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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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다산 책방에서 엔솔러지 형식의 소설집을 여러 권 내는데 내가 가장 먼저 접하고 아마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소설집은 페미니즘 소설집인 <현남 오빠에게>일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여러 엔솔러지 소설집이 기획되었고 이 소설집도 그런 형식의 소설집이 아닐까 싶다.

 

우선 이 소설집의 첫인상은 작가진이 화려하다는 것.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이라니 현재 세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 아닌가.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교보문고 한국소설 베스트 칸에 당당히 올라가 있다. 이 소설은 이 작가들이 나의 할머니라는 주제로 쓰인 여러 단편이 모여있는데 참 개성적이고 재밌다. 엔솔러지 소설집의 장점을 극대화한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중에서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이 가장 좋았지만 맨 처음이라 부담스러워서 패스했다. 다른 소설들도 좋지만, 애정하는 손보미 작가의 <위대한 유산> 이나 손원평 작가의 SF소설인 <아리아드네의 정원>도 좋았다.

 

우선 <위대한 유산>의 설정 자체는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 미리 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떨어져 자라난 딸과 지방에서 그녀를 기르는 할머니 <맨해튼의 반딧불이>에서 제시된 짧은 소설에선 어머니의 시점으로 소설이 쓰였다. 참 기묘한 사건으로 이어진 이 소설은 우연성이 엮어져 필연성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지만 각 등장인물의 해석되지 않는 행동은 참 손보미 작가스럽기도 했다. 그러한 모호성은 답답하지만 참 흥미로운 부분이다. 미스터리하고 스릴러 같고 비극으로 점철된 가족사에 관한 소설, 항상 손보미 작가 소설을 보면서 느끼는 기분은 소설이 좋은데 좋은 이유를 모르는 좋음이랄까.

 

<아리아드네의 정원>은 기성 작가가 쓴 SF라 그런지 흥미로웠지만 사실 출산율과 인구를 국력의 척도로 삼는 기존의 관념을 그대로 답습하고 그에 따른 상상이 구현되어서 참...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소설은 참 많다. 우선 마지막 부분에서 이민자 출신인 아이들이 세금 많이 잡아먹는 유닛 시스템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며 유닛을 습격한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문제를 노인 인구를 해소 (살해한다던가, 그들의 사회적 보호장치를 해체)하자는 주장이 윤리적 기반은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 이 소설에서 젊은 이주민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폭동으로 판단되고 잔인하게 진압될 것이다. 이런 문제에 관한 논의는 토요일 웹툰의 <스페이스 킹>안락사편을 보면 자세하게 논의된다. 이렇듯 SF에서 말하는 고령화 문제는 이미 많이 논의 되어 왔고 현실에서는 인간을 늙지 않게 하는 방법을 논의 중이다.

아 쓰다 보니 이 소설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다. 그만큼 현재의 시점에서 고령화 문제를 평가하는 건 SF적으론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선 늙지 않게 된 사람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었을 때 일어날 일을 고민해야 새롭다 할만하다. 고령화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은 명백히 국가주의적인 관점이며 나아가서는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국가에 있다는 선언과 같다. 고령화에 대한 새로운 해결방법은 결국엔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밖에는 없으므로... 그렇기에 아쉽고 아쉽다. SF붐이 일면서 프로 작가들도 SF소설을 한두 편씩 쓰는 경우가 많은데 SF라는 소재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 잘 모르니 다들 한번씩 써본 그런 이야기들을 새롭다고 쓴다. SF는 명백히 계보가 있는 장르이고 그 계보를 잘 모르면 결국엔 남들이 쓰고 쓰고 또 쓴 그런 소설을 쓴다. 인구조절물은 이미 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 잘 만들어지고 쓰인 소설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란 것이다. 장강명도 기껏해야 쓴 SF가 엄청난 악평에 시달리는 <노라>였다. SF는 전통과 클리셰의 테두리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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