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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학실록
이성규 지음 / 여운(주)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나누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한창 역사를 배우고 있을 중.고등학생이라면 자세히는 몰라도 수업시간에 얼핏 들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테고, 자신의 전공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는 대학생들이나, 밥벌이 하루 하루 시달리고 있는 직장인들 역시, 자신이 중.고등학생 시절 희미하게나마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일제히 한 단어를 말할 것 이다. 그것은 바로, '문자'의 발명이다. 인류는 선사 시대나 역사 시대나, 늘 존재해왔고, 외부환경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면서 조금씩 진보를 해 왔는데, 어째서 어떤 것은 '선사'라는 말을 붙이고, 어떤 것에는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는가라는 의문을 가져볼 법 하지만, 동물원에 가야 찾아볼 수 있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 우리와 비슷한 시작을 했을 침팬치의 모습만 보더라도 '문자'라는 것이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과 우리를 차별짓는 근본적인 것은, 우리들은 지식과 지혜를 후대에 계속 넘기면서 그 양과 질을 불려 갔고, 침팬치들은 자신의 삶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반복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수단에 있어서 인류는 '문자'를 택했고, 그 결과, 지금까진 성공으로 판명났다.
사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다고 해서, 현재에 당장 이득이 되는 건 전혀 없다. 종이에 글을 쓰면서 글씨 연습을 하기 위해 기록하는게 아니면, 내가 지금 당장 그 아무리 역사를 기록한다고 한들,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부와 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지극히나 타인을 위한 일이고, 그 중에서도 '후대'를 위한 가장 커다란 유산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과거 선조들의 '기록'으로부터 배웠던 혜택을, 자신의 대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에게도 물려주기 위한, 즉 선조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후대에게 베푸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고조선, 삼국시대, 신라, 고려 까지, 많은 나라를 거쳐오면서 그들 선조로부터 받았던 커다란 은혜를 우리들에게 전해주기 위한 과정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었고, 우리는 몇백년전 선조들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그 지식과 지혜를, 이것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 이다.
하지만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다. 저 먼 우주에 위성을 쏘아올리고, 하늘과 땅에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람을 실어나르는 현대에서, 우리는 과학에서 벗어난 삶은 단 한순간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 하나 하나에 과학이 침투 되어 있다. 이런 과학의 시대에, 조선 왕조 실록을 보면서 선조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하고, 현대에 맞지 않는 행동처럼 비춰질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라고 말은 한다지만, 손목시계도 있고 휴대폰 시계도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옛날에 장영실이 물시계를 발명한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런점에서, 역사와 과학이라는, 이제까지 과학이 극도로 발달 되거나 우선시 되었던 과거를 가진 적이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보면 그야말로 상극이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이 책의 내용들은 모두 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설다. 17세기에 살았던 인조 시대의 사람이 오로라를 보았다는게, 조선시대에도 기린이 알려져 있었다는게, 실제로 조신시대에 물소를 양육하는 사업을 벌였다는 것도, 모든게 낯설다. 그뿐만 아니라 장영실에 대한 진실, 조선시대의 황사, 거북선에 대한 진실등, 그동안 '역사'라고 알고 있었던 많은 고정관념들과 사실들이, '과학'이라는 현대의 방식을 대입하자, 아주 놀라운 사실들이 관찰되는 것 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고정관념에 빠져있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오로라는 전 세계에서 현대에도 충분히 관측되는 현상이고, 기린과 물소가 등장하는 것도, 당시에도 비록 미미하긴 했지만 다른 지방과 교역이 있었기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거북선이 태종 때, 혹은 고려시대 말 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나, 사실 거북선은 완전한 철갑선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기록을 따지고 보거나 과학적인 방식을 도입하면 분명히 나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이 책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선조들에게도 의외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리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그동안 사실이라고 굳게 믿어왔거나, 조선시대의 폐쇄적인 성향을 우리 스스로 확대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시대는, 세계적으로 무척이나 활발한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며 신대륙을 발견하고, 르네상스와 함께 엄청난 발전이 시작되었고, 이슬람 국가와의 갈등도 심화 되었던 시기이다. 단지 우리 조선만 폐쇄적인 정책으로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소홀했을 뿐, 세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폐쇄적이었다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고, 이러한 두 이질적인 것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조금씩 섞이기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낯선 것'들이 우리 선조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미묘한 공집합 부분을, 바로 이 책에서는 깊이 파고 들며,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는 것도, 새로운 발견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우리들이 간과하거나 놓친 미세한 부분을 잡아주면서,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실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단지 그것들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깸으로서 놀라움을 줄 뿐 이다. 한편으론, 이러한 신선한 방법이, 어쩌면 '역사'라면 고리타분하고 흥미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잘못된 역사관과 고정관념을 깨게끔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해 주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