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정밭이 뭔지 몰라 찾아봤다. 묵힌 밭(休耕)이라고 한단다. 휴경지라는 말에 익숙한 나이지만 우리말인 묵정밭이 정감있게 다가온다. 어렸을 때 텃밭이 있는 시골집에서 자라서 풀, 나무, 곤충, 새들을 좋아하는데 나이 들어 텃밭 있는 집에 살아보니 땅, 풀, 나무, 곤충, 동물이 모두 다 노동으로 다가온다. 물론 지금도 초록색 가득한 산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묵정밭을 보면 경작하지 않는 땅에 대한 책임이 느껴지는 어른이 된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귀여운 그림, 마음이 편해지는 초록색, 연두색, 풀색, 채도가 낮은 마음 편한 풍경들에 눈이 가는 두근두근 묵정밭, 아이들에게는 예쁜 들풀이 피어있는 땅일 뿐이라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이 든 어른인 나의 눈높이로 보게 되면 땅을 돈으로 보고, 살충제를 뿌리고, 길가에 제초제를 뿌리는 이웃들에 상처 입은 나를 위로하는 책인듯하다.
페이퍼 북인데 초등학교 교과서 크기라서 그림과 글이 돋보인다. 달걀 프라이 개망초, 냉이, 엉겅퀴, 쑥부쟁이, 벌레들, 볼볼볼 기어 다니는 들쥐들까지 다 같이 모여사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에 고맙다. 나어렸을 때는 당연한 일들이 이제는 어려운 일이 돼버렸지만 시골에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다니면서 이것은 봉숭아야, 저 예쁜 꽃은 코스모스, 백합, 맨드라미, 과꽃, 나팔꽃, 무궁화, 애기똥풀 하며 하나하나 알려주는 시간에 감사하다. 묵정밭에 가득 핀 꽃들 사이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올리면 여느 관광지 부럽지 않다. 이성자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에 많은 공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