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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사양 -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다자이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더스토리 / 2025년 9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 최고의 작가로 꼽는 인물입니다. 언제 조사하더라도 최소한 3위 안에 드는 작가죠.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동경제대에 진학했지만 사회주의에 심취했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 또한 많은 이들의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하죠..
소설 사양은 그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인간실격에 살짝 가려져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작가의 작품 중 재미 측면에서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양은 저무는 해를 가리키는 말이죠.. 한국에선 '사양세'에 접어들었다는 관용어로도 많이 쓰입니다.. 제목 그대로 태평양 전쟁 이후 몰락한 어느 일본 화족(귀족) 집안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폐번치현을 단행한 일본 정부는 그간 각 번을 지배하던 영주나 신정부 건설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유럽식 작위제를 본딴 화족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황족 다음의 귀족제가 도입된 것이죠,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화족제는 폐지되고 수많은 이들이 허울뿐인 전직 귀족들로 전락합니다.
소설은 여전히 귀족의 품위가 남아 있는 어머니, 화자인 딸 가즈코, 아편 중독 등으로 방황하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남동생 나오지, 나오지의 스승이면서 가즈코의 애정 대상이 되는 통속소설가 우에하라 등 4명의 이야기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을 연상케 하는 작품입니다. 제대로 몰락했음에도, 끝까지 알량한 귀족의 품격을 내세우고자 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만 벚꽃동산보다 훨씬 비극적이고 어두운 느낌의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한참 전에 이미 읽어 봤던 소설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또다른 느낌과 해석으로 다가오네요.
초판본 디자인이 주는 매력에 읽다가도 종종 표지를 다시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다소 공허하게 들리지만 소설 곳곳에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소설 속 그 누구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사안들이고 심지어 다자이 오사무 본인 또한 끝내 닿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끝내야 했었습니다.
가즈코는 우에하라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정신 승리하며 혼자 살아 남지만 솔직히 '아무 의미 없다'란 것이 이 소설 전반을 흐르는 기조일 것입니다. 패전 이후 일본인들이 뼈저리게 느꼈을 좌절감이 이 소설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역시나 위대한 작가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여운을 남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