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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2월
평점 :
2차 대전 이후 전범국 독일과 일본의 대응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독일은 종전 이후에도 한참 동안을 국가 지도자 급인 총리들이 피해국을 직접 찾아다니기까지 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거듭했던 반면, 일본은 단 한번도 한국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유감이니 사전에도 없는 말인 통석의 염이니 하는 애매한 말 정도가 나온게 다입니다.
정통성이 없음을 만회하고자 외향적 경제 발전에 올인하던 초기 군사 정권에게 일정 보상금과 차관을 제공하고 이걸로 퉁치자는게 일본의 입장이었죠.
이런 와중에 우리가 강제 징용과 위안부 등 개별 피해자 보상을 요구하면 이미 끝난 일이라며, 오히려 일본에게 무례한 행위를 철회하라는 무역 보복 압력이 있었고, 지금 들어선 한국 정부는 충실히 일본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말입니다.
마침 읽게 된 고호 작가의 '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는 일본의 강제 징용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입니다. 또한 일본이 역으로 당했던 북한 측의 '일본인 납치 사건'을 같이 버무려 피해자 배상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권 차원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고작가는 이 책 외에도 상당히 재미나 보이는 소설을 많이 쓴 작가더군요..
이 글의 주인공 문준기는 강제 징용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둔 청년입니다. 어느날 그는 현 일왕 나루히토의 친 딸인 아이코 공주(놀랍게도 현실에서도 실존 인물입니다)를 납치해 강제징용공 문제 해결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힌 그에게 도달한 누군가의 또다른 메시지...
준기의 할아버지 유골을 찾아 줄테니 일본인 납치 행불자인 유리코의 행적을 밝혀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던 이 두 건은 어떻게 서로 얽혀 접점을 찾게 될까요?
일본이나 북한 측 실존인물 들이 실명으로 등장해 소설은 어느 정도 핍진성을 갖추고 전개됩니다.
심지어 북한의 현 지도자 김정은의 생모로 밝혀진 고용희조차 실명으로 등장하여 맥거핀 역할을 수행합니다.
현재 한일 양국의 복잡한 외교 관계가 얽혀 있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고, 소설 속에서나마 당당한 한국인의 모습과 달리 일본에 애걸복걸하는 듯한 현 정부의 태도가 대비되어 더더욱 집중하고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해외 출국이 예정되어 있어 빠르게 읽은 것도 있지만 소설 자체의 재미가 더욱 빠른 속독을 가능하게 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