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스 페이지터너스
그레이엄 그린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미문학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코미디언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아이티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미국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번째로 독립을 쟁취해 낸 나라였던 아이티는 지배국이었던 프랑스의 과도한 배상금 요구에 시달리던 중 20세기 초 미국의 침략을 받아 준식민지 같은 나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미국의 구미에 맞던 지도자가 극우반공 인사임을 자처하던 프랑소아 뒤발리에라는 전직 의사입니다. 더군다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점도 사회주의 혁명을 맞은 쿠바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입장에 부합했죠..

그러나 뒤발리에는 아이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나라로 변모시킵니다.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우파반공 세력이 집권한 나라들이 그러했듯 경제는 시원하게 말아 먹었고, 통통마구트(부두교 용어로 악마)라는 속칭으로 불리우던 친위대를 이용해 정적과 반대 세력을 열심히 공산주의자로 몰아 무려 3만 명을 넘게 처형시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을 감옥에 수감합니다. 어째 이런 역사는 비슷하게도 어디에서건 반복되는 듯 합니다.

자신이 중병에 걸리자 이제 19세가 된 자기 아들을 종신 대통령으로 올려 세습 왕조를 구축하게 되죠.. 그들 2대의 통치를 거치면서 아이티의 문맹율은 90%에 달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아이티에서 추방되거나 스스로 떠나게 됩니다.. 세계 최빈국의 영예(?)는 뭐 덤이었을 뿐이죠..


이 소설은 뒤발리에 대통령의 극악스런 통치가 정점에 달할 무렵 이 곳에 같은 배를 타고 도착하게 된 호텔 운영자 브라운, 미 대선 후보로 나섰던 스미스 부부, 사기꾼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존스 소령 등 세 명의 인물이 주가 되어 서사를 풀어 나갑니다.

이들이 그 어찌 사고하고 행동하건 비정상적인 시스템의 아이티 내부에서 그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코미디언에 불과합니다.. 운영하던 호텔로 돌아온 브라운을 기다리던건 대통령에게 밉보여 정치범으로 전락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살한 시체입니다...

채식주의를 아이티에 실현하려던 스미스 부부는 진지한 자세로 아이티를 대하지만 이들의 진지한 모습 그 자체가 코미디에 다름 없습니다.

통통마구트를 대상으로 무기 판매 사기를 치려던 존스는 어느 순간 정치적 망명자로 둔갑해 타국 대사관에 얹혀 사는 신세가 되죠..

지금까지도 전 세계 최빈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아이티의 가장 냉혹했던 시기를 다룬 작품임에도 이 소설이 가진 기본적인 재미는 상당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빨리 마무리 되는 것이 속상할 정도였으니까요..

한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데다가 카리브해의 낙원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었던 아이티라는 국가가 지도자 하나를 잘못 만나게 됨으로써 어떻게 파탄의 길로 달려가는지를 직설적이지만 때론 은유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작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