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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와 0수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평점 :
영수와 그의 복제 인간 O수의 이야기, 장편이다. 영수와 O수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게 된 이유를 천천히 찾아 소설이 시작된다.

인간은 기억으로 스스로를 인식한다.
소설 속에선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을 매매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사는 기관이 존재하며 이곳은 자살방지국이다. 물론, 내가 판매한 기억을 누군가는 거액의 돈으로 사 자신에게 심는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기억을 판매하고 자살방지국을 나오는 순간, 어떤 이는 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자살방지국이 제 역할을 못한 셈이다.
디스토피아 세계의 한 모습이다. 모두들 진공관처럼 무거운 헬멧과 방호복을 입고 나서야 문밖을 나설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이 누군가를 죽게 해서는 안 되므로 전 국가적인 정책의 일환이다. 그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 이는 연좌제로 적용이 되어 남은 가족들이 일주일의 하루씩 더 일해야 한다. 가만 보니 근대 초기, 산업혁명 하에 마치 공장의 기계처럼 부품처럼 다루어진 통제 상황이 미래의 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삭막한데 익숙한 기억, 우리가 그 시대에 대해 지니고 있는 기억이 남아서일까. 소설 속 배경이 낯설지 않다.

어쩌면 번거롭거나 살갑거나.
왜 인지 좀 수선스럽고 귀찮고 짜증도 난다. 안 그랬으면 좋겠고, 말 걸지 않았으면 싶고, 그냥 좀 내버려 두 길 바라는 마음. 어느 한편에도 외로움은 없었다. 스스로 느끼지 못했기에 비로소 받게 된 관심이 살갑다고 느껴지고 나서야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챈다. 조용히 침잠하고 있지만 잊히지는 않았으면, 아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와 내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관계라면 더욱이. 한 번쯤 스치고 지나갔더라도 불쾌하지 않은 기억이길.
전자레인지가 아닌 가스레인지를 쓴 요리
평일에 혼자 지내는 아버님은 세 끼 식사를 위해 전자레인지를 돌리신다. 코드를 뽑아두었다가 다이소에서 십 수개를 사 둔 전자레인지 용기에 소분해 둔 한 끼 분량의 국을 돌려 반찬을 꺼내 식사하신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혼자 지내는 아빠는 작은 보온 밥솥 하나 가득 밥을 해서 제각각인 플라스틱 반찬 용기에 소분해 얼려둔다. 전기 레인지에 끓인 비린내 물씬 풍기는 국을 베란다 바깥에 두었다가 조금씩 덜어 전자레인지에 돌린 뜨거운 밥을 말아 서서 후룩 때우신다. 전자레인지이든, 가스레인지이든, 전기 레인지이든 외로운 속을 채워주는 것만으로 감사할 수도 있고, 멀리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O수에게 영수가 가스레인지를 사용해 만들어 준 음식은 어쩌면 또 기억이 된다.
생각보다 책을 읽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꾸만 멈칫멈칫한다. 이 책의 끝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더불어 그래서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다. 청소년들에게도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사실 쉽게 읽게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에게 적나라한 이솝우화나 번번이 악인이 등장하는 전래를 쉬이 읽히기 어려운 것처럼, 어른들도 그렇다. 그나마 공상이라 다행이다 싶다. 그러나 때론 이렇게도 현실과 닮아 있는 모습의 미래는 글로 쓰면서도 기억을 살리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그들이 안쓰럽다. 최근에 읽은 또 다른 SF에서도 결국은 환경이 원인으로 등장하고, 이번에도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다시금 기억할 것들이 생긴다. 기억이 없어지는 순간 인간은 삶을 이어나갈 힘을 잃고,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한다.

가만 보면 모두 기억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