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 혼란스러운 코로나 예방 백신을 맞고 와서 우중충하게 초콜릿 과자를 먹으면서 고딕 스릴러 장르를 적용한 낯선 자의 일기를 처음 펼쳐보았는데 잠이 왔다.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허기와 수면 욕구가 폭발해서 살인 장면을 봐도 잘 수밖에 없었으니... 차라리 영화를 볼 것을 그랬나 보다. 저녁 먹고 못 봤던 책을 집어 들고는 새벽 5시가 넘어서 끝을 봤다. 당연히 그 다음날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요새 내 일상에서 제때 잠드는 일이 참 힘든데 건강을 위해서는 저녁에 재밌는 책을 읽는 일은 피해야겠다.
스릴러를 읽기 전에는 자세한 줄거리나 형식에 대해 아는 것은 좋지 않다. 책을 읽고 나서야 표지의 그림을 살펴봤을 정도로 무작정 읽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고딕 양식 또는 고딕 소설에 대한 부분이 너무 궁금했긴 했지만 낯선 자의 일기에 나오는 주인공과 배경이 영어선생님,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친절하게 설명해 주더라. 영국의 학교에 대한 부분은 낯설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좋은 대학을 열망하고 자녀들에 희망하는 점은 비슷했다. 소설 내용을 보면 케임브리지, 옥스브리지는 한 지역에 유명 칼리지들이 많이 모여있는 교육 단지를 말하는 것으로 유추하게 됐다. 반항적인 10대 딸이 이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아이들의 사춘기 문화를 인정해 주는 모습은 우리의 10대들을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임에도 아이를 키우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호불호,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영국의 사회와 교육, 가정의 모습을 알게 되는 기회가 돼서 즐거웠다.
특히 영국 문학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과 여러 책들을 인용한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고 부러운 모습이다. 물론 우리도 사자 숙어, 속담을 많이 인용하기는 하지만 한국 문학을 외우고 글에 인용하는 일들이 일반적이진 않다.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 그리피스 작가님 덕분에 극적인 셰익스피어 한 구절이라도 외울 수는 있게 됐다.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햄릿, 윌키 콜린스의 <알마데일>, <걸 온 더 트레인>, <도널드슨 일기 속 복슬이 맥클러리>, 수전 힐의 <검은 옷을 입은 여인>, <제인 에어>,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오만과 편견>, <엠마>,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알프레드 테니슨의 <마리아나>,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반지의 제왕>, <맥베스> 등등 전혀 모르는 내용들을 설명하기 위한 옮긴이의 주석도 읽어야 한다. 정말 다른 문화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느낌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