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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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혼군이 무언지 검색을 해보니 혼군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뜻한다.

흔히 조선의 3대 혼군을

나라를 버리고 도망을 간 선조, 인조, 고종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이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좀더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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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정권은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 그토록 엄청난 곤욕을 치르고도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이는 정권 전체가 무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본문 중 -p131,132



차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 책은 병자호란 전 인조, 병자호란 중 인조 그리고 병자호란 후 인조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고 차례만 봐서도 인조시대에 정세의 흐름을 알 수 있게 저술하고 있다.


제1부 병자호란 전 인조

1. 광해군

임진왜란과 광해군ㅣ광해군의 술 취한 밤 ㅣ광해군 일가의 최후

2. 이괄의 난

1624, 이괄의 분노ㅣ 2일 천하 ㅣ 안전하게 도망갈 곳, 남한산성

3. 조선 국왕, 인조

"그대를 봉하여 조선 국왕으로 삼노라"ㅣ돌아보건대, 너희들과 그들이 무엇이 다른가ㅣ가도를 깔고 앉은 모문룡

4. 누르하치

누르하치의 맹세ㅣ누르하치의 후금 건국 ㅣ 강홍립, 명과 후금 사이에서ㅣ영원성 패배와 누르하치의 죽음

5. 홍타이지

홍타이지의 조선 정벌ㅣ정묘년(1627), 다국적국 3만 조선을 침략하다ㅣ평안 감사 윤훤 참수당하다

6. 혼군

인조는 또다시 강화도로 도망치고ㅣ"후금이 형이 되고 조선이 아우가 되다"ㅣ정묘호란 최대 승리, 용골산성전투ㅣ소현세자의 분조ㅣ정묘약조의 후폭풍ㅣ멸망의 길로 들어선 명나라ㅣ황제가 된 홍타이지ㅣ파국으로 치닫는 양국 관계


제2부 병자호란 중 인조

1. 남한산성

병자호란, "죽여야 할 자는 죽이고, 노획할 자는 노획하라"ㅣ최명길 홀로 적진으로 들어가다ㅣ석달 열 나흗날 밤, 인조 남한산성에 도착하다ㅣ소 두 마리, 돼지 세 마리, 술 열 통

2. 갇혀 있는 왕

"나를 구하라"ㅣ쌍령전투 : 왕을 구하려다 죽어간 군사들ㅣ김준룡 부대, 적장 양구리를 전사시키다ㅣ병자호란 최대의 승첩, 김화전투ㅣ"조선 국왕 이종은 삼가 대청국 황제께 글월을 올립니다"

3. 강화도에서 일어난 일

강화검찰사 김경징ㅣ강화도 함락ㅣ강화도는 지휘부의 무능으로 무너졌다ㅣ스스로 목숨을 끊는 부녀자들ㅣ김경징 사사당하다

4. 삼전도의 굴욕

"신이 안심하고 귀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소서"ㅣ세 번 절하고 아홈 번 머리를 조아리다ㅣ삼학사ㅣ김상헌, 최명길 심양으로 압송되다ㅣ비극! 청으로 갑혀간 피로인들


제 3부 병자호란 후 인조

1. 의혹의 두 인물

미원 산골자기로 숨어든 도원수 김자점ㅣ임경업은 명장(名將)인가, 명장(明將 : 명나라 장수)인가?

2. 미약한 희망

조정 연합군ㅣ소현세자의 심양길ㅣ역관 정명수의 패약ㅣ소현세자의 고국 방문ㅣ1,000일 갈이의 밭

3. 착오와 정세

청 태종, 홍타이지 죽다ㅣ여섯 살 황제와 섭정왕 도르곤ㅣ명의 운명을 걸머진 오삼계ㅣ소현세자, 명나라의 최후를 목격하다ㅣ청의 북경 천도ㅣ도르곤의 죽음과 의순공주의 비극

4. 무능과 광기

소현세자와 아담 샬ㅣ소현세자의 죽음ㅣ검은빛ㅣ강빈의 사사ㅣ비극의 끝


인조 1636의 서두는

그 전 왕인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하고, 임해군과 영창대군의 목숨을 앗아간 폐모살제와 배명금친을 명분으로 일으킨 인조반정(1623)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조 반정 이후 인조 재위 시에는 나라가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반정에 참여했던 공신들 중 2등 공신에 머물러야 했던 이괄이 인조 재위 1년도 채 되지 않아 난(1624)을 일으켰으나 2일 천하에 그치고 말았지만 민심은 여전히 인조에게 가지 않았다.


그 후 후금(훗날 청)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게 되는 정묘호란(1627)이 일어나고 종전 후 청에 의해 10여년 만에 병자호란(1636)이 일어난다.

명과의 의리를 지키고 오랑캐 나라인 후금을 배척하겠다는 명분으로 인조 반정을 일으킨 인조시대 배금사상은 정묘호란 발발하는 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후금에 패한 뒤 조선과 후금 사이에 강화협상인 4개 조항의 "정묘약조"를 맺게 되고 후금은 4개 조항의 내용만 요구한 것이 아니라 명 정벌에 나서면서 조선 측에 군비지원과 함께 전함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병자호란 발발 후 남한산성의 항전 속에서 지휘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강화도까지 함락되기까지의 이야기도 여러 사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는 청에 볼모로 있는 동안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에 의해 천문, 역법과 함께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 서양문물을 수입해 부강한 나라, 조선의 발전을 꿈꾸기도 하지만 8년 만의 귀국 후 청이 인조 자신을 입조시키고 세자에게 양위를 시키지 않을까 하는 의혹 때문에 인조는 시종일관 소현세자에게 냉대로 일관했고 귀국 2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소현세자의 장례를 마친 이후 소현세자빈인 강빈 또한 인조에 의해 사사된다.



인조하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전란 중에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왕, 삼전도의 굴욕인 삼전도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청에 항복한 무능한 왕을 떠올리게 된다.

인조 1636 책을 보면 여러 차례 인조와 조정 대신들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많은 사료를 통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

역사는 그 당대가 아닌 훗날의 기록으로 판단되어 진다고 하는데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록들을 보면 비록 재위 시절부터 불안정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안위만을 생각치 않고 민심을 살피고 국방력 강화에 힘을 쏟았더라면 오늘날 혼군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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