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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요즘 자주 내가 창피한 순간들이 생겼다. 반성의 층위를 넓혔더니 종종 자기 혐오로 이어지는 날들도 있었다. 긍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보기 싫었다. 마른 나뭇가지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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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마흔살, 사추기에 퇴사한 ‘김소민’씨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기자였던 삶도, 직업을 떼고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도, 자신이 약자였던 순간도, 자신보다 더 많은 약자를 경험한 마음도 모자람 없이 와 닿았다.
1부 <퇴사 1년, 흰머리가 쑥대밭이다>에서는 퇴사 후에 느끼는 감정과 퇴사하는 과정, 퇴사 후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부 <내 나이 마흔, 나는 나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에서는 40살의 욕망, 나이듦, 지난 삶에 대한 지난한 기록들을 담고 있고 3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고?>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사람과 삶의 관계성이랄까, 사람 사이에 느낄 만한 마음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4부 <사람에겐 무조건적인 환대가 필요하다>에서는 자신의 약자였던 일들과 더 많은 약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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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공감’이다. 실제 겪었던 일이나 그 일로 인한 감정과 과정과 결과들이 독자에게 가 닿는 작업이 에세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내게 에세이 읽기란 꽝이 더 많은 뽑기 같았다.
내가 이 에세이집에서 당첨된 뽑기는 작가가 딸로서 느끼는 엄마에 대한 마음과 고민이었다. 엄마의 그늘 아래서 어린 시절을 지나 사춘기를 겪을 때까지 나는 엄마와 덜 부딪히며 성장했다. 그래서 다 큰 지금 엄마와 뒤늦게 갈등 상태다. 나라는 사람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줘야 하는 존재고 엄마의 아픔을 덜어낼 수 있는 첫째딸이며, 엄마에게 언젠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를 누를 만큼의 부담감이 느껴질 때나 엄마가 베푸는 친절에 부채의식을 느낄 때마다 엄마에게 필요 이상의 화를 냈다. 요즘 엄마와 많은 대화도 하고 마음가짐을 바꿔가고 있지만 쉽진 않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 모든 것에 엄마의 몫이 있다고 말한다. 행복도 고민도 어느 정도 엄마의 몫은 있다고 말이다. 책 덕분에 나와 엄마는 서로를 과잉보호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놓는 연습을 통해 더 친밀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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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입사도 아직 못 한 내가 퇴사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 했던 날들에 대해’라는 부제목 때문에 서포터즈를 신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처를 준 것을 모른 척 한 것이 아니라 아닌 척 했다는 디테일이 나랑 비슷했다. 내가 내게 준 상처는 부메랑보다는 눈덩이 같아서 상처가 생긴 당장에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질량으로 다가온다. 나보다 커진 상처가 날 향해 달려올 때면 자존감이 바닥 나버린다. 내게 상처를 주지 말자, 주더라도 아닌 척 하지 말고 치료해주자 라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소설이 아닌 장르에서 진한 여운을 받은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