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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100년 가게 ㅣ 꿈터 책바보 23
소중애 지음, 홍선주 그림 / 꿈터 / 2025년 10월
평점 :

어린 시절 시장 가까이에 살았다. 두부, 콩나물 같은 것은 집 앞 구멍가게에서도 팔았지만 시장까지 10분 갈 일은 많았다.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은 시장과 우리 집의 중간쯤이었고 틈틈이 학원 끝나면 시장 한 바퀴 돌아 집에 오기도 했다. 시장 어느 점포에서 사 오라던 생선 심부름이 지금도 기억이 나고, 엄마와 함께 친구네 정육점에 들러 친구 아버지가 썰어준 삼겹살을 사곤 했다. 봉다리 봉다리 시장 다녀오던 기억은 지금도 마냥 좋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도 고기는 늘 정육점에서 썰어다 먹었다. 내 아이는 정육점을 아마 모를 거다. 아이가 경험한 장 보기는 대부분 마트에 포장된 고기이고, 예쁘게 쌓인 채소를 투명 봉지 뜯어 담는 것, 그리고 포장된 가공식품을 카트에 담는 게 다겠지.
책을 받아 가만히 한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참, 소중하다. 아마 이 이야기를 아이가 먼저 읽었다면 내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성석제,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갸우뚱했던 기분 아닐까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떠올라 참기름 내 꼬숩게 피어오르는 이 순간을 아이는 어떻게 읽을까.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써주는 작가를 보면 참 그 재능이 탐난다. 경험도 부럽지만, 그 시절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지니기 쉽지 않고 이를 재미나게 적어내는 기술까지 갖추었으니, 내가 경험한 게 적구나 싶어 한숨이 날 때도 많다.

중앙시장은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어디는 동네 이름을 따르기도 했지만 대부분 마을 가운데에는 중앙이란 이름들이 더러 붙었나 보다. 작가는 실제 중앙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그 앞의 중앙시장을 자주 들렀고, 그곳에서 살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런 멋진 이야기를 상상해 봤다고 했다. 책 속에는 내가 어린 시절 보아 온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깡말라 화난 것처럼 보이는 아줌마가 자기 자식 돌아오면 남 들으라고 인사하며 크게 안아주던 모습, 젊은데 사업 수완도 좋아 사람들이 몰리는 신생 가게 사장님, 사람들 몰고 밥 사주러 동네 식당 들어가는 할아버지, 그리고 내 기억에도 어린 시절에 기름집이라 붙은 곳은 조금 작고 참 고소한 향기가 풍겼다.
작가는 시장의 아이들을 '비빌 곳이 있는 아이들'이라 했다. 찰떡같다. 밖에선 거친 형들도 우리 동네에선 든든한 울타리다. 쌈닭 같은 옆집 아주머니도 외부인이 침입하면 누구보다 우리 동네 지키기 앞장선다.
명한이는 그리고 정아는 또 새나는 어떻게 자랄까. 나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처럼 배 타러 멀리 나갔다가 돌아 오려나. 할머니가 매일 거두는 2만여 개의 달걀을 함께 거두며 어른이 될까. 어떤 어른으로 자랐든지 간에 아이들은 다시 시장에 비비러 올 것이다. 우동곱빼기를 먹으러, 죽기 전에 떡볶이가 먹고 싶어, 그리고 어느 날은 옆집 순대 국밥을 먹으러.. 돌아온 아이들을 투명한 지붕의 시장 골목과 농가에서 수확한 자잘한 채소 파는 노점 할머니들이 아는체할 것이다, 잘 다녀왔냐고.

내게도 이런 기억이 남아있어 참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