 어딘가, 그 주위를 열심히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코스모스를 넘어>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상상해 봤던 하늘을 나는 배를 타고 태양계 넘어 우리 은하를 지나 우주의 끝에 닿은 줄 알았는데 그곳이 다시 지구였다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지구에서 우리가 겨우 찾아낸 중력과 지구를 돌고 돌아 봤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 수 있었다는 사실, 그래서 다시 보니 우리는 둥글었다. 운 좋게 저 하늘 위로 날아갈 수 있어 그곳에서 우리가 사는 곳을 바라보니 가설은 맞았고 파랗고 하얗고 참 예뻤다는.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우주과학의 시작을 정의하게 되었다'하면 너무나 아름답고 속 시원한 결말 아닐까.


우주의 끝에 대한 짧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7분여 정도였는데 그냥 우리는 계속해서 어두운 하늘 위를 지나간다. 그 마지막은 네모난 스크린에 펼쳐진 반짝이는 별들과 까만 우주가 다였다. 어젯밤 내가 올려다 본 하늘 모습 그대로이다. 우주의 모양도 그저 네모난 스크린 안에 갇혔다. 우리의 시작을 담고 있는 우주는 너무도 거대하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우주 이야기를 한다. 첫 번째 장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시작해 600년 가까이 이어 온 하늘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리스를 거쳐 이후 이슬람과 유럽에서 해 온 굵직한 역사의 꼭지와 유명한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장은 '우주를 탐구하며 알게 된 것'이라는 주제 하에 시공간의 개념과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잠정 정의한 여러 우주 관련 탐구 기록이 묶여 있다. 세 번째 장은 누구나 관심 있게 읽을 만한 우주의 생명체에 대한 기록,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나아갈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태양이 만들어지고 이후 우리가 사는 행성이 생겼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발걸음도 우리는 떼지 못한다. 고작 인간이 발 닿아 본 곳은 지구 밖에 달이 유일하다. 그곳에서 원시 지구의 흔적을 가늠하고 다른 행성의 모습을 추측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인간의 열망이 참으로 대단하다. 이를 광기로 보지 않는다. 실험과 관찰로 가능한 그 어떤 과학의 영역보다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분야다.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앞으로를 예측하기 위함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우주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46억 년 전을 동그라미 여덟 개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덕에, 앞으로의 46억 년 뒤가 궁금해지게 된다. 당장 둘리가 살았던 1억 년 전도 우리에게는 원시 세계인데 그 긴 시간 식물을 품고 동물을 키워내준 고마운 지구에 대한 사랑도 담겨 있다. 우리가 그만큼을 살아갈 수는 없기에 지금 이 우주의 역사 이 빛나는 순간, 내가 왔다간 곳을 기억하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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