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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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가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책에선 사회보험 노무사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안온한 시선으로 소란스러운 그들의 세계를 그린다.

주인공인 히나코 씨(일본소설을 읽고 나면 예의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 뒤에 -씨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는 버려지지 않기 위해 사회보험 노무사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렇게 야마다노무사 사무소에 취업하게 되고, 사무소에서 의뢰받은 일을 하나씩 하나씩 처리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병아리는 일본어로 히요코다. 히나코라는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고 신입이라는 이유로 히나코 씨는 병아리(히요코)’로 불린다. 신입사원이 보여주는 고군분투가 귀엽기도 했고 남일 같지 않기도 했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며 일을 처리하고 하나의 일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히나코 씨의 사적인 업무일지를 보는 듯했다.

 

책날개 뒤편에 인물소개가 있는 것이 특이했다. 대부분 출판사의 다른 책을 광고하는데, 이 책의 뒷날개에는 사회보험 노무사라는 직업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주인공이 일하는 야마다노무사사무소의 직원들을 소개한다.

또한 표지색이 책의 내용과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 생활밀착 미스터리라고 해서 조금은 무겁고 무서운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서투른 주인공과 잔잔한 작가의 문체가 더해져 주는 특유의 포근함이 있었다. 은근한 재미와 일에 대한 유익한 정보로 독자를 끌고 가는 귀여운 소설이었다.

"정말 어리네. 병아리 씨와는 종류가 다른 미숙함이야. 병아리 씨한테는 여행 선물로 사오는 달콤한 팥소가 든 빵 같은 안일함이 있는데 그 아이에게는 푹신푹신한 솜사탕 같은 안일함이 있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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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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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학이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작가의 글들을 많이 읽었었다. 공감도 많이 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어쩐지 내 안에 있는 감성이 돌덩이처럼 딱딱한 형질로 느껴져 불편했다. 어딘가 모르게 세상과 소통하면서도 단절된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은 나의 굳은 마음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중화의 역할을 한다.

전체적으로 어휘 선택부터 따스운 글들이라 대부분 좋았지만, 그래도 유별나게 좋았던 글 한 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팩트 체크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글은 울림과 교훈을 줬다. 작가는 ‘친밀할수록 비판 정신을 괄호 안에 넣어두라고’ 한다. 또한, 이를 서로가 번갈아가면서 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나는 친한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 때문에 상처를 자주 받지만, 다른 인간관계로 치유받기도 한다. 내게도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는 묘연한 밤들이 있었다. 서로 수용하고 배려해 주면 좋지만, 뇌를 거치지 않는 발언이나 나를 눈곱만치도 배려하지 않는 상대방을 보면 갑갑함이 치민다. 그래서 (상대방이 느끼기엔) 갑작스럽게 연락을 끊는다든지, 멀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편인데, 그렇게 사건을 정리하다 보니 이젠 한계에 도달한 상태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심리학적인 관점으로 강조하면서 산소 발생기 같은 사람을 만나라고 추천한다. ‘심리적 산소’라는 말이 있는데, 작가가 그 표현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그 표현이 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 같은 필연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며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따뜻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창작 행위에 의무감을 부여하고 싶진 않아서 소설가는 이래야 한다, 시인은 이래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그 경험을 타인과 나눌 수 있으려면, 애초에 경험을 통해서 성장이 가능하려면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따뜻함이란,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알며 나의 고통과 고민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들도 공감할 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 이 책의 작가는 좀 전의 것들을 다 충족한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다음은 좀 더 나을 거라고, 내일은 더 행복할 거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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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책표지부터 이야기하자면,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강이 되어 홍학이 떠 있다. 이때 홍학과 아이스크림은 같은 색이다. 이 그림은 ‘넘어져도 상처만 남지 않았다’는 제목과 일맥상통하다. 넘어져도 상처만 남지 않은 것처럼, 아이스크림이 녹아도 액체만 남은 것이 아니다. 또 책 뒤표지에 적힌 추천사도 책을 빛내는 데에 한몫했다. 추천사를 쓴 이들이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다. 둘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추천사가 참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한 사람은 심리학과 치유의 관점에서, 또 한 사람은 시와 음악의 관점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굿즈. 개인적인 취향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책갈피라는 것 자체로도 좋았지만 디자인이나 책 속에서 따온 문구도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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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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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주 내가 창피한 순간들이 생겼다. 반성의 층위를 넓혔더니 종종 자기 혐오로 이어지는 날들도 있었다. 긍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보기 싫었다. 마른 나뭇가지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마흔살, 사추기에 퇴사한 ‘김소민’씨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기자였던 삶도, 직업을 떼고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도, 자신이 약자였던 순간도, 자신보다 더 많은 약자를 경험한 마음도 모자람 없이 와 닿았다.
1부 <퇴사 1년, 흰머리가 쑥대밭이다>에서는 퇴사 후에 느끼는 감정과 퇴사하는 과정, 퇴사 후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부 <내 나이 마흔, 나는 나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에서는 40살의 욕망, 나이듦, 지난 삶에 대한 지난한 기록들을 담고 있고 3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고?>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사람과 삶의 관계성이랄까, 사람 사이에 느낄 만한 마음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4부 <사람에겐 무조건적인 환대가 필요하다>에서는 자신의 약자였던 일들과 더 많은 약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에세이집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공감’이다. 실제 겪었던 일이나 그 일로 인한 감정과 과정과 결과들이 독자에게 가 닿는 작업이 에세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내게 에세이 읽기란 꽝이 더 많은 뽑기 같았다.
내가 이 에세이집에서 당첨된 뽑기는 작가가 딸로서 느끼는 엄마에 대한 마음과 고민이었다. 엄마의 그늘 아래서 어린 시절을 지나 사춘기를 겪을 때까지 나는 엄마와 덜 부딪히며 성장했다. 그래서 다 큰 지금 엄마와 뒤늦게 갈등 상태다. 나라는 사람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줘야 하는 존재고 엄마의 아픔을 덜어낼 수 있는 첫째딸이며, 엄마에게 언젠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를 누를 만큼의 부담감이 느껴질 때나 엄마가 베푸는 친절에 부채의식을 느낄 때마다 엄마에게 필요 이상의 화를 냈다. 요즘 엄마와 많은 대화도 하고 마음가짐을 바꿔가고 있지만 쉽진 않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 모든 것에 엄마의 몫이 있다고 말한다. 행복도 고민도 어느 정도 엄마의 몫은 있다고 말이다. 책 덕분에 나와 엄마는 서로를 과잉보호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놓는 연습을 통해 더 친밀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엔 입사도 아직 못 한 내가 퇴사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 했던 날들에 대해’라는 부제목 때문에 서포터즈를 신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처를 준 것을 모른 척 한 것이 아니라 아닌 척 했다는 디테일이 나랑 비슷했다. 내가 내게 준 상처는 부메랑보다는 눈덩이 같아서 상처가 생긴 당장에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질량으로 다가온다. 나보다 커진 상처가 날 향해 달려올 때면 자존감이 바닥 나버린다. 내게 상처를 주지 말자, 주더라도 아닌 척 하지 말고 치료해주자 라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소설이 아닌 장르에서 진한 여운을 받은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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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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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는 고등학생 때 만나 사십 대인 지금까지 붕대처럼 감아진 상태로, 그래서 언제 풀릴지 모르는 관계를 이어오는 진경과 세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경과 세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관계가 그려지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우리’라는 말의 무게에 대하여 재고해보았다.

진경, 세연, 윤슬, 효령, 형은, 채이, 경혜, 은정, 지현, 혜미 등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목소리 중에서도 나는 짧지만 울림이 있었던 지현의 목소리가 인상 깊었다. 지현의 혜미의 미용실에서 일하는 헤어 디자이너로, 아들이 쓰러져 의식불명인 상태의 손님 은정의 이야기를 혜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지현은 언젠가 은정과 은정의 아들이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왔을 때, 은정의 아들이 사고를 쳤는데도 아무런 수습을 하지 않는 은정을 혼자 욕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는 미용실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 은정은 미용실에 들렀고, 지현은 은정의 이야기를 알게 되며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참회한다.
또 지현은 가정 안에서는 부모님께 오빠와 차별을 받고, 친구의 입장에서는 불법촬영 피해자인 친구 미진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 죄책감을 느껴 집회에 나가고 운동에 동참하면서도, 동시에 탈코르셋 운동과 자신의 직업이 꾸밈노동인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다. 사실 지현의 고민들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지현의 목소리가, 목소리에 담긴 고민들이 나의 현재와 비슷해서 울컥했던 것 같다.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파를 나누어 논쟁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향하는 목표가 달라서 멀어진 사이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 책은 어떤 상황인가, 라는 현재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라는 미래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어 좋았다. 특히, 이 책은 사회 속 개인을 주시하는 소설이다. 모든 소설이 그렇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를 다뤘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인과 개인 사이, 아니 사이라기보다는 틈에 집중한 소설 같았다. 두 사람 이상의 관계성, 관계 사이에 벌어진 틈에 주목하는데, 이 모든 것이 페미니즘으로, 연대로 묶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같은 세대의 여성들의 틈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의 여성들의 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어서 넓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우리, 라는 말을 좋아했었다. 어떤 공동체에, 집단에 소속된 것 같은 그 느낌과 누군가의 경계 안에 속해있다는 친밀함이 다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라는 호명이 누군가에게 구분 짓기로 해석될 수도 있고, 그 해석이 편 가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조심했지만, 여전히 친한 사람들의 이름 앞에는 ‘우리’라는 말이 자주 자리하곤 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전화번호부에 있는 ‘우리’라는 말을 모조리 지웠다. 한없이 다정했던 단어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져서였다. 여전히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자주 사용하진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럼에도 ‘우리’라는 말이 필요한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붕대처럼 서로의 아픈 마음을 감싸는 아량이 생기는 그날까지 소설 속의 많은 문장들을, 메시지를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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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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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이라는 제목 때문에 끌렸는데, 영어 제목은 <The house of broken angels> 였다. 이 소설에 더 어울리는 제목은 영어 제목인 것 같지만,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은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을 잘 정한 것 같다. (편집자 분이 정한 제목인가. 소제목도 적절하고 좋았다. 다만 ‘이제 가요, 아부지’라는 소제목은 아쉬웠다. 아부지라는 말은 아버지라는 말의 멕시코 방언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을까?)

인물이 많고 가족이라는 집단 속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시트콤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표현하였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폭력의 장면이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묘사하는 것에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또한, 가정 내에서 자신의 권위를 꾸지람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빅 엔젤의 어떤 부분이 ‘빅’한건지 나는 진정 궁금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감각을 통한 묘사를 정말 자세하게 잘하고 의도나 메시지는 의미 있었다.

멕시코라는 공간을 더 알고 싶었는데 끊임없이 등장하는 익숙한 프랜차이즈 때문에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장소성을 지키려는 세계 각지의 노력들을 못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죽음과 가족에 대해 의미 있는 책이라서 출간을 결정한 건지는 모르겠다. 이게 멕시코의 문화고 한국과의 차이이니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문화와 작품성 이전에 인간의 존엄성이 앞서 있다는 점, 그 인간의 범주에 여성도 포함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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