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랑 나는 작은 절벽의 정상에 서서 커다란 만(바다가 육지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 바다에서 불어온 산들바람에 할아버지의 사프란 예복이 살랑살랑 흔들렸고 태양은 강렬하고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었어. 모래사장 위에는 개를 산책시키러나온 사람들과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비치 의자에 누워 있는 용감한 가족도 두셋 보였어. /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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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는 잠시 그림을 멈추더니 대답했어요.
"내가 늘 그림을 그리는 건 채울 공간이 많기 때문이에요. 기부하는 건 좀 더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고요. 어디에나 그림을 그리는 건 모두에게 예술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러고는 키스는 다시 길거리로 돌아가 주머니에서 분필 하나를 꺼내더니……

계속 그림을 그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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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아니었다 한들, 서로 다른 길을 거쳤다 한들 어떠랴.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면, 그 순간이 빛나는 기억으로 남았다면,
혜리는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을까, 과학관에서의 나를? 나조 차도 왜 울었는지를 설명할 길 없는 그때의 나를, 그 소년을, 그 시절을 함께 꺼내보는 게 어쩌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닐 것 같았다.
-덜 바쁜 날 있으면 한번 볼까? 내가 연구소로 갈게.
- 무슨 일 있어?
-지난번 그 부탁에 응할까 해서..
기억이든 정신이든 자아든 그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는 것의 일부를 공유하는 일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르는 새로운 길을.
길지 않은 침묵을 깨고 혜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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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별별 사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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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소설의 첫 만남 13
정세랑 지음, 최영훈 그림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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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는 비열하면서도공정한 모양이다. 문제는 절박하고 절박한 씨름 선수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다. 그때의 나처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안쪽으로는 살아가는 일의 비참함에 이를 악문 이가 어딘가에 아직은 무른살로 걷고 있을 텐데. 물 밑에서 걸어 나온 끔찍한 몰골의 도깨비에 등 돌리지 않고, 샅바도 없이 밤새 씨름을 할 스스로의 단단함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가.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어쩐지 머지않은 날, 만나게 될 거라는 예감이든다. 나를 닮은, 일찍 은퇴한 씨름 선수 한 명이 내인생에 걸어 들어올 거라는 그런 예감이. 8년이 남아 있으니까. 8년이나 남았으니까.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묻는 게 요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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