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등

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죽음을 통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삶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 

코끼리의 등... 죽음과 맞닥뜨린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표지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제목이 왜 코끼리의 등인지 궁금함을 갖고 책을 펼쳐들게 되었습니다. 책속에서 이 궁금함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맞이할 때 무리를 떠나 홀로 외로이 마지막을 보낸다고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주인공... 사람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욕구가 있나 봅니다. 코끼리의 행동은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세상과의 미련을 끊고 싶은 이유도 있겠지만 인간의 관습처럼 동물들에게도 이러한 룰아닌 룰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느 날 살수 있는 시간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떠한 마음이 들까요?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순간 싸늘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한한 생명이기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아직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나이에 이러한 선고를 받게 된다면 절망적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중견 부동산회사의 부장으로 일하면서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던 중년의 후지야마 유키히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건강진단을 하게 되는데 폐암 말기로 남아있는 시간은 6개월 정도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사형선고와 같은 의사의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아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괴로워 하는 것도 잠깐... 침대에 누워 고통스럽게 삶을 연장하고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기에 어떠한 치료도 거부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며 이별을 준비하게 되는데 첫사랑을 만나 못다한 사랑의 고백을 하기도 하고 고교시절 시시한 일로 싸운 이후 한번도 말을 섞지 않았던 동창을 찾아가 화해를 하고 사업상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저질러야 했던 옛 동료를 만나 사과하는 등...

몇일 전 읽었던 '내 남편의 수상한 여자들'을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사람은 죽음이 가까워 지면 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고 진실된 용서를 구하게 되는 것일까요?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고자 하는 행동일까요 아님 삶을 정리하는 의례같은 것일까요? 후지야마 유키히로의 행동들은 정말 진심에서 나온 것인데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너무도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모습을 볼때면 한편으로는 너무 이기적인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며 자신의 병을 비밀로 하지만 아들 슌스케와 숨겨둔 애인 에스코에게는 이 사실을 털어놓게 됩니다. 아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린 이유는 잊혀지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는군요... 너무나 공감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와 같이 출근한 그는 회사에서 쓰러지고 이를 계기로 해서 아내는 그의 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걱정하고 고통을 줄까봐 아내와 딸에게는 비밀로 했던 후지야마 유키히로... 남자와 여자의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차피 맞딱뜨려야 하는 것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숨긴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는군요... 불륜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음에도 이보다 더 큰 죽음이 눈앞에 있기에 불륜을 너무 소홀히 다루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담담하면서도 가족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이야기 였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