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에서 기쁨과 신뢰가 분수처럼 터져나오던 때. 저 아래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마음놓고 내려와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어 그 사람에게 정말 마음껏 안겼던 그 날이.그런데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누군가를 잡은 손과 놓친 손이 같을 수 있다.‘하지만 지우는 ‘때로 가장 좋은 구원은 상대가 모르게 상대를 구하는 것’임을 천천히 배워나갔다. 실제로 그 시절 지우는 용식 덕분에 그나마 한 시절을 가까스로 건널 수 있었다. 용식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극적인 탈출이 아닌 아주 잘고 꾸준하게 일어난 구원. 상대가 나를 살린 줄도 모른 채 살아낸 날들.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김애란 작가님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머문다.채운이도, 소리도, 지우도 모두가 빛나는 삶을 잘 살아가기를.넘어지고,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각자의 길을, 삶을 잘 걸어가기를.뭉치를, 엄마를, 용식이를 잃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마음의 뿌리를 내려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마음 속 깊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