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묵정밭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아이들 24
이성자 지음, 조명화 그림 / 책고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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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정밭이 뭔지 몰라 찾아봤다. 묵힌 밭(休耕)이라고 한단다. 휴경지라는 말에 익숙한 나이지만 우리말인 묵정밭이 정감있게 다가온다. 어렸을 때 텃밭이 있는 시골집에서 자라서 풀, 나무, 곤충, 새들을 좋아하는데 나이 들어 텃밭 있는 집에 살아보니 땅, 풀, 나무, 곤충, 동물이 모두 다 노동으로 다가온다. 물론 지금도 초록색 가득한 산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묵정밭을 보면 경작하지 않는 땅에 대한 책임이 느껴지는 어른이 된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귀여운 그림, 마음이 편해지는 초록색, 연두색, 풀색, 채도가 낮은 마음 편한 풍경들에 눈이 가는 두근두근 묵정밭, 아이들에게는 예쁜 들풀이 피어있는 땅일 뿐이라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이 든 어른인 나의 눈높이로 보게 되면 땅을 돈으로 보고, 살충제를 뿌리고, 길가에 제초제를 뿌리는 이웃들에 상처 입은 나를 위로하는 책인듯하다.

페이퍼 북인데 초등학교 교과서 크기라서 그림과 글이 돋보인다. 달걀 프라이 개망초, 냉이, 엉겅퀴, 쑥부쟁이, 벌레들, 볼볼볼 기어 다니는 들쥐들까지 다 같이 모여사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에 고맙다. 나어렸을 때는 당연한 일들이 이제는 어려운 일이 돼버렸지만 시골에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다니면서 이것은 봉숭아야, 저 예쁜 꽃은 코스모스, 백합, 맨드라미, 과꽃, 나팔꽃, 무궁화, 애기똥풀 하며 하나하나 알려주는 시간에 감사하다. 묵정밭에 가득 핀 꽃들 사이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올리면 여느 관광지 부럽지 않다. 이성자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에 많은 공감을 받는다.

자연의 순리대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묵정밭.

우리도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면서 두근두근 함께 살아요.

작가의 말 중

"그래, 난 묵정밭이 좋다. 좋아!"

할머니네 밭은 당당하게 말했어. 보란 듯 개망초를 포옥 안아 주기까지 했어.

그날부터 할머니네 밭은 정말로 묵정밭이 되었단다.

"할머니, 살려고 찾아온 것들을 품어 주는 건 잘못한 일 아니죠?"

17쪽

이제는 그런 묵정밭도 하나하나 사라지고 거기에 건물이 들어서고 고가 도로가 생긴다며 매일매일 공사 중이다. 아이들과 길을 걸어가다 보면 숲을 잃은 고라니가 집과 밭에 매어진 개들의 등쌀에 갈피를 못 잡고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반갑고 안타깝다. 요 몇 년 시골 마을은 이름 모를 외래종 벌레들로 고통받고, 춥지 않은 겨울 덕분에 얼어 죽지 않은 벌레 알들에 봄에는 엄청난 애벌레들에게 시달려야 한다. 내 땅에 농약을 하지 않으면 옆집에서 눈총을 준다. 농약에는 환경호르몬도 있고 좋은 벌레들도 죽이니까 쓰지 않으려 하지만 너무 많은 벌레들 앞에서 나는 항상 무기력해진다. 이제는 시골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두근두근 묵정밭에 나오는 갈등 상황들은 현실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어른들의 사정까지 더해져 위기가 고조되지만 우리 손자, 손녀, 어린아이들이 이를 해결하는 모습들을 보며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내가 할머니와 부모님들로부터 받은 자연에 대한 앎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준다는 마음으로 두근두근 묵정밭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한 장 한 장 읽어주면 아이들에게도 내가 보낸 어린 시절의 자유로움이 전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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