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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답이다 - 21세기의 한국인이 로마인에 던지는 14가지 질문
조무현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
이 책을 덮은 나에게,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의 투쟁]에서 나오는 이 한 구절이 유난히도 메아리 친다.
나의 로마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시작 되었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이탈리아'편에 로마의 역사에 대 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책을 수십번도 넘게 읽었었다. 물론 어렸을 적이라 재미로 읽었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카르타코 전쟁'이나 '한니발'에 대해서 꽤나 박식하게 알고 있었고, '원로원'이나 '호민관'등, 로마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도 제법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작년 초,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로마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재미'와 '흥미'였고, 과연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사고를 제시했고, 이것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흥미와 지식들이 어우러졌다.
이 책에서는 로마에 대해 '진보적인 모습을 가진 진짜 보수 국가' 라는 멋진 정의를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현재 우리 정치계에서도 늘 문제가 되고, 대립구도를 가지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2000년전에 로마는 이미 이 두가지의 특성을 한데 어우러, 이상에 가까운 사회를 추구했던 것 이다. 분명 귀족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음에도, 각종 복지 정책과, 신분 상승의 길을 열어둠으로서, 진보와 보수를 대립의 각도로 세우지 않고, 한 방향으로 추구해 나갔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로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보되어 갔다. 해방 노예의 아들이 황제가 된 경우와, 로마의 전통교와 대립되던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귀족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고, 사회복지 제도를 열심히 실천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진보이다. 여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도 말하는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무척이나 성실히 수행 하였다는 점에서, 로마의 기득권은 스스로 그 권리를 내주지는 않았지만, 집착하지도 않았고, 스스로가 시민들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전쟁터에서 집정관이 죽는 일이 빈번하였고, 귀족들은 전쟁에 있어 스스로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현대로 비춰보았을 때, 대통령이 전쟁에서 최전방에서 앞장을 서고, 부자들, 혹은 그의 아들들 역시 기꺼이 최전방에서 적과 맞서 싸우며, 전쟁에서 쓰이는 돈 역시 자신들의 재산을 기꺼이 지원한 셈 이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 인가.
그 뿐만 아니라 로마의 복지정책은 진정으로 시민들을 위한 것 이었다. 귀족들의 부의 독점을 막기 위해, 한 개인 당 가질 수 있는 땅의 크기를 제한하고, 그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땅들은 모두 국가에서 거두어, 중산층을 두터워지게 만드는데에 이용 하였다. 그리고 경제 역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고리대금업의 이자율을 조절하고, 각종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통해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바로 부자들이 자신의 돈을 좀 더 국가에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사회 분위기 이다. 자본의 특성상, 가지면 가질 수록 더 가지려 하고, 자신의 부를 적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게끔 만든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로마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양 손에 있는 사과 두 개 중, 하나를 기꺼이 배고픈 이를 위해 준 것 이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충줄한 능력을 가진 한 개인이 지도자로서 이뤄낸 결과물이 아니다. '카이사르'가 이런 로마를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곤 하지만, 이에 뒷받침되는 사회적 분위기나 귀족들의 의식, 시민들의 의식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결과물 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이상적인 모습들은, 시민들의 끝없는 노력과, 귀족들의 유연한 태도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로마인들은 결코, 권리 위에서 잠자지 않았다는 것 이다.
현대 우리 사회를 보면, 부자들은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병역 의무 역시 갖가지 방법을 써서 어떻게든 피해간다. 복지 정책에 있어서도, 자신의 부를 기꺼이 내놓으려 하지도 않고,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노력에 힘쓴다. 현대에 노예는 없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우리 시민들은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장벽에 가로 막혀 있다. 해방 노예가 황제가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인 것 이다. 이런 우리 사회 모습에서, 우리들은 로마의 모습을 '이상적'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집정관이 전쟁에 있어 앞서고, 귀족들과, 그의 자식들이 함께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시민들로 하여금 '모범'이 되는, 그런 모습을 현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2000년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 이었다. 물론 당시 사회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시민은 힘이 있었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며, 시민들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엄청난 진보를 했을 지 몰라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리고 시민과 귀족들의 의식은, 결코 진보했다고 볼 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