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흐르는 대로 - 영원하지 않은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해들리 블라호스 지음, 고건녕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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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치료를 받고 병원을 찾으며... 간호사 선생님들은 참 많이 만났다. 기억 속에서 대부분 다들 좋은 분이셨다. 난 간호사라는 직종이 얼마나 다양한지 몰랐고, 그저 단순하게 안과엔 안과 간호사가, 내과엔 내과 간호사가 계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 소개를 읽으며 '호스피스 간호사'라는 존재를 내가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 그 명칭을 들어보고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 간호를 하는 분들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한 번도 보거나 접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며 이 책의 저자 해들리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공통점은 모두 삶의 마지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느낀 점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담당한 12명의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와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들의 모든 마지막 순간들을 보다보면 해들리가 느꼈던 것들을 나도 느끼게 된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많은 이들이 생에 가장 사랑했지만 먼저 떠나보낸 이들을 만나고, 갑작스러운 힘으로 죽음 직전 평소처럼 행동하고, 잊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를 보고 가고자 어떻게든 버텨내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수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수 할머니를 통해 해들리는 '손을 놓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저 곁에 있어주며 위로하고 연대하는 일이 갖는 큰 의미를 깨닫는다. 그 전까지 그녀는 아직 호스피스 간호사가 아닌, 일반 간호사의 입장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한 방향으로만 생각했는데, 사실 호스피스 간호사의 역할은 자신이 맡은 환자가 그저 편하게 마지막을 향해 갈 수 있게 조력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된 것이다. 고통 속에서라도 삶을 이어가는 것과 편안한 상태에서 마지막을 맞는 것.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 할 수 있을까.

전에 읽은 '안락'이라는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책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아프고 복잡한 80-90대의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하고, 그 때문에 벌어지는 주변의 일들을 써낸 글인데, 이 책을 읽을 때에도 똑같은 질문을 되뇌이고 또 되뇌었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정말로 미지의 세계이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에 또렷한 답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죽음'이 두렵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일엔 면역이 없다. 그러나 이 책으로 하여금 내가 느낀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있다는 것 아닐까. 죽음 직전의 시간을 기록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저마다의 삶이 소중했고, 사랑이 함께했고, 세상은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그래서 매일을 주어진 것에 충실하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삶이 흐르는 대로> 라는 제목처럼, 삶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가고 그것엔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일구어나가고 사랑하는 이들을 조금 더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생애 아닐까.

오늘도 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요가를 하고, 선선해진 공기를 맞으며 달리기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글을 쓴 후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것이고, 저녁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것이며, 밴드 연습도 할 것이다. 그 후엔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고 내일을 위한 잠에 들겠지. 이것이 내가 내 삶을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그대들도 그대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흘려보내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마지막 순간에 후회 없을 나날들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은 다산북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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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 -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김아인 지음 / 허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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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에서 나오는 SF 소설은... 일단 기본적으로 모두 읽을만 하다는 것이 나의 굳은 믿음이다. 그래서 이번 신작 소설 <스파이라> 서평단을 모집할 때에도 글을 보자마자 신청했고... 역시 이번에도 내 믿음은 배신당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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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는 먼 미래, 전염병 에피네프 발생 후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배경으로한다. 이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AE라는 회사로, 죽음 이후에도 사람들의 정신을 가상 세계로 업데이트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웨이쉬안은 이 회사에서 남겨진 육체, 반송체를 처리하는 일을 하는 AE의 직원이다.

웨이쉬안은 연인 페이를 에피네프로 잃고, 일하던 중 그녀를 반송체의 모습으로 다시 마주한다. 그리고 그 이후 사건들이 시작된다. AE의 연구원인 하라바야시 가스미가 개발한 새로운 기술, 그것을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AE, 죽음 이후의 삶을 원치 않았던 이들의 반송체, 그 속에 숨겨진 AE의 궁극적 목적. AE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그 모든 것 위에 마치 '신'처럼 존재하는 어떤 이... 이 복잡하고 어두운 세계에서 웨이쉬안은 숨겨진 비밀들을 마주하고, 마지막에 이르러 그 만의 선택을 하게 된다.

책을 다 읽으며 아주 재밌었다. 주제 자체는 뻔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인 웨이쉬안이 이 이야기에서 해내는 역할이 독특하다고 생각했기에 흥미로웠다. 보통, 세상의 비밀을 알게되고 그것을 파해치던 주인공이 구원자가 되는 결말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스포일 수 있음) 이 책의 마지막에서 웨이쉬안은 구원자가 될 수 있는 선택지를 앞에 두고도,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앞에 두고도, 그저 고독한 한 개인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아마 그의 선택의 이유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깨달은 떠나간 사람들의 영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결말이 만약 웨이쉬안이 AE를 격파한다거나, 옛연인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디스토피아적이고 어두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것을 택했고, 그것이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대립하고 싸우고 희생당하지만 적응하고 순응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무너져내려도 삶을 없애버리거나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저 그 때 내 최선의 선택을 하고 묵묵히 걸어나가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지금도 다를 것이 없다. 에피네프나 AE가 없어도 우리는 이 시대를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삶을 꾸려내고 유지하며 숨쉰다. 웨이쉬안이 마지막에 한 선택은 결국 이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그것이 더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을 가지고 더 나아질 미래를 기대하며 도망치지 않는 것이니까...

이 책의 또 좋았던 부분은, 다국적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웨이쉬안이 성장한다는 점이다. 염장이로 시작해 AE의 반송체 처리 일을 하던 웨이쉬안이 그들을 만나면서 삶에 대해 생각하고 개인에 대해 생각하고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일이 즐거웠다. 때로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다. 그 많은 이들이 웨이쉬안의 결정을 빚어냈다.

인간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에 로봇과 인공지능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또 다른 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인간으로 가득찬 이야기라 더 좋았고, 그 인간들 각자의 신념과 욕구가 빚어낸 이야기들을 읽는 건 더 좋았다.

조금 탈식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AE의 기본 기술을 개발한 것이 비서구권의 아시아 출신 연구원들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을 합의 없이 가져다가 쓴 것이 AE라는 점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연구원을 꿈꾸는 사람이라 더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길지는 않은 장편이었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 책이라 읽는 내내 나도 웨이쉬안과 함께 성장한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은, 결말이 좀 더 비중있고 세밀하게 다루어졌다면 더 깊은 감상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점? 시작에 비해 끝이 빠르게 후다닥 지나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결말을 천천히 풀어나갔다면 더 몰입감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작품의 메세지와 완성도, 지루하지 않은 진행방식들이 굉장히 재미있었기에! <스파이라> 왕 추천한다. 역시 믿고 보는 허블 SF!

이 책은 허블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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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공부를 시작하고 인생의 불안이 사라졌다
할미언니 지음 / 필름(Feelm)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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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먼저 제안해주셔서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유튜브도 보는 것만 보고... 그마저도 잘 보지 않아서 이 책을 쓰신 할미언니가 어떤 분이신지 잘 몰랐다. 그래도, 최근 경제 쪽에 대한 지식을 좀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감사하게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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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 '할미언니'라는 분의 영상은 한 개도 본 적이 없다... 책은 그냥 책으로만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무튼, 이 책만 두고 봤을 때 경제 공부를 좀 해봐야겠어, 돈을 좀 모아보고 싶은데 대체 어디서부터 건드려봐야할지 모르겠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직장이 있고 어느정도의 일정한 수입원 (월 백단위의) 이 있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제태크의 입문으로, 아직 그런 수입원은 없지만 미리미리 알아두고 싶고 조금이라도 절약하여 저축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20대 초반 (나) 들에게도 한 번 즈음 읽어봐 둘 책으로 좋은 것 같다. 용어만 들어봤지 뭔지 잘 모르던 연금, 제태크, etf, 통장의 다양한 종류 등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가 지금 선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의 절약, 저축, 제태크가 무엇인지 알고 내 소비 습관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다.

아직 갓 스무살이지만 ... 난 내가 늙었을 때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꽤 하는 편이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살 수 있을까, 마당이 딸려있고 땅을 소유하고 임대를 주고 필요한 것은 모두 제약 없이 누리며 살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두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제태크를 시작한 분이라 많이 공감이 갔다. 더군더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아서 옷 구매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자신에게 최대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내가 진심인 것에만 돈을 쓰고 (나의 경우, 책과 요가), 보여주기 식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똑같아서 내심 뿌듯했다...ㅋㅋ 게다가 파킹 통장과 적금은 이미 운용하고 있어서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책을 읽은 후에 가계부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용돈으로 생활하는 20살의 나이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보자는 마인드를 갖기로 했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작가는 성인이 되자마자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수많은 알바를 했다고 하는데, 난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지원이 충분한 상황이고 아르바이트로 안그래도 빡센 학교 공부를 할 시간을 줄이고 싶지 않아서 적어도 대학생 때까지는 지원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해 나 자체의 가치를 높이기로 했다. 책에서도 20대는 젊은 나이이며 그 때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하니... 그것에 좀 더 집중해보려 한다.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뭐라도 아껴야할 것 같고 무작정 안 쓰고 많이 남기는 것만이 절약이고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1년 반 학교를 다니고 이것저것 깨달았는지 진짜 내가 진심을 것을 위한 소비와 나를 성장시키는 소비 (교육 등) 은 날 위한 진정한 투자라는 생각을 했다. 배울 수 있을 때 배우고 모조리 습득해버리자.

책에 나온 팁과 조언들을 모두 수행해볼 수 있는 안정적 수입원이 보장된 시기가 어서 오면 좋겠다. 주식도 어렵고 위험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충분한 공부와 조사를 통해서 조금씩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잘 저축해서, 그리고 현명하게 저축해서 평생 돈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삶을,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때가 오면 다시 펼쳐보고 조언을 구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서평을 쓰다보니 이 분이 유튜브를 통해 어떤 말을 전하시는지도 궁금하다!

이 글은 필름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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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열아홉 해의 생일선물과 삶의 의미
제너비브 킹스턴 지음, 박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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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조부모님이다. 그 분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그분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가끔은 두렵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게 되어서 무섭다.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늙는다. 어느날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미래가 오면 난 어떻게 될까. 그들이 없을 시간들도, 그것에 심히 슬퍼하고 방황하게 될 나도 그냥 모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마음이 흔들렸다. 사랑하는 엄마를 열두살에 잃고 지금에 와 이 회고록을 쓰기까지, 이 책의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만나고 아픔을 극복하고 역경을 이겨냈을까.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유방암을 만나 치료에 힘 쓰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어머니의 죽음을 서술하고, 어머니가 열아홉 해의 그녀의 생일에 남긴 선물과 그녀의 삶에 있을 중요한 순간마다 남긴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선물들이 하나씩 열리면서 그녀는 성장해나간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녀는 성취하기도, 좌절하기도, 슬퍼하기도, 행복해하기도, 많을 것을 더 잃어버리고 또 그만큼 얻어내기도 한다.

그녀를 위한 무한한 사랑을 담아, 죽기 전까지 선물을 포장하고 짧은 편지를 남기는 어머니의 마음이 상상되어 가슴이 아팠고, 그것을 매년 열어보는 그녀의 모습을 읽을 때는 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시간은 멈춰버렸는데 나의 시간은 흘러가고. 흐르는 나의 시간을 위해 엄마가 준비해둔 선물을 차곡차곡 열어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그 선물들은 그녀를 성장하게 한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이란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하던 공간을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성장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자신이 받았던 사랑만큼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자 한다. 방황하던 시절을 지나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흔적을 좇으면서 어머니를 더 이해하고 한 단계 나아간다. 지금의 그녀는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이젠 어머니에 대한 회고록을 쓸 수 있을만큼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딸의 삶의 중요한 이벤트들을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어머니가 그녀에게 남긴 선물, 편지, 비디오... 그것들을 보자면 나도 눈물이 난다. 그것을 모두 준비하면서 그녀의 어머니는 더 그러했겠지. 그녀가 7살 때, 어머니에게 영상을 남겨달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인간이 가장 먼저 잊는 것이 소리라고 한다. 나도 몇년 전부터 종종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상을 찍어두고, 목소리를 녹음해두곤 한다. 그 분들이 나에게 이것저것을 설명해주시던 그 소리를, 순간을 영원히 간직해두고 싶다. 잃고 싶지 않다. 같은 마음이었겠지.

책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많은 기록 중, "너희가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바로 너희가 행복하게 사는거야." 라는 말과 "엄마는 너희의 일부라서 잃어버릴 수가 없거든." 이라는 말, 그리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단다. 엄마는 너의 일부가 될거야. 온 힘을 다해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 언제까지나." 라는 말을 만날 때는 눈물을 찔끔 흘린 것 같기도... 할머니가 나에게 자주 해주시는 말과 너무나 닮았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할 때의 마음은 국적나이를 불문하고 닮아있구나.

책을 여러번 곱씹고 난 지금도 나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일이 여전히 두렵다. 무섭고 또 마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이 언젠가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받아온 무수한 사랑을 기반으로, 그분들을 위해 내가 더 열심히 행복해져야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다. 유독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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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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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측에서 먼저 서평을 제안해주셔서 알게된 책이다. 한 때 건축가도 해보고 싶었고, 지금도 건축을 좋아해서 온갖 건축 유튜브는 다 챙겨보는 사람이 나인데... 무려 건축가가 쓴 추리 소설이라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읽어보겠다고 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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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따뜻한 비밀이 숨겨져있는 추리 소설은 너무나 오랜만이라 다 읽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요즘의 추리 소설... 다 누가 죽고 다치고 뭘 뺏기고 빼앗고 형사에 경찰에 탐정에... 이게 추리 소설의 전형적 모델이고 물론 그것들도 재미있는 글들이 많지만 난 이런 추리소설이 더 좋은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건축가가 추리하여 풀어내는 집과 건축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비밀. 일단 이것부터 이 책을 굉장히 매력있게 만드는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작가가 건축가라 그런지 주인공도 건축가이다. 주인공은 파리 시테섬 시내의 집을 구하기 위해 집 주인의 시험처럼 보이는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집에 숨겨진 건축을 이용한 놀라운 장치들과 그 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정말 따스한 비밀들을 알게된다. 그 집에 살아갈 이를 위해 집을 설계한 건축가가 고려한 많인 장치들을, 왜 그렇게 만든 것인지, 주인공을 따라가보면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데 그것이 참 재미있고 즐거웠다.


이 책에는 크게 2개의 건축물이 나오는데, 하나는 '4월 15일의 비밀'이라는 옛 수도원을 리모델링하여 건축한 요양 병원으로 쓰이는 저택과, 시테섬에 있는 낡은 저택이다. 주인공인 뤼미에르는 시테섬에 있는 낡은 저택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집 주인인 피터 왈처를 만나기 위해 '4월 15일의 비밀'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피터의 수수께끼 같은 일종의 테스트를 파헤치다가 그 건물 곳곳에 숨겨진 건축의 아름다움과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시테섬의 저택에서도 이어져서, 독특한 구조물이 많았던 그 저택에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있는지 찬찬히 깨닫게 되고, 그 속에 숨겨진 따스한 진실을 뤼미에르는 피터에게 전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중에 유현준 교수님이 하시는 '셜록 현준'이라는 채널이 있다. 교수님이 계속 강조하시는 것이 자연과 가까운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말씀이신데, 두 건물 중 '4월 15일의 비밀'이 이 말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채광을 이용해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건축적 디자인하며, 자연과 건물 내부를 연결하기 위해 뚫은 벽면의 구멍들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그러했다. 많이 스포일러가 될까 자세히 말하지는 못해도!! 책에서 묘사되는 4월 15일의 이 건물의 모습을 보면 꼭 한 번 진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테섬의 저택을 보면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생각났다. 이 또한 스포일러...이지만 그래도 간단히 말하면, 뤼미에르가 처음 시테섬 저택에 왔을 때 의아하게 느꼈던 부분들이 사실은 그것을 직접 이용할 이를 위해 설계된 디자인들이었다는 점이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점에서부터, 집에 살아가고 집을 사용할 이를 신경쓰고 고려하는 것이 진짜 건축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도심에 서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뭐, 서울에는 자하 하디드나 프랭크 게리,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훌륭한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은 아파트 옆에 아파트 옆에 또 아파트... 정형화된 직사각형의 공간들이 시선에 가득 찬다. 건축주의 수가 적고 그렇기 때문에 찍어내듯이 비슷한 건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공간 속에는 아마 대부분 그 집에 직접 살아갈 사람들을 고려한 개별의 디자인은 없다. 그저 건축주는 아파트를 만들어 돈을 벌기 위해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건축가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 건축주들이 많으니 그냥 기존의 아파트와 비슷한 설계를 하고, 시공사는 매번 똑같은데 이름만 다른 건물을 찍어낸다. 참 안타까운 현실일 수 밖에...


그러면서 '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의 대부분 거주환경이 비슷하고 획일화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좀 더 다양하고 사용자에 맞는 다양한 건물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비슷한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살면서 그 공간이 각자에 맞게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 이유는 그 집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가, 마음이, 추억과 기억이 깃들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뤼미에르는 생각한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집은 그저 돈으로 치부될 수 없다. 몇 억짜리, 몇 평짜리 집으로 말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너무나 강렬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제주도를 그리워하고 더 편하게 느끼는 이유도, 제주도에 있는 우리집, 할머니할아버지 집에서 쌓아온 가족과의 유대와 행복한 기억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대전이 아직 더 어색한 이유는 이곳에서 내가 보낸 시간과 쌓아온 기억들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집은 단순한 구조물,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깃들고 손때가 묻어있어 함부로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책 한권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추리 소설이지만 무겁지 않고, 건축 방식이 많이 나타나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따뜻한 마음과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추리의 과정과 그 비밀, 건축가의 의도와 그것이 반영된 디자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풍족해진다. 추리를 기대해도 재밌을 것이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더 재밌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푹 빠져들어서 읽었다. 이야기의 설계도, 건축물의 설계도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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