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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이야기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6
사토 쇼고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신상이야기, 사토쇼고,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이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의 느낌은 조용한 스릴러, 그러나 대단한 이야기 라는 것이었다.
일단은 책 소개 부터!
국내 독자에겐 아직 낯선 사토 쇼고는 1983년에 데뷔한 원숙한 작가이다.
( 어쩐지 글 읽는 내내 안정감이 느껴졌다.)
'신상이야기'는 해변에 위치한 평온한 지방도시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 '미치루'가 짓궂은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는 과정을, 그녀를 아내로 지칭하는 누군가가 또다른 제3자에게 설명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진짜 정체는 소설 종반에 다다르기까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누군지 궁금해서 먼저 뒤를 살펴 보기까지 했지만, 모든 걸 읽지 않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작은 지방도시의 서점에서 일하는 미치루는 한 달에 한 번 출장을 오는 도쿄의 출판사 영업사원과 연인 사이. 어느 여름날, 여느 때처럼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를 배웅하러 공항에 나갔다가 충동적으로 함께 도쿄행 비행기를 타고 만다. 손에 든 것이라고는 지갑이 든 작은 손가방 하나와, 근무중 외출하는 그녀에게 직장 동료들이 사다달라고 부탁한 마흔세 장의 복권뿐.
곧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남자의 예상과 달리 미치루는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옛 친구의 집에 머무르며 아예 그곳에 정착해 살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날부터 거듭되는 우연과 실수, 작은 악의, 이기심으로 인해, 몇십 년 동안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온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다.
한 장의 복권, 이라는 말을 보는 순간 감을 잡은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 여자가 복권에 당첨되서 뭔가 신상에 변화가 생기고 일이 생기겠구나. 꽤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하고 들어오지만, 작가는 보란듯이 그 기대를 무시한다. 자신만의 호흡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실, 처음엔 조금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어느새 반을 읽은 내가 보였다. 하지만 중간 중간 너무 안정적인 문체와 구성에 의해 오히려 재미가 약간 반감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흡입력은 굉장했지만, '요리코를 위해'를 먼저 읽은 나로써는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명품 스릴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담한 고백으로 이루어지는 생생한 이미지와 감정들, 그리고 흡입력. 그리고 작가는 중간 중간 이런 담담한 문체를 보강하기 위해 복선이나 불행이 다가올 전조를 분명하게 경고해 준다.
책 소개에도 나오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과거의 사건과 완전히 분리되어 흘러가는 현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역시 아직 깨지 않은 꿈이라고 해야 할 테고, 언젠가는 현실이 어깨를 흔들어 잠을 깨우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미치루와 처음 만난 날 밤 내가 그렇게 그녀의 눈을 뜨게 해준 것처럼, 기습적으로.
_본문에서
기습적으로. 어쩌면 운과 불운은 동일 선상 위에 서 있을지 모른다. 둘 다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나타나 사람의 등을 툭 치고 지나간다. 이 소설은 그런 무심한 손길에 쓸려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지만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이쯤에서 그만해야 할 것 같다.
굳이 내가 별점을 준다면 4점을 주고 싶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결과이다.
탐정물 같이 문체가 강하고 살아있는 듯한 소설을 원한다면 노리즈키 린타로의 '요리코를 위해' 를 추천,
담담한 문체로 강렬한 사건들을 이끌어 나가는 소설을 원한다면 사토 쇼고의 '신상 이야기'를 추천하고 싶다.
추신 - 개인적으로 블랙펜 클럽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여름 서늘한 책의 세계에 빠져 피서를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