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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평점 :
출판사 측에서 먼저 서평을 제안해주셔서 알게된 책이다. 한 때 건축가도 해보고 싶었고, 지금도 건축을 좋아해서 온갖 건축 유튜브는 다 챙겨보는 사람이 나인데... 무려 건축가가 쓴 추리 소설이라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읽어보겠다고 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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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따뜻한 비밀이 숨겨져있는 추리 소설은 너무나 오랜만이라 다 읽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요즘의 추리 소설... 다 누가 죽고 다치고 뭘 뺏기고 빼앗고 형사에 경찰에 탐정에... 이게 추리 소설의 전형적 모델이고 물론 그것들도 재미있는 글들이 많지만 난 이런 추리소설이 더 좋은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건축가가 추리하여 풀어내는 집과 건축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비밀. 일단 이것부터 이 책을 굉장히 매력있게 만드는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작가가 건축가라 그런지 주인공도 건축가이다. 주인공은 파리 시테섬 시내의 집을 구하기 위해 집 주인의 시험처럼 보이는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집에 숨겨진 건축을 이용한 놀라운 장치들과 그 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정말 따스한 비밀들을 알게된다. 그 집에 살아갈 이를 위해 집을 설계한 건축가가 고려한 많인 장치들을, 왜 그렇게 만든 것인지, 주인공을 따라가보면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데 그것이 참 재미있고 즐거웠다.
이 책에는 크게 2개의 건축물이 나오는데, 하나는 '4월 15일의 비밀'이라는 옛 수도원을 리모델링하여 건축한 요양 병원으로 쓰이는 저택과, 시테섬에 있는 낡은 저택이다. 주인공인 뤼미에르는 시테섬에 있는 낡은 저택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집 주인인 피터 왈처를 만나기 위해 '4월 15일의 비밀'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피터의 수수께끼 같은 일종의 테스트를 파헤치다가 그 건물 곳곳에 숨겨진 건축의 아름다움과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시테섬의 저택에서도 이어져서, 독특한 구조물이 많았던 그 저택에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있는지 찬찬히 깨닫게 되고, 그 속에 숨겨진 따스한 진실을 뤼미에르는 피터에게 전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중에 유현준 교수님이 하시는 '셜록 현준'이라는 채널이 있다. 교수님이 계속 강조하시는 것이 자연과 가까운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말씀이신데, 두 건물 중 '4월 15일의 비밀'이 이 말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채광을 이용해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건축적 디자인하며, 자연과 건물 내부를 연결하기 위해 뚫은 벽면의 구멍들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그러했다. 많이 스포일러가 될까 자세히 말하지는 못해도!! 책에서 묘사되는 4월 15일의 이 건물의 모습을 보면 꼭 한 번 진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테섬의 저택을 보면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생각났다. 이 또한 스포일러...이지만 그래도 간단히 말하면, 뤼미에르가 처음 시테섬 저택에 왔을 때 의아하게 느꼈던 부분들이 사실은 그것을 직접 이용할 이를 위해 설계된 디자인들이었다는 점이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점에서부터, 집에 살아가고 집을 사용할 이를 신경쓰고 고려하는 것이 진짜 건축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도심에 서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뭐, 서울에는 자하 하디드나 프랭크 게리,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훌륭한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은 아파트 옆에 아파트 옆에 또 아파트... 정형화된 직사각형의 공간들이 시선에 가득 찬다. 건축주의 수가 적고 그렇기 때문에 찍어내듯이 비슷한 건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공간 속에는 아마 대부분 그 집에 직접 살아갈 사람들을 고려한 개별의 디자인은 없다. 그저 건축주는 아파트를 만들어 돈을 벌기 위해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건축가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 건축주들이 많으니 그냥 기존의 아파트와 비슷한 설계를 하고, 시공사는 매번 똑같은데 이름만 다른 건물을 찍어낸다. 참 안타까운 현실일 수 밖에...
그러면서 '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의 대부분 거주환경이 비슷하고 획일화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좀 더 다양하고 사용자에 맞는 다양한 건물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비슷한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살면서 그 공간이 각자에 맞게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 이유는 그 집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가, 마음이, 추억과 기억이 깃들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뤼미에르는 생각한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집은 그저 돈으로 치부될 수 없다. 몇 억짜리, 몇 평짜리 집으로 말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너무나 강렬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제주도를 그리워하고 더 편하게 느끼는 이유도, 제주도에 있는 우리집,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 쌓아온 가족과의 유대와 행복한 기억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대전이 아직 더 어색한 이유는 이곳에서 내가 보낸 시간과 쌓아온 기억들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집은 단순한 구조물,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깃들고 손때가 묻어있어 함부로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책 한권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추리 소설이지만 무겁지 않고, 건축 방식이 많이 나타나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따뜻한 마음과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추리의 과정과 그 비밀, 건축가의 의도와 그것이 반영된 디자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풍족해진다. 추리를 기대해도 재밌을 것이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더 재밌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푹 빠져들어서 읽었다. 이야기의 설계도, 건축물의 설계도 완벽했다!!
이 글은 북로망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