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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세트] 동경일일 (총3권/완결)
마츠모토 타이요 / 문학동네/DCW / 2024년 8월
평점 :
자신이 담당한 만화 잡지의 매출이 좋지 않아 폐간을 계기로 책임을 지고 퇴사한 시오자와.
만화를 좋아하여 편집자의 일을 시작하였지만, 만화가의 자유를 중시한 나머지 흥행을 고려하지 않아 대중성과는 거리를 먼 잡지를 만들었고, 잡지 폐간을 기점으로 출판사와 방향성의 차이를 느끼고 퇴사하여 만화와 거리를 두려 한 그였지만 결국 그의 인생에서 만화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퇴직금으로 다시 한번 만화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
시오자와는 편집자이긴 하지만 그의 캐릭터성은 편집자보다는 만화가와 팬의 입장의 중간에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만들고 싶은 작품을 냈지만 대중들에게 선택되지 못 했고 출판사에서도 버려지고도 결국 자신에게 남은 것은 계속 만드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마치 만화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잡지 제작에 있어서 그가 만화가를 선택하고 작품을 고르는 것에서 그의 명확한 기준이나 철학이 보이지 않고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도하는 출간은 마치 팬의 입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시오자와가 꾸준히 의뢰를 하고 출간을 위해 서점을 동분서주하긴 하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진 않아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으로는 미묘한 위치이기도 하네요.
그렇게 이 만화는 보통 만화를 만드는 이야기에서 주역인 만화가가 아닌 편집자를 중심으로 만드는 고통을 펼쳐내고
있으며, 이와 비슷하게 편집자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중쇄를 찍자가 있지만 그 만화는 조금 아쉬운 점이 결국 편집자 주인공은 후반에는 이야기에서 붕 떠 버리고 말아 만화가 위주로 흘러가 균형을 잃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편집자 주인공이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만화가에게 원고 의뢰를 하는 것으로 한때 만화를 그렸었지만 지금은 펜을 놓은 과거 아날로그 시절의 만화가들을 만나면서, 만화가가 만화를 그리지 않는 삶, 만화와 관계 없는 삶, 그리고 만화로부터 멀어지려는 삶을 통해 창작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 어떤 괴로움과 기쁨을 안고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며 그들 역시도 결국 만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써 놓고 보니 결국 이 만화도 만화가 중심의 이야기이긴 하네요.
이 작품이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야기의 굴곡이 없이 각기 다른 만화가의 이야기를 보여주기만 할 뿐, 시오자와가 만들려는 잡지의 제작 과정을 기준으로 별 다른 사건이 없어서 이야기가 대단히 심심합니다. 특히나 컷의 사용이 단순 사각형 컷 위주에 집중선 사용도 없어서 상황의 긴장감을 표현하는 부분이 없다보니 더더욱 심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오자와의 기준으로 의뢰를 하는 만화가들은 대부분 과거의 만화가들이라, 순수하게 이 만화가 괜찮다 라는 이유로 의뢰를 하는 것이 아닌 만화가를 좋아해서 의뢰를 하는 팬보이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출판사를 끼지 않은 단독 출판이다 보니 원고를 들고 올 작가는 없어서 그럴 수 밖에 없긴 하지만... 다만 독자 입장에서는 시오자와가 선택한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질 못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시오자와의 선택은 공감이 되지 않고 이야기도 잡지 제작 과정에서 시오자와는 그저 의뢰를 할 뿐 만화가와 창작의 굴레에서 서로 고생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보니 편집자의 활약은 작중에서 크게 두드러지질 않습니다.
또한 작중 등장하는 만화가들은 이미 만화에서 손을 뗀 과거의 만화가들이지만 해당 만화가들이 어떤 시대에서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는 나오지 않아서 여러모로 이해를 돕는 부분이 적습니다. 작중 스쳐 지나가듯 버블 시대를 언급하는데 그 부분도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는 않는터라 당시 일본의 버블 시대를 이미 알고 있는게 아니라면 여러모로 만화 업계의 배경에 대한 이해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시오자와가 관여한 이전 잡지의 폐간을 두고 그가 어떤 기준에서 작품을 골랐으며, 변화한 시대에 맞추지 못 했는지 아니면 그저 작가의 개성만 믿은건지 세세한 이야기가 없기에 과거 이야기를 대충 넘기는 부분이 심한 반면 이야기의 끝에서 잘 풀리는 것에 대한 뒷받침이 되는 부분이 없기에 어떻게 잘 풀리는지에 대해 공감하기 힘든 부분을 만듭니다.
팬의 입장에 가까운 편집자가 과거의 만화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창작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리는 이야기가 특징으로, 만화가가 꿈인 사람이나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히 암울한 이야기의 성격이 있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휴먼 드라마인데 정작 당사자 입장에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이야기가 와 닿는 만화입니다. 잘 팔리는 만화가란 결국 극소수고 그 안에서도 꾸준히 그릴수 있는 사람 또한 소수인 시장에서 과연 이 길이 맞는건지, 가도 되는건지를 여러모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만화가란 정규직 회사원이 아니기에 프리랜서인 그들은 매번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 하면 결국 새로운 물결에 밀려날 수 밖에 없기도 하니까요. 작품의 마무리는 훈훈하게 끝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래도 만화가 하시겠습니까? 라는 이면을 보여주기도 하는 내용입니다. 시오자와에게 선택받은 만화가 역시도 과거의 만화가들 중 잡지에 실릴수 있는 운 있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멀리서 볼때는 모르는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단독 출간도 결코 만만한게 아니니까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내용도 담고 있어 출판쪽으로 암울한 이야기 뿐이네요.
독특한 분위기와 주인공 시점으로 만화 잡지를 만드는 이야기지만 실질적으로 만화 제작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만화를 만드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보시는거라면 별로 만족 할 부분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만화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추천하기에는 여러모로 상관없는 이야기인지라 공감과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거리감을 충족하질 못 하는게 좀 단점입니다. 만화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고, 만화가의 수입이나 생활 패턴, 직업으로서의 안정성을 모르는 이상 과거의 만화가들이 지금은 왜 저런 삶을 사는지 모르니 휴먼 드라마로 받아 들이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를 대충 뛰어 넘어버려 섣부른 이미지만 정착 될 가능성이 높을것 같습니다. 아닌가. 그냥 그게 현실인가...
그래서 정리하자면 만화와 제작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과거에 작품을 낸 만화가가 만화를 그만둔 삶에 관심있을 미묘한 타겟층에게 추천 할 만한 만화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럭저럭 볼 만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럴런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그런 만화네요. 마치 작중 시오자와가 선택한 만화들처럼 대중적인 부분보다 마이너한 요소에서 작가의 개성을 중시한 듯한 작가가 전달하려는 부분만을 담은 만화의 느낌입니다.
하지만 중쇄를 찍자에서는 이런 말도 나왔죠. 편집자는 만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시오자와는 사람으로서, 팬으로서는 좋은 사람인데 편집자로서는 미묘한 사람인 것처럼 이 만화도 그런 미묘한 성격의 만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