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힘
에릭 M. 우슬러너 지음, 박수철 옮김 / 오늘의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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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라는 단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인 '믿음'이라는 단어에 비해, 사용빈도는 비록 적지만, 좀 더 고급스럽고, 그 뜻이 한층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신뢰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하나 둘 모여 살면서부터 시작된 개념이 아닐까 싶다. 신뢰라는 것은 결코 인간이 혼자 있을 때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명 이상의 '타인'이 있을 때, 그 타인과 나 사이에 생기는 개념이고, 이것은 곧 '협력'의 관계로 이어지고, 뭔가를 이루는 성과를 만들어 낸다. 그런 점에서, 이 '신뢰'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단어'에 더 가깝다.

 

저자는 이 신뢰에 관해, 좀 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 나름의 방식으로 분류를 하고 있다. 개인적 신뢰, 일반적 신뢰, 전략적 신뢰 등의 개념을 내세우지만, 그 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책 전체를 꿰 뚫는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도덕적 신뢰' 이다. 이 도덕적 신뢰는, 기존의 학자들의 정의한 '신뢰'라는 개념에서, 조금 거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낯선 사람에 대한 믿음' 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에 더욱 익숙해 질려고 한다. 어제 보았던 사람과 만나는 게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 보다 더 편한건 사실이고, 어제 걸었던 길, 어제 했던 일이 더 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새로운 길을 걷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신뢰'의 문제와도 이어지게 된다. 아무래도 인간의 본능은, 자신과 친한 사람, 자신과 익숙한 사람을 좀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다고 했을 때, 죽마고우에게는 선뜻 빌려줄 수 있어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빌려주기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개념을 '전략적 신뢰'와의 반대개념으로, '도덕적 신뢰'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익숙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닌, 낯선 것, 낯선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도덕적 신뢰'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 도덕적 신뢰의 예로, 미국의 한 지역의 과일가게를 들고 있다. 사람이 직접 관리 하지 않고, 손님들이 가게를 사고, 그 돈을 자물쇠가 채워진 통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방식에도 불구하고, 그 가게는 이익이 줄어들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 이다. 바로 이것이,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 즉 '도덕적 신뢰'라는 것 이다.

 

이 도덕적 신뢰는 주로 어릴적 만들어 진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의 첫 도덕교사인 만큼, 부모의 교육 수준, 도덕적인 수준에 따라, 아이는 이런 도덕적 신뢰가 형성 되고, 낯선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 이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단체에 들어서, 낯선 타인과 함께 활동을 하여도, 그것이 자신의 도덕적 토대, 가치관을 바꿀만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그 단체에서도 결국 그들끼리 익숙해지고, '도덕적 신뢰'에서 '전략적 신뢰'로 바뀌기 쉽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저자는 신뢰의 형성에 있어, 종교, 인종, 경제적 여유 등을 하나 하나 분석하며 자신의 이론을 계속해서 검증하고 있다. 또한,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비교해가며,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하는 '신뢰'의 개념에 대해, 조금씩 그 범위를 좁혀 나가고, 구체화 시키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는 각 국가들을 예로 들며, 자신의 이론에 더욱 힘을 보탠다.

 

평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신뢰'의 정의에 대해, 저자만의 새로운 정의를 펼친 앞부분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저자 나름대로의 분류 방식이, 여러 증명을 통해 공감이 되고, 와닿았다. 하지만 애초에 이론을 주장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논리적인' 방식에 익숙한 서양식 사고 때문인지, 개인적으론 이론의 참신함이, 너무 과도한 증명과 검증으로 그 신선도가 조금 떨어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이론, 주장이 계속해서 책에 중복 되고, 조금 지루한 느낌도 받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신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 나가야 하는 '신뢰'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멋지게 정의하고, 설명 해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공감이 갔던 한 구절로 서평을 마무리 하고 싶다.

 

「그들(도덕적 신뢰, 일반적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관대해 낯선사람과의 교류가 위험을 초래하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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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 - 방송통신위원회 2000일의 현장 기록
신혜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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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통신 위원회'

시사에 별로 관심이 없고, TV도 거의 안보는 나에게, 이 단어는 무척이나 낯선 단어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KBS에 관련된 문제부터, 종편 프레임에 관한 문제, 스마트 경제로의 변환에 대한 문제, 그리고 방송통신회의 구조적, 제도적 결함 등에 관한 문제들도, 나에겐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책을 무척 좋아하고, 그 어떤 어려운 책들도 나만의 독서법으로 잘 읽는 편인 내게는, 이 책은 도전 그 자체 였다. 전혀 생각도 안해보고, 접하지도 않은 주제들을 풀어나가는 이 책은, 그야말로 '낯설음'의 결정체 였고, 이 책을 덮으면서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즐비하고,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맞냐 라는 의문을 스스로 가지게 되었다. 제대로 독서를 시작한 이후, 이런 경험은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토록 방송이라는 분야에 대해, 그리고 그와 연관된 경제학적인 문제, 정부의 제도, 구조 문제, 각 방송국들의 특징과 권리들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내가, 이런 책 조차 읽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모르는 것도 모르는', 최악의 무지 상태를 계속 유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섬뜩한 기분이 든다. 설사 그런 걸 뉴스 같은데서 접한다 하더라도, 전혀 정리 되지 않았고,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을 통해서 접한다면, 나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결국 모르는 것 보다 더 위험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접한 것은, 그저 어려운 책 하나를 만난 것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방송통신위원회가 미국을 본따서 만들었지만, 실질적으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여기에는, 단지 한 가지 이유 보다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존재한다. 미국과는 사뭇 다른 각 방송국의 구조와 생존 형태, 세계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스마트폰 보급율, 방송 통신 영역에 국가가 미치는 영향력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러 어울러 졌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고, 그 결과, 이제 곧 3기를 맞이함에도, 1기 2기에 뚜렷한 성과도 없고, 전체적인 청사진도 그리지 못하였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우리나라가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방송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개인적인 요인이기는 하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봐도, 방송, 통신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의견을 낸다든지, 잘못된 것에 대해 고치려는 노력을 한다든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터넷 상에서도, 그저 비난만 할 뿐,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무관심은, 결국 우리나라의 방송.통신 분야가 더욱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그것은 또 다시 비난과 무관심으로 넘어간다. 정부가 방송 통신을 마음대로 휘두르든, 각 방송국 사정이 어떻게 되든, 자기 알 바가 아니라는 생각아래에, 결국 우리나라는 '방통강국'이 아닌 '방통약국'이 되어 가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속에서, '방통 강국'을 상상하며,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들에게 이 분야는 익숙하지 않은 만큼, 읽어나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러한 견해를 갖기 전에, 그것을 둘러싼 여러 요인들에 대해 미약하게라도 숙지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 책은 그 중간 다리 역할을 아주 멋지게 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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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심야특급
조재민 지음 / 이서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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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은 「소요유」라는 강신주 박사님의 말씀이 유난히도 많이 떠오른다. 이런 저런 여행 서적을 많이 읽어봤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소요유' 즉 목적 없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여행을 하는 서적은 얼마 없었던 것 같고, 그런 만큼 이 책은 나에게 무척이나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나 싶다.

 

이 책은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부터 시작되며, 페루, 볼라리아, 칠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바 까지 거치면서 여행이 끝난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그냥' 떠난 여행인 만큼, 저자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계속 펼쳐진다. 특히 여행 파트너가 수시로 바뀌고, 여행 가방은 쉴 새 없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돈이 떨어지거나 없어질 때 면 간신히 한국에 연락해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실감이 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기도 하고, 단순한 여행서적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해 준 부분은, 바로 '쿠바'에서의 여행이다.

 

저자의 지인들이나, 현지인들이 하나 같이 노래를 부르는 '쿠바'. 아직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가기가 무척 까다롭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최고의 여행지였다는 말을 듣고, 저자는 쿠바로 가기로 결심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도착한 쿠바는, 사뭇 달랐다. 현지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현저한 차이. 같은 택시비도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관광객은 여행을 하는 동안 늘 '시가'로부터, 현지인들의 불순한 '의도'로부터 노출이 되어 있었다. 돈만 있으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라이지만, 한편으론 돈이 없으면 관광객이라도 가치가 없어지는 이 현실 앞에서, 과연 이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사회는 '돈'과 무척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쿠바의 사회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관광객이 지불하는 한 번의 택시비용이, 그들에게는 한달 내내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월급에 해당하는 양 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일을 하는 것 보다, 차라리 관광객들을 잘 꼬셔서, 돈을 얻어내거나, 그들과 함께 유흥을 즐기는 편이, 훨씬 '합리적' 인 것 이다. 또한 '부탁'과 같은 '구걸'을 통해 돈을 버는 것 역시, 한달 내내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수입이 높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구조인 것 이다.

 

그런 사회 모습 속에서, 저자는 처음에는 오로지 돈만 추구하는 모습에서 허탈감을 느끼다가, 우연히 묶게 된 쿠바의 한 가정집에서, 그 어느 때 보다 평화롭고 따스한 날들을 보낸다. 전혀 계획하지도 않았고,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여행이었지만, 저자는 그곳에서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의 이야기는, 단순히 쿠바를 여행한 한 여행자의 이야기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쿠바의 사회적 구조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리 아름답거나, 멋진 건 아니다. 쿠바가 돈만 밝히는 나라 라고 비난하기엔, 우리나라 역시 자본주의의 정 가운데에 완전히 빠져있다. 우리나라 역시 돈이 중심이고, 그 돈을 매개로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세상이 돌아간다.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게 많지만, 그런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쿠바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구조 속에서, 마치 소외된 것 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돈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그저 하루 하루에 충실하면서,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생활이 불편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고, 무엇보다, 그들은, '행복'하다. 저자가 쿠바에서 받은 행복감도 바로 그런 사람들의 생활 속에 살아가면서 느낀 행복감이었고, 이것은 또한, 단지 쿠바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존재할 수 도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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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 레디? - 준비하라 내일이 네 인생의 첫날인 것처럼
백승진 지음 / 홍익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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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남들이 말하는 '스펙'을 쫒아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며, 한국인으로서는 14번째로 '유엔 이코노미스트'가 된 저자의 이야기 이다. 책은 저자가 일하고 있는 '유엔'에서의 일상으로 시작되며, 어렸을 적 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어렸을 적, 저자는 가난했고, 그런 까닭에 오르내리기 힘든 '죽음의 계단'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었으면 그저 불평만 했을 법 한데, 저자는 여기서도 어렸을 적의 그 계단들이, 자신의 인내심을 기르는데 있어서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불평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데, 저자는 후자 쪽을 선택한 것 이다.

 

그리고 저자는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수학과 독서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고, 제대 후에는 미국에서 생활도 해보고, 선물거래, 공인회계사, MBA, 유엔 국제고시를 하나씩 밟아 나가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고, 면접을 열심히 준비함으로서, 결국 유엔 이코노미스트가 된다. 그냥 한 개인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 도 있는 이 이야기는, 내게 조금 다른 의미로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보았을 때, 30대 초반임에도 유엔이라는 세계적인 기구에서 일하는 걸 보면, 무척이나 멋져보이고, 마치 어렸을 적 부터 대단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 이다. 인생에 있어서, 그저 자신의 앞에 있는 숙제에 대해 하나 하나 씩 해결해 나가고, 전혀 계획되지 않은, 지극히나 우연하고 즉흥적인 결정들로 하나 둘 씩 점을 찍어 나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았고, 현재에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비록 그 방향은 다르겠지만 내가 꿈꾸는 모습이기도 하고, 현실적이면서도, 내가 앞으로 살아갈 때 해야 할 무수히 많은 선택에 있어서, 본보기가 되는 듯 하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S커브 이론'에 대해서 저자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한 시기를 거치고 나면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얘기인데, 우리가 주위에서 한번쯤은 들어보았고, 실제로 겪어보았을 이 현상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많은 예시까지 들어가면서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끈 신념, 자신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긴이 이 이론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내가 유엔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꾸게 됬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저 한국에서만 공부하고, 취업하면서 살아가는게 어느새 목표가 되버린 나에게, 시선을 좀 더 넓게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 역시, 우물 안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쪽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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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답이다 - 21세기의 한국인이 로마인에 던지는 14가지 질문
조무현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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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

 

이 책을 덮은 나에게,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의 투쟁]에서 나오는 이 한 구절이 유난히도 메아리 친다.

 

나의 로마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시작 되었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이탈리아'편에 로마의 역사에 대 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책을 수십번도 넘게 읽었었다. 물론 어렸을 적이라 재미로 읽었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카르타코 전쟁'이나 '한니발'에 대해서 꽤나 박식하게 알고 있었고, '원로원'이나 '호민관'등, 로마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도 제법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작년 초,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로마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재미'와 '흥미'였고, 과연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사고를 제시했고, 이것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흥미와 지식들이 어우러졌다.

 

이 책에서는 로마에 대해 '진보적인 모습을 가진 진짜 보수 국가' 라는 멋진 정의를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현재 우리 정치계에서도 늘 문제가 되고, 대립구도를 가지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2000년전에 로마는 이미 이 두가지의 특성을 한데 어우러, 이상에 가까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 이다. 분명 귀족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음에도, 각종 복지 정책과, 신분 상승의 길을 열어둠으로서, 진보와 보수를 대립의 각도로 세우지 않고, 한 방향으로 추구해 나갔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로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보되어 갔다. 해방 노예의 아들이 황제가 된 경우와, 로마의 전통교와 대립되던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귀족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고, 사회복지 제도를 열심히 실천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진보이다. 여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도 말하는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무척이나 성실히 수행 하였다는 점에서, 로마의 기득권은 스스로 그 권리를 내주지는 않았지만, 집착하지도 않았고, 스스로가 시민들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전쟁터에서 집정관이 죽는 일이 빈번하였고, 귀족들은 전쟁에 있어 스스로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현대로 비춰보았을 때, 대통령이 전쟁에서 최전방에서 앞장을 서고, 부자들, 혹은 그의 아들들 역시 기꺼이 최전방에서 적과 맞서 싸우며, 전쟁에서 쓰이는 돈 역시 자신들의 재산을 기꺼이 지원한 셈 이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 인가.

 

그 뿐만 아니라 로마의 복지정책은 진정으로 시민들을 위한 것 이었다. 귀족들의 부의 독점을 막기 위해, 한 개인 당 가질 수 있는 땅의 크기를 제한하고, 그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땅들은 모두 국가에서 거두어, 중산층을 두터워지게 만드는데에 이용 하였다. 그리고 경제 역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고리대금업의 이자율을 조절하고, 각종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통해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바로 부자들이 자신의 돈을 좀 더 국가에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사회 분위기 이다. 자본의 특성상, 가지면 가질 수록 더 가지려 하고, 자신의 부를 적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게끔 만든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로마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양 손에 있는 사과 두 개 중, 하나를 기꺼이 배고픈 이를 위해 준 것 이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충줄한 능력을 가진 한 개인이 지도자로서 이뤄낸 결과물이 아니다. '카이사르'가 이런 로마를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곤 하지만, 이에 뒷받침되는 사회적 분위기나 귀족들의 의식, 시민들의 의식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결과물 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이상적인 모습들은, 시민들의 끝없는 노력과, 귀족들의 유연한 태도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로마인들은 결코, 권리 위에서 잠자지 않았다는 것 이다.

 

현대 우리 사회를 보면, 부자들은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병역 의무 역시 갖가지 방법을 써서 어떻게든 피해간다. 복지 정책에 있어서도, 자신의 부를 기꺼이 내놓으려 하지도 않고,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노력에 힘쓴다. 현대에 노예는 없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우리 시민들은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장벽에 가로 막혀 있다. 해방 노예가 황제가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인 것 이다. 이런 우리 사회 모습에서, 우리들은 로마의 모습을 '이상적'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집정관이 전쟁에 있어 앞서고, 귀족들과, 그의 자식들이 함께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시민들로 하여금 '모범'이 되는, 그런 모습을 현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2000년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 이었다. 물론 당시 사회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시민은 힘이 있었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며, 시민들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엄청난 진보를 했을 지 몰라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리고 시민과 귀족들의 의식은, 결코 진보했다고 볼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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