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침묵의 시간 ㅣ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열아홉 살 소년과 여교사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 그리고 이별의 문법... 

침묵의 시간... 단순하게 경건한 시간의 침묵을 떠올렸는데 이야기 속의 침묵이라는 단어는 정말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음이 느껴지더군요. 평소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현대 독일문학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지크프리트 렌츠의 소설이기에 더욱 기대를 하며 펼쳐들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좋아했던 선생님에 대한 추억... 하지만 이 책은 짝사랑이 아닌 사회의 틀로 금기시 되어 버린 사제지간의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동경만경’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누가 이 사랑을 금기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요... 사제지간의 사랑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 보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어쩌면 이러한 사회적 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책 소개를 읽고 열 아홉살 소년과 여교사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 그리고 이별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와는 조금 다르게 단순한 사랑을 넘어 뜨거운 열정과 순순함 그리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이 몰려오는 사랑이야기 였습니다. 금기시 되기에 더욱 아슬아슬 하면서도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구성... 한때 연인이었던 슈텔라 선생님의 추모식이 치루어 지는 자리에서 크리스티안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죽음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기도 하고 고백에 대한 전개가 계속해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니 중학생 시절의 선생님 한분이 기억나는데 책의 이야기처럼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갔던 선생님 이었습니다. 문득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궁금해 지네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기 떠가는 꽃들이 내 젊음의 영원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보듬는 크나큰 위안이 되리라는 것을. - 148 page. 

그녀의 영정 사진만이라도 간직하고 싶은 크리스티안이지만 교장선생님은 침묵만이 최선이라며 사진마저 가져가 버립니다. 침묵 속으로 영원히 갇혀 버리게 된 그들의 사랑... 학생대표로의 추도사를 거절하고 슈텔라와의 관계를 침묵의 시간 속에 영원히 간직하고자 한 크리스티안... 절제되었기에 더욱 빛을 내고 타오르는 사랑은 금기시 되는 사랑의 굴레를 벗어버리면서 더욱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어질 것도... 이별의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침착하게 그려져 있어 더욱 그녀에 대한 사랑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더군요. 책을 읽고 난 이후에 쉽게 잊혀지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이 책처럼 짧지만 정말 느낌이 살아있어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지금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꽉 차 있음을 느끼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