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털 없는 원숭이 - 인류의 짧은 역사 이야기 과학으로 풍덩 시리즈 2
데즈먼드 모리스 원작, 세르지오 루찌에르 그림, 고호관 옮김 / 아울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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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털 없는 원숭이에게.


네가 처음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려 했던 동물은 너와 비슷한 오랑우탄이었어. 우리는 너에게 친구들을 보여주려고 주말이면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 사자, 기린, 코끼리, 판다를 가리켰지. 때로는 무표정해 보이는 네 얼굴을 보면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그저 너에겐 컸을 테니까. 지금 우리 집 작은 도마뱀들이 우리가 다가서면 후다닥 은신처로 숨는 모습만 봐도 커다란 것들은 늘 위협적이긴 해.


그러던 네가 처음으로 다가가 한참을 마주 보는 동물이 생겼어, 오랑우탄. 그때 사진을 찍으면서 저 닮은 모습을 기막히게도 알아채는 너에게 웃음이 났지. 아마 나도 그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아. 그렇게 오래 몇십 분을 우리는 오랑우탄 앞에 앉아 있었지. 오랑우탄 우리 앞에서 너만 커졌어 매년. 신기하더라, 너무 우리 같아서.. 웃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뽀뽀하자고 입술도 내밀고. 손바닥을 맞대자고 창에 붙이기도 하고. 왜 네가 혼이 쏙 빠졌는지 알겠더라고.




나의 어린 털 없는 원숭이야!


태어나 1년이 되어서야 겨우 걷고, 내 곁에서 10년 여가 가까워 오는데 여전히 넌 우리 품에서 잠들지. 30일 이면 새는 스스로 날고, 개도 1년이면 거의 성체에 가까워지는데..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비비며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에게 털이 없어서라고 생각해 보니 참.. 놀랍더라. 나는 너의 털을 골라주지도 않고, 네가 내 털을 움켜쥐지도 못하는데 넌 나한테 웃어줬고 나를 불러줬고 그렇게 곁에 있어. 그것도 아주 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집 밖에서는 하루하루 배우며 놀며 그렇게 너 스스로 호기심이 늘어가고 탐구할 거리가 넘쳐가는구나! 작가가 이야기한, 짧은 털 없는 원숭이의 역사에서 이렇게 멋지게 진화해 가고 있는 너를 본다. 점점 길어지는 너의 다리가 너의 진화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쭉 뻗은 모습이 얼마나 귀한가 생각도 했어.


우린 사실 과학을 잘 몰라. 그냥 외워야 해서 외운 게 다이고, 별로 재미가 없거든. 그런데 나의 어린 털 없는 원숭이 네가 묻는 많은 것들에 대답도 해주고 싶고, 나도 궁금한 게 생기면서 요즘은 하늘도 자꾸 올려다보게 되고 바다 속도 알고 싶어져. 그걸 같이 읽어나갈 수 있는 너와 우리라서 감사함도 생기고 말이지.




아직 공룡이 사라지지 않았대.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화성에 기지를 건설할 거라고도 네가 얘기했지? 그래서 우리가 6번째 대멸종에 대해서도 너랑 책을 읽었잖아. 모든 생명체가 물속에서 시작돼 물 밖으로 진화해 나온 것도 우린 과학관에서 확인했어. 그리고 작은 곤충의 위대함도 보게 되었고.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도, 계속 이야기 나누어야 되는 것들이래.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거든. 그래서 너랑 더 많이 함께 이야기하려고 다짐을 해 매일.


주말에는 털 없는 원숭이를 이렇게 재미있게 번역해 준 고호관 역자님을 만나러 갈 거야! 매일 밤 이 책을 조금씩 같이 읽으며 그날을 기다려 보자.




참! 이 책을 지은 할아버지는 데즈먼드 모리스라는 분인데 너도 잘 아는 털보관장님처럼 과학에 호기심이 아주 많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쓰고 그림도 그리시는 분인데 벌써 98세가 되셨대! 어디에 사는지도 궁금하지? 아. 일. 랜. 드!!





나의 어린 털 없는 원숭이야!


우린 너에게 매일 한계를 뛰어넘어 보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대신, 해보고 실패해 보라고 계속 이야기해줄게. 그렇게 너는 지금까지 자라왔거든. 그래서 이렇게 멋진 네가 과거의 다리가 짧았던 모습을 잊지 않고 미래에 잘 적응해 나가길 빌어.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준 이 동화책은 우리가 오래오래 네가 클 때까지 잘 보관해 둘게.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를 잊지 않아야 나아갈 수 있어. 멋진 책 한 권을 너에게 선물해 줄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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