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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힘
에릭 M. 우슬러너 지음, 박수철 옮김 / 오늘의책 / 2013년 11월
평점 :
'신뢰'라는 단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인 '믿음'이라는 단어에 비해, 사용빈도는 비록 적지만, 좀 더 고급스럽고, 그 뜻이 한층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신뢰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하나 둘 모여 살면서부터 시작된 개념이 아닐까 싶다. 신뢰라는 것은 결코 인간이 혼자 있을 때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명 이상의 '타인'이 있을 때, 그 타인과 나 사이에 생기는 개념이고, 이것은 곧 '협력'의 관계로 이어지고, 뭔가를 이루는 성과를 만들어 낸다. 그런 점에서, 이 '신뢰'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단어'에 더 가깝다.
저자는 이 신뢰에 관해, 좀 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 나름의 방식으로 분류를 하고 있다. 개인적 신뢰, 일반적 신뢰, 전략적 신뢰 등의 개념을 내세우지만, 그 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책 전체를 꿰 뚫는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도덕적 신뢰' 이다. 이 도덕적 신뢰는, 기존의 학자들의 정의한 '신뢰'라는 개념에서, 조금 거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낯선 사람에 대한 믿음' 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에 더욱 익숙해 질려고 한다. 어제 보았던 사람과 만나는 게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 보다 더 편한건 사실이고, 어제 걸었던 길, 어제 했던 일이 더 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새로운 길을 걷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신뢰'의 문제와도 이어지게 된다. 아무래도 인간의 본능은, 자신과 친한 사람, 자신과 익숙한 사람을 좀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다고 했을 때, 죽마고우에게는 선뜻 빌려줄 수 있어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빌려주기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개념을 '전략적 신뢰'와의 반대개념으로, '도덕적 신뢰'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익숙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닌, 낯선 것, 낯선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도덕적 신뢰'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 도덕적 신뢰의 예로, 미국의 한 지역의 과일가게를 들고 있다. 사람이 직접 관리 하지 않고, 손님들이 가게를 사고, 그 돈을 자물쇠가 채워진 통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 가게는 이익이 줄어들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 이다. 바로 이것이,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 즉 '도덕적 신뢰'라는 것 이다.
이 도덕적 신뢰는 주로 어릴적 만들어 진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의 첫 도덕교사인 만큼, 부모의 교육 수준, 도덕적인 수준에 따라, 아이는 이런 도덕적 신뢰가 형성 되고, 낯선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 이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단체에 들어서, 낯선 타인과 함께 활동을 하여도, 그것이 자신의 도덕적 토대, 가치관을 바꿀만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그 단체에서도 결국 그들끼리 익숙해지고, '도덕적 신뢰'에서 '전략적 신뢰'로 바뀌기 쉽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저자는 신뢰의 형성에 있어, 종교, 인종, 경제적 여유 등을 하나 하나 분석하며 자신의 이론을 계속해서 검증하고 있다. 또한,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비교해가며,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하는 '신뢰'의 개념에 대해, 조금씩 그 범위를 좁혀 나가고, 구체화 시키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는 각 국가들을 예로 들며, 자신의 이론에 더욱 힘을 보탠다.
평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신뢰'의 정의에 대해, 저자만의 새로운 정의를 펼친 앞부분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저자 나름대로의 분류 방식이, 여러 증명을 통해 공감이 되고, 와닿았다. 하지만 애초에 이론을 주장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논리적인' 방식에 익숙한 서양식 사고 때문인지, 개인적으론 이론의 참신함이, 너무 과도한 증명과 검증으로 그 신선도가 조금 떨어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이론, 주장이 계속해서 책에 중복 되고, 조금 지루한 느낌도 받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신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 나가야 하는 '신뢰'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멋지게 정의하고, 설명 해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공감이 갔던 한 구절로 서평을 마무리 하고 싶다.
「그들(도덕적 신뢰, 일반적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관대해 낯선사람과의 교류가 위험을 초래하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