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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이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8
김혜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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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빨리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어제보다 5센티미터는 커 보이기도 한다. 어른은 그 속도를 쫓아가기 힘들다. 아이들의 세상은 대부분 어른들으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상처 또한 대부분 어른에게서 온다. '아이'이기 때문에 아직 알 필요 없다거나, 아이는 몰라도 되는 것투성이다. 그렇게 해로운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해로운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아이들은 망각의 숲으로 들어간다.
그 숲에서도 도저히 아이들이 견딜 수 없는 제안을 건다. 소중한 친구 혹은 나와 같은 다른 애들을 데려와야 한다. 어떻게 정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결정은 전부 어른 몫이었다. 결정하는 법을 가르쳐준 적 없다. 아이 혼자 결정하게 두지 않았다. 그런 망각의 숲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한다. 성장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숲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을 때야말로 어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초중반까지 담희와 민진을 보며 아스트리드 린드그린의 《미오, 나의 미오》가(현재 창비에서 《미오, 나의 미오》로 개정판이 나왔지만 처음 읽었을 때 '나의'였기 때문에 그 제목으로 썼다.) 떠올랐다. 미오에는 30년 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실종된 고모는 나오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에게(두 작품 모두 두 아이) 어른에게도 힘든 과제가 주어지며, 두려워하는 적이 존재한다는 점은 특히 닮아있다. 하지만 《돌아온 아이들》에는 보경이 존재한다. 이 모든 과정을 기억하는 어른이 조력자로 등장한다.

사회는 정신적으로 미숙한 어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건 잘못되었다. 정신적으로 미숙한 어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포함한 모두가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미숙한(트라우마를 가진) 보경만이 아이들을 돕는다. 아이들도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자기만의 사회를 꾸려 나간다. 그 환경을 무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만 바로잡아준 채, 어쩌면 방치해야만 한다. 그리고 보듬어야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클 수 없다. 그게 돌아온 아이들이든, 여기에 계속 있던 아이들이든.

=
어쩌면 그래서 담희는 말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삶에서 자꾸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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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엄마가 모르고 있는 게 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건 자식을 잃은 부모만이 아니다. 부모를 잃은 자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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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담희가 있는데도 담희 흉을 보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속상하고 화가 났을 테지만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았다. 말으 잃으면서 마음까지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
어떻게 생겼더라? 그러고 보니 담희는 자기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거울을 통해 보거나 사진을 통해 볼 뿐이다. 직접 볼 수 없는데 그게 자신의 진짜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너는 너무 어려운 말을 해" 하면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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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나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봐?'
"뭘?"
'왜 말을 안 하는지 말이야.'
"수첩에 쓰잖아. 그거면 괜찮아."

=
담희는 장례식장이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다. 원래 장례식은 다 이런 걸까? 다들 할머니를 찾아왔지만 할머니는 없고 할머니만 빠진 할머니의 행사. 담희는 엄마의 장례식도 이랬을까 궁금했다.

=
'슬픔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
민진은 담희를 데려가는 대신 영원한 멈춤을 택했다.

=
하지만 민진이 가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을 때가 있고 그때 민진의 눈동자 안이 텅 비어 있어 그걸 보는 모모마저 슬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 담희는 마음이 꼬집히는 것 같았다.

=
"아뇨. 나는 이제 자라고 싶어요. 나의 시간은 흐를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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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 2 - 11개의 평면도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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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도중, 특히 앞부분 자료를 꼭 꼼꼼하게 읽기를 추천한다. 읽는 도중 소름 돋는 부분이 생긴다면 마지막 파트에서 그 기시감을 해결할 수 있다.
찝찝했던 부분들을 남김없이 긁어모아 풀어해쳐 다시 조립한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수 있다.
스포일러 없이 읽는 것을 추천받은 이유는 다 따로 있다. 스포일러 없이 읽자.

=

특수 청소란 무엇이냐. 요컨데 사람을 집에서 해방시켜 주는 일이야. (중략) 고인이 천국으로 가든 지옥으로 가든 몸의 일부가 집에 들러붙어 있으면 미련이 남겠지? 그래서 우리가 깨끗하게 치우고 닦아 내서 고인을 집에서 해방시켜 주는 거야. 그런 일이지.

=
분명 그렇듯 약삭빠른 잔꾀를 부리며 세상을 헤쳐 왔던 거겠죠.

=
…… 배신당했다는 기분에 치를 떨면서도 그는 끝까지 교단의 세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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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솔티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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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리가 환상이나 허상, 조금 더 가까이 보면 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라고 대하기 쉬운 일을 빠짐없이 챙긴다.
과거로 넘어가 현재로 이어줄 선을 끌어다준다. 그 선이 우리에게 어렵지만은 않다. 이웃집 할머니부터 AI까지 다채롭다. 미리 준비해둔 현재의 선에 연결하고, 두 선이 맞닿은 지점에 또 하나를 연결한다. 미래를 향해 열어둔다. 멀리서 보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회로일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친절하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며 독자를 이끈다.
유독 떠난 이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듬고 준비가 되면 독자들 곁에 데리고 온다. 떠났지만 함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가 되는 건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한 마음이 되는 거라고.

=
시절에 맞춰 시의적절한 정례 행사를 하면서 옛 습관을 이어가는 지극히 평균적인 일상이. 애써 벗어나고 싶었던 한국 풍경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도망친 곳에서 이전과 같은 평균값을 마주하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꺼져가는 걸 보면서도 타오르는 중이라고 여기는 건 일본식 허무 같았다. 그럼 타오르는 걸 보면서 어차피 꺼질 거라고 확신하는 건 한국식 냉소일까?
「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

=
시시때때로 변하는 불확정적인 말들이 사방을 떠돌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즉흥적인 기분이 그럴듯한 이름을 얻었다. 그런 말 속에서 세상은 허술해 보이기만 했다.
「시대 지체자와 시대 공백」

=
나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품앗이로 자랐다. 배고픈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어지며 먹은 것 이상으로 쑥쑥 자랐다. 나는 배고픈 자들이 빚어낸 선의의 총합이었다.

고향이 어디든 우리는 떠나온 존재였다. 언제든, 결국엔 떠나야 했다. 그리하여 또 다른 삶을 이어 붙여야 했다.
「스위트 솔티」

=
지옥이 내 팔자인 거야.

못 죽으면 다 천운인가? 살아남았으면 거기가 다 천국이야?
「순애보 준코, 산업위안부 순자」

=
어떤 이는 나의 퇴행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나에게 좀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게 내겐 성장이었다.
「타고난 시절」

=
소녀들은 퇴출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이야기 밖으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직접 만든 이야기 속 주인공에 빙의해, 각자의 해방으로 향하려 했다.
「브라이덜 하이스쿨」

=
112나 119를 불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은유였는데 현실이 소설의 은유를 허락하지 않아 슬프고 끔찍하다. 다시는 이런 세력에게 막대한 권력을 부여해선 안 된다.
「작가의 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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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회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 림 문학상 수상작품집 1
성수진 외 지음 / 열림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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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의 웹진과 젊은 작가 소설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거였던 것 같다. 비상식적으로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낭만과 친절이 담겨 있다. 세상이 분명 비정상적인 건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 그 마음이 좌절되기도 하며 꺾이기도 하고 저 바닥 아래에 처박히기도 한다. 영웅 같은 주인공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견디고 견뎌 튀어 오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이라면 다르다. 그들은, 우리는 힘이 없다.
웹진과 네 권의 소설집에 이어 드디어 직접 고르고 고른 문학상으로 이들은 결코 튀어 오르는 것이 '이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견디는 것 또한 이기는 것이라고 곁에 있어준다.
출간 계절을 맞춘 수상작품집은 아니겠지만, 유독 이번 겨울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다섯 명의 작가의 이야기가 2024년의 시린 겨울을 견디게 해준다.


=
끝이 갈라지고 앙칼진, 수현의 귓가에 곧장 내리꽂는 고함을.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수현은, 빌라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지금과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연지 씨는 어머니 사인을 창피해한 게 아니었어요. 슬퍼서 찢어 버린 거예요."
"뭐든, 찢어 버린 건 찢어 버린 거죠. 어렸을 때잖아요."
「눈사람들, 눈사람들」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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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많은 교사일수록 아이들 앞에서와 어른들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어느 것이 본래 모습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가 주장하는 자신의 거울상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살고 싶다니, 얼마나 순진한 환상인가 싶었다. 나는 인간에게는 거짓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가릴 거짓.
「포도알만큼의 거짓」이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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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릴 새도 없이 누가 바깥에서 계속 돌리는 회전 뱅뱅이를 탄 것처럼, 많은 일이 한꺼번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났다.
「우주 순례」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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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독한 년이네."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 욕을 듣는 건 영수 자신뿐이었다. 전화를 건 여자에게 한 건지 스스로에게 한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휴대전화를 내던진 후 고개를 들자 거울 속의 영수가 멍청하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영수는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언니까지 함께 버려줘서.
「얼얼한 밤」이서현

=
거북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뭍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물비늘 아래에서 하늘을 구경하고 싶은 것 같다. 밑이 더 고요하고 찬란하니까.
「날아갈 수 있습니다」장진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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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 우주입니다 - 안과의사도 모르는 신비한 눈의 과학
이창목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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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는 해적의 상징 중 하나이고, 특히 창작물에서는 반맹, 외팔, 외다리인 경우가 많다. 부상을 입더라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력에 특별한 이상이 없더라도 안대를 쓰는 해적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밀짚모자 일당 중 한 명인 조로는 왜 아직까지 안대를 쓰지 않을까?

이유를 추측해 보자.

1. 실제로 실명하지 않았다.
조로처럼 눈에 흉터를 가진 샹크스, 레일리, 후지토라 중 실제로 시각 장애를 가진 건 후지토라 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눈꺼풀까지 흉터를 가진 건 조로를 포함한 샹크스, 레일리고, 후지토라는 한쪽은 아주 살짝 흉터가 있을 뿐 눈꺼풀에는 흉터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2. 미호크가 길치인 조로가 답답해서 만든 흉터다.
일리가 있다.

3. 조로의 큰 그림이다.
검사로서의 수행 중 하나로 한 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이다. 사실 세 가지 추측 모두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한쪽 눈을 실명하면 법적으로 시각장애에 해당된다. 반대편 눈의 시력이 좋다면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안 실명은 경증에 속한다. 단안 실명인은 시각장애인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딸 수 있지만, 애초에 조로는 왼쪽 오른쪽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길치이기 때문에 합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한쪽 눈만 보이면 시야가 좁고 거리감 및 입체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검술에 상당한 주의 집중이 필요하다. 따라서 저자가 설명하는 <역사 속 반맹과 시각장애> 파트의 내용을 빌려서 추측하자면 수행 중 하나로 보는 것이 가장 일리 있다.

이 책은 단지 눈의 구조나 우리가 사물을 보는 원리만 설명하지 않는다. 원피스 조로의 반맹에 관해 떠오를 정도로 토막 상식부터 일상생활에 가까운 시력을 나타내는 단위의 이야기까지. 심지어 들어가는 말에서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가볍게 넘기고 재밌는 부분만 읽어도 좋다고 말한다. 부제로는 '안과 의사도 모르는 신비한 눈의 과학'인데, '과학'에 보다는 '안과 의사도 모르는'에 초점을 두고 읽는다면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겠다. SNS를 떠들썩하게 한 검파흰금 드레스의 비밀부터(나는 원리를 알고도 아직도 검파로 보인다) 유독 한국 사람들, 그중에서 아이들이 안경을 많이 쓰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그 이유까지 흥미로운 사실들 투성이었다. 저자도 안과 의사이지만, 아마 많은 안과 의사도 모르는 사실들일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림까지 담아냈다.

과학이라는 과목이 유독 싫은 사람이라면 허들이 높을지도 모르는 책이지만, 그 허들을 넘을 필요가 없고 관심만 있다면 그 허들 옆으로 돌아오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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