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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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는 서문에서부터 경악스럽다. 어떻게 보르헤스가 서문을 쓰느냐. 서문2의 작가인 존 스칼지는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전쟁>시리즈로도 유명한 작가이다. 한국의 SF작가들도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를 읽고 SF를 쓰기 시작했다고 할 정도로 SF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소설이다.

 

말이 <화성 연대기>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소설은 실제의 화성이 아닌 초능력자 화성인이 등장하고 인간이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대기를 지닌 별이다. 잘못된 번역에서 기인한 유서 깊은 화성 운하도 등장한다. 실제 화성의 모습이 배경인 SF보다는 환상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작가가 쓰고 싶은 소설을 다 쓴 연작 소설집에 가깝다. 코미디 스릴러, 서정적인 만남에 검열에 대한 증오를 품은 메타 픽션과 미국 역사를 비판하는 모험물도 등장한다. 장르 소설에서 등장할 수 있는 종합 소설집으로까지 느껴진다.

 

운하에 대한 오해는 이탈리아 천문학자의 화성에 관한 논문 중에 등장한 협곡운하라고 번역하는 대에서 기인했다. ‘운하라는 인공적인 건축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문명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화성에는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는 달은커녕 대기권을 넘은 우주선도 존재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1940년대의 천문학지식은 현재에 비해서 공백이 많은 편이었고 같은 태양계 안에서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불과 30년 만에 인간은 달에 가게 되고 인간의 세계관은 더욱 멀리 확장된다. SF는 이러한 세계관을 충실히 반영해왔다. 1950년 이전까지 화성을 배경으로 쓰인 SF 소설들은 <존 카터>시리즈나 <화성 연대기>처럼 화성인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존재한다. 그 시절 화성은 낭만으로 가득한 별이었다.

다른 SF를 보다가 <화성 연대기>를 읽으면 웬 로켓을 이렇게 많이 타나 싶을 것이다. 1940년대에 쓰인 이 소설이 쓰이는 시점에서 로켓은 현재의 초광속 우주선과 비슷한 느낌의 운송수단일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개봉하기도 전이니 우주선에 대한 이미지도 확립되기 이전이기도 하고.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다양한 테마를 이룬다. 공통된 서사는 지구인의 화성 이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소설 중에서 내가 가장 좋게 느꼈던 소설은 <하늘 높은 곳의 길>이다.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그때까지 백인들에게 예속된 흑인들이 화성으로 가는 로켓을 타기 위해서 몰려가는 소설이다. 그들의 주인이었던 백인들은 그 상황에 말 그대로 멘붕한다. 소설이 쓰인 1940년대에는 흑인 차별이 생생하게 실존하던 시기였다. 그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예의 바른 흑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화성으로 가기 위해서 모여든다. 급류처럼.

몇몇 백인 주인들이 그들을 막으려고 헛수작을 부리지만 평생 탄압받은 흑인들은 그 수작을 물리치며 끝끝내 로켓을 타러 간다. 그 숭고함 자유에 대한 의지는 성경 속 출애굽기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평생 주인으로 살았기에 자신들의 소유물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백인 주인들의 심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들의 저열함도 그리고 그 흐름을 바라보는 무력함도 말이다. 어쩌면 점차 고조되는 흑인 차별 철폐의 고고한 분위기를 작가가 SF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백인 주인들은 자유를 외치며 나대는흑인들을 린치하고 죽이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고 흑백차별을 강조한 법들은 철폐되었다. 계급제 속에서 자신의 저열한 분노를 풀어낸 백인 남성들의 심리를 읽어 내리는 것은 괴롭지만 시원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그들은 뒷방 늙은이처럼 때 쓰는 어린아이처럼 헛소리만을 중얼거리다. 사라질 것이다. SF의 사회적 참여 형식으로써 이만한 예시를 본 적이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차별하고 억압하는 자의 삐뚤어진 심리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인간의 무한한 의지에 대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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