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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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nger Diaries는 작년 에드거 상 최우수 수상작이다. 에드거 상은 미국의 추리작가클럽에서 에드거 앨런 포를 기념하여 매년 4월에 전년도의 최우수 작품에 주는 상이라고 한다. 엘리 그리피스 작가님은 [루스 갤로웨이]를 통해 영국 추리 작가 협회 주관 CWA 대거 상 수상 경력도 있으신데 우리나라에는 낯선 자의 일기가 처음으로 출간됐다. 그래서 나도 큰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역시나 추리 소설은 진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지옥은 비었다. 그리고 모든 악마는 여기에 있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빅토리아시대 공포 소설의 한 구절

잇따르는 기이한 사건에 소설 속 공포는 현실이 된다!

영국 남부 서식스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클레어 캐시디는 열다섯 살 딸 조지아와 하얀 푸들 허버트와 가족을 이루고 있다. 40대 중반으로 커다란 키에 항상 우아하고 단정한 그녀는 밤이면 일기를 쓰며, 빅토리아시대의 고딕 소설 작가 R.M. 홀랜드의 전기를 준비한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작가 홀랜드가 생전에 살던 집이 마침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의 별관으로 쓰이고 있다. 어쩌면 운명처럼 홀랜드를 연구하며 교사로서 성실히 살아가던 그녀의 삶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인 엘라가 살해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엘라의 시신 옆에는 의문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지옥은 비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자 작가 홀랜드의 작품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 소설 「낯선 사람」의 중요 구절이기도 하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엘라와 각별한 사이였던 클레어는 가장 먼저 신문을 받는다. 담당 형사인 하빈더 카우어는 어쩐지 클레어를 못마땅하고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다. 엘라와 주변인들의 관계에 대한 하빈더의 집요한 질문에 곤혹스러워하던 날, 클레어는 집으로 돌아와 과거의 기록을 훑어보려고 일기장을 펼친다. 그런데 일기 끝자락에 누군가 써놓은 글씨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안녕, 클레어. 당신은 나를 모르죠.”

낯선 자의 일기 뒤표지 중

비가 내리는 날 혼란스러운 코로나 예방 백신을 맞고 와서 우중충하게 초콜릿 과자를 먹으면서 고딕 스릴러 장르를 적용한 낯선 자의 일기를 처음 펼쳐보았는데 잠이 왔다.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허기와 수면 욕구가 폭발해서 살인 장면을 봐도 잘 수밖에 없었으니... 차라리 영화를 볼 것을 그랬나 보다. 저녁 먹고 못 봤던 책을 집어 들고는 새벽 5시가 넘어서 끝을 봤다. 당연히 그 다음날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요새 내 일상에서 제때 잠드는 일이 참 힘든데 건강을 위해서는 저녁에 재밌는 책을 읽는 일은 피해야겠다.

스릴러를 읽기 전에는 자세한 줄거리나 형식에 대해 아는 것은 좋지 않다. 책을 읽고 나서야 표지의 그림을 살펴봤을 정도로 무작정 읽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고딕 양식 또는 고딕 소설에 대한 부분이 너무 궁금했긴 했지만 낯선 자의 일기에 나오는 주인공과 배경이 영어선생님,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친절하게 설명해 주더라. 영국의 학교에 대한 부분은 낯설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좋은 대학을 열망하고 자녀들에 희망하는 점은 비슷했다. 소설 내용을 보면 케임브리지, 옥스브리지는 한 지역에 유명 칼리지들이 많이 모여있는 교육 단지를 말하는 것으로 유추하게 됐다. 반항적인 10대 딸이 이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아이들의 사춘기 문화를 인정해 주는 모습은 우리의 10대들을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임에도 아이를 키우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호불호,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영국의 사회와 교육, 가정의 모습을 알게 되는 기회가 돼서 즐거웠다.

특히 영국 문학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과 여러 책들을 인용한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고 부러운 모습이다. 물론 우리도 사자 숙어, 속담을 많이 인용하기는 하지만 한국 문학을 외우고 글에 인용하는 일들이 일반적이진 않다.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 그리피스 작가님 덕분에 극적인 셰익스피어 한 구절이라도 외울 수는 있게 됐다.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햄릿, 윌키 콜린스의 <알마데일>, <걸 온 더 트레인>, <도널드슨 일기 속 복슬이 맥클러리>, 수전 힐의 <검은 옷을 입은 여인>, <제인 에어>,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오만과 편견>, <엠마>,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알프레드 테니슨의 <마리아나>,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반지의 제왕>, <맥베스> 등등 전혀 모르는 내용들을 설명하기 위한 옮긴이의 주석도 읽어야 한다. 정말 다른 문화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느낌도 받는다.

내 발소리를 듣지 말라, 이 발이 어느 방향으로 걷는지.*

*맥베스 2막 1장에 나오는 구절

264쪽

고딕 스릴러 소설이 어렵지만 대표 작품이 드라큘라다. 이 정도는 참고하고 봐도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다. 어쨌든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데, 형사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나도 같은 구시렁거림을 할 것 같은 느낌? 이어서 좋았다. 스릴러라서 잔인하고 무섭기만 할 것 같은데 낯선 자의 일기는 오히려 청소년 권장 도서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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