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가족 - 각자의 알고리즘에 갇힌 가족을 다시 연결하는 법
이은경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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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천천히 익어가야 할 것도 분명히 있어


뭐든 방향이다. 작은 각도기가 끝내 만들어 내는 거대한 변화를 생각하면 우린 잃지 않아야 하고 잊지 않아야 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도파민의 모습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였다. 육아 정보 검색과 교육 이야기 듣기, 아이에게 필요한 것 검색하며 최선의 선택을 마주하기. 이 모든 과정에 나의 도파민은 최대치였다. 그렇게 지금의 내 아이는 만들어진 모습이고, 나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지 못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정해진 길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었고 내 선택이 보잘것없지 않길 바랐다. 아이가 곁에 없는 시간 내내 도움이 될만한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나의 정보는 결국 다시 뒤적일 길 없이 순간에 소멸된 게 대부분이었던 것도 맞다. 차곡차곡 쌓인 건 도파민 중독된 순간에 구입한 아이 책, 아이 물건들.




episode 2. 내가 크레를 멍하니 보는 이유


<도파민 가족>이 도착한 날, 나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그 수치 앞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시간이 없다고 못했던 그 많은 일들이 과연 얼마나 공중에 휘발된 것일까. 내가 이 시간을 가지며 포기했던 수많은 것들은 뭐였는지. 일단 스마트폰의 모든 알람을 해제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늘 무음으로 설정했던 벨 소리를 시원하게 열어둔다. 틈틈이 무슨 소식이 왔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들여다볼 일도 없다. 그저 집 전화기처럼 그냥 두었다. 디카페인으로 마시던 커피도 절반으로 줄이고, 물을 끓여 부모님들이 말려주신 것들로 차를 우려내 왔다 갔다 하다 수시로 마신다. 잠자리에 들면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자~" 하고 함께 조용한 침묵을 즐기다 스르르 잠이 든다. 작은 크레스티드 게코 한 마리가 또 우연히 집에 오게 되어 난 두 마리를 하루 두 번 들여다보며 살핀다. 멍하니 그 웃는 얼굴들을 보는 시간이 즐겁다.




episode 3. 그래서 덕분에


만약에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씩 바꾸려고 했다면, 금세 또 스르르 도파민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가족은 나만 도파민 중독에서 빠져나오면 되는 상황이었다. 저녁에 같이 밥 먹을 때 예능 티브이 보며 같은 장면에서 깔깔 웃고, 같은 책 읽고 두런두런 자기 생각 말하고, 주말에는 큰 테이블에 모여 함께 체험한 사진들을 오려서 정리하고 일기도 쓴다. 아이의 로봇 취미에 온 가족이 동원돼 분해를 돕는다. 하루가 참 짧고 매일 저녁 잠자리가 달다.


작가의 솔직한 경험이 언젠가 우리 집에 닥칠 모습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랬다. 슬프게도 많은 가정이 현재 겪고 있는 모습일 텐데, 나에게는 디스토피아의 한 모습으로 비추어져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난 15년간 스마트폰 덕에 즐거웠던 순간은 이제 그만 인사를 건네고, 다시 조용하고 지루한 틈새를 견뎌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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