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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여름 - 이정명 장편소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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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화로 유명한 화가 한조의 아내가 하루아침에 모습을 감춘다. 책상에 소설 한 권만 두고 말이다. 19살의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유린한 것으로 모자라 철저히 예술적으로 이용하는 한 화가와 소녀의 만남과 이별, 30년 전 살인사건에 대한 진범 이야기, 아내의 구상과 기법을 훔쳐 큰 성공을 하게 된 화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모든 내용은 사실과 가짜를 교묘히 섞어 쓴 소설로, 출간되면 분명히 자신에게로 화살이 날라올 것은 뻔했다. 한조는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은 이 소설 한 권이 망가뜨릴 것이라 확신하며 18살의 여름을 떠올린다. 각자 기억들의 편린이 모아지며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는데..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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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조의 18살의 여름, 하워드 주택과 맬컴 주택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이좋은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 안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과 몇 가지의 거짓말은 그들을 철저히 비극으로 몰고 간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위해 했던 거짓말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희생자를 만들었다. 자신의 기억조차 거짓말대로 교묘하게 편집되어 기억해버린 인간의 이기적임과 사랑과 분노라는 양가적인 감정의 결말은 25년 전과 다를 바 없다. 모두의 거짓말을 쫓으며 만나게 된 진실은 충격적이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오해하고, 분노하고, 왜곡하고, 그럼에도 사랑에 빠진다.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라면 당연한 이 감정이 가져온 행동들을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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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에 대한 공방이 끝날 때까지 풀리지 않는 흥미진진함을 가진 소설이다. 진실에 가까울 수는 있지만 진실은 아니라는 그 말이 소설의 주제를 꿰뚫는다. 모두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우물에 독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내는 소설 속에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그 안에는 도사리는 거짓과 왜곡이라는 독 한 방울 때문에 그녀의 복수는 본질적으로 실패다. 진실에 가까울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었다. 거짓이라는 독약이 들어간 우물을 길어다 써야 했던 두 가정은 모두 독약을 나눠 먹게 된 셈이었다. 아내의 복수가 진행되며 이로써 세 가정은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되었다.
🔖진실에 가까운 건 진실이 아니에요. 독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우물물 전체가 독약이 되는 거예요. -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