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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
모셰 애들러 지음, 이주만 옮김 / 카시오페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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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이면을 보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경제학의, 세상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의 주된 이론으로서 주장되어왔고, 이러한 이론과 주장들을 토대로 경제학의 교과서들이 작성되어 왔다. 하지만 이론들이, 주장들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학교를 다니면서 교수님께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어떠한 사회현상이 나타났을때, 그것에 대한 논의를 철학이나 인문학 등에서 그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가 발전되면 사회학 분야에서 이러한 논의를 받아서 각각의 영역에 맞는 분야로 발전시키게 된다. 그리고, 사회과학의 분야에서 최종적으로 현상을 정의하게 된다." 라고.


내가 경제학에 매료되었던 부분도 이러한 부분이었다. 다른 학문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근걱가 빈약해 보이는데 반해, 경제학은 학문으로서 불릴만한 최소한의 이론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고,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학문으로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제학을 처음 배우던 당시에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내가 배우는 것들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알게된 부분이 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이며, 경제학 뿐만 아니라 각 학문은 각자 자신에 맞는 이론과 토대를 가지고 각자의 방향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겠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봐야 한다고.. 물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사실관계를 따져보지는 못했지만, 일반적으로 주류경제학이라고 불리는 학자들의 주장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가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반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는 경제학을 단순한 사칙연산만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으며, 단순하지만 통찰력 있는 질문을 통해 경제학이 가지는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 닿았던 구절은 아래부분이다.


"어떤 정책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다들 공리주의자가 되어 그들이 과연 수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면서도, 부자가 사회자원을 마구 집어삼킬 때에는 과연 그것이 정당한 몫인지 계산해보지 않는다."

최근에 생긴 무상급식의 논리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평등과 분배를 떠나서 교육이 가지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그리고 중고등학교까지가 사실상 의무교육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문제를 논할때는 수혜?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따지면서도, 부자나 대기업들이 사회자원을 대부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여론이 조성되지 않는 것처럼..


서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경제학에서 '효율성'과 '임금이론'(여기서는 한계생산성 이론쪽을 의미하지만)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때로는 정치의 언어로, 때로는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져 왔으며 그 논리가 가지는 무결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이론이 이론으로서의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현실의 설명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현실과의 연계를 통해 학문이 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학문이 어느 한쪽의 대변자가 되어버리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기후변화 문제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환경 보호 정책이라고 하면 부자나 감당할 수 있는 배부른 정책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서머스의 주장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환경 보호 정책을 법제화하고 중앙정부에서 집행하면, 이는 재분배 정책이 된다. 제1세계에서 환경 보호 정책이 꼭 필요한 이유는 그 나라가 부자여서가 아니라, 그 나라에 가난한 공동체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가난한 공동체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공장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와 깨끗한 환경을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들은 전자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환경 법규를 제정해 중앙정부에서 이를 강제하면 노동자가 협상 자리에서 자신의 건강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일률적으로 환경 보호 정책을 집행할 때 가장 가난한 공동체에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간다."

결국 환경보호정책 같이 다수에게 혜택은 돌아가지만, 격차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는 효율성의 원리보다 공리주의적 입장이 더 선호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의 효율성만 따져서는 존속될 수 없는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이 있다.

물론, 그 효율성을 계산하는데 있어서 어디까지, 누구까지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화폐가치로 계산될 수 없는 것들은 효율성에 반영되지 못한다. 메시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시에 치료를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판단했다면 신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불리우는 그의 플레이을 우리가 감상할 수 있었을까? 당시에 현재의 편익을 계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효율성'이 때로는 얼마나 판단하기에 부족한 기준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잠재가능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기대. 이 모든것을 계산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계산할 수 있는것만으로 판단하는 효율성의 기준을 통해서 성립된 경제학, 그리고 세상의 기준이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야 하지 않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보는 기준은 각자 다양하게 가지고 있겠지만, 자신이 보는 면이 전부가 아닐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른면을 보아야 하지 않냐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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