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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세트] 충사 + 충사 특별편 (총11권/완결)
우루시바라 유키 (저자) / 대원씨아이 / 2020년 11월
평점 :
미스터리 판타지 퇴마물.
동식물, 곤충과도 다른 이형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생물. 작중 벌레라 칭하는 생물을 다루거나 제어하는 일을 하는 충사 깅코가 여러 사람들을 거쳐가며 벌레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
간혹 눈을 깜박이면 뭔가 미생물 같은게 눈 앞에 떠다니는 것이 보이곤 하는 것을 일컬어 비문증이라 하는데, 이 비문증 처럼 생긴 벌레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고 오로지 충사나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세계관으로, 미생물이나 자연 현상을 마치 하나의 괴이라는 구분처럼 벌레로서 지칭하며 자연 현상들을 이해하지 못 하던 시절의 사람들이 막연하게 공포나 경외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 대도감을 보면서 일본의 기이한 설화나 요괴에 대한 이야기들은 상당수 착시 현상이나 자연 현상의 원리를 상상하거나 무언가를 피하거나 멀리하기 위해 부풀린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만화는 그와 비슷한 구성으로 미생물이나 자연현상을 요괴가 아닌 벌레라는 존재로 칭하고 있다.
기존의 요괴나 귀신이 나오는 퇴마물과는 달리 작중의 벌레는 의지를 갖고 행하는 것이 아닌 본성을 따르는 자연현상에 가까워 사람이 죽거나 변해도 그저 신비로운 느낌을 줄 뿐 공포스럽지는 않다.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만화라서 흥미롭긴 하지만 재미있지는 않다.
흥미롭긴 하지만 재미있진 않다. 관심을 끄는 이야기지만 내용적으로 재미있지는 않은 묘하게 모순된 구성인데 이는 이 만화가 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다.
작화가 좀 심하게 부족한데, 작가가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을 숨기려는지 아니면 분위기에 뭉개려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그리기 싫은건지 인물들의 얼굴이나 의복들이 다 하나같이 똑같다 보니 차이를 느끼지 못 한다.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차별점을 보이는 것은 주인공 깅코인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혼자 캐쥬얼한 서양식 의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주인공만 그런 옷을 입고 있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깅코가 어떻게 수입을 얻고 생활하는지나 충사가 쓰는 물건들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떤 것들로 만드는지 등 세세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주인공인 깅코의 취급이 이 모양이니 작중 중요한 벌레들의 설정이나 법칙성, 규칙 따위 제대로 설명 할리가 없다. 작가 편의적으로 미신적인 분위기를 극대화 하기 위해 작중 등장인물들이 근대화 이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까진 그렇다 쳐도 그 외의 부분에서 일절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보니 작가가 상당히 게으르거나 편의적으로 이야기를 푼다는 느낌이 강하고 벌레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자연현상과 연결하여 뭔가 법칙성이 있는 것 처럼 설명하나, 세부적인 부분은 한없이 허술하다보니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그저 흥미만 부추길 뿐 그 안의 내용은 전혀 없다.
작화로 인해 각 에피소드간의 인물들 차이를 못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한 화의 인물들의 얼굴도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는 작중 대사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구분하기 쉽게끔 하오체를 쓰는 깅코조차 같은 사람의 말투인데도 이상하게 다른 경우가 있어 누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누굴 대상으로 말하는지 누가 말하고 있는지도 헷갈리는 경우도 있어 매우 불편하다. 인물간의 개성도 없는데 대사도 별 차이가 없거나 뚜렷한 부분이 없다.
작중 인물들의 개성이 없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없는 점도 부족한 점이다. 시간 공간적 연속성을 개의치 않는 옴니버스물 특성상 개별의 짧은 이야기 구성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가 나오는것은 원체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이 만화처럼 전권을 다 읽어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거의 없는 경우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 벌레이기에 인간의 서사는 그저 벌레의 현상 속에서 덧없이 휘말려서 방황하는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를 꾸준히 만들다 보면 등장인물들 중 뭔가 거창한 목표가 있다거나 결의를 지닌다거나 하여 이야기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잠깐이라도 내보일텐데, 이 만화는 인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아닌 벌레의 이야기를 그릴 뿐이라, 특별히 개성을 지니는 인간도 없고 그저 벌레라고 하는 자연현상에 휘말렸을 뿐이며, 작중 인물들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 표현이 전무하다.
작가의 성향 때문인지 등장인물들은 소중한 사람을 잃어도 당연한거 마냥 무덤덤하고 별 반응이 없다. 마치 인형처럼 감정이 없다보니 안 그래도 다들 똑같이 생겼는데 감정 표현마저 없다보니 특징도 차이도 없고 재미도 없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는데도 감정의 변화조차 없이 밋밋하니 보는 입장에선 등장 인물의 감정이 전달 될리가 없다. 독자가 작품에 공감하고 빠지게 하려면 등장 인물들의 감정에 빠지게 해야 할텐데 감정을 못 살리는 이 만화는 전혀 그러지 않으니 작품에 빠져들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만화는 벌레라고 하는 기현상을 이용해 한껏 독자를 흥미롭게 하여 관심을 끌어 올리고는 정작 중요한 인간에 대한 묘사를 게을리하여 재미를 전달하지는 못 한다.
작가의 성향과 비슷하게 조용하고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나쁘진 않겠지만,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맥빠지는 이야기를 싫어 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