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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평점 :
처음 펭귄을 목격한 5월의 어느 날.
“오전 여섯 시 반 기상.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이 일어나는 걸 보고 나서 출근. 쾌청. 습도는 60퍼센트. 부드러운 바람.”
모든 것을 노트에 기록하는 메가 기록러인 아오먀마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책을 많이 읽고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고 있다. 소년에게 일어난 마법 같은 이야기다.
마을 치과에 있는 누나를 좋아하며 우연히 누나가 콜라 캔으로 펭귄을 만드는 것을 목격하고 누나와 펭귄에 관한 연구에 착수한다. 이 연구의 이름이 “펭귄 하이웨이”. 친구 우치다와 마을의 수로를 탐험하며 지도를 만들던 중, 반 친구 하마모토의 ‘바다 연구’에 합류하게 된다. 마을의 급수탑이 있는 곳의 큰 초원이 있고 그곳에는 물이 담긴 거대한 수조 같은 비행체가 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바다이다. 아이들은 연구하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의 연구를 하게 되는 데...
아이들의 상상력인가 하고 읽다가 아이들의 탐구와 연구를 진지하게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흥미가 느껴졌다. 어느새 아이들이 연구하는 “펭귄 하이웨이”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친구 스즈키네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아오야마는 우리말로 ‘애늙이’라는 표현이 떠오르기도.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에 공주님같이 예쁜 아이가 이사를 왔다. 너른 마당이 있는 양옥집에 사는 그 아이의 집에 나는 자주 놀러 갔다. 외모와 다르게 그 아이는 역할놀이를 좋아했는데 주로 남자역을 하고 내게 주인공 여자 역을 맡겨서 더 좋았다.
우리는 그때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만화에 푹~ 빠져있었고 마왕에게서 니나(나)를 구출하는 폴(그애)이 되어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마당에서 놀았다. 나무를 타고 마왕을 만들고 두드리던 뿅 망치는 어디로 갔는지... 만화에서 봤던 대사를 소리높이며 놀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어두워지는 사위에 나무는 진짜 마왕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 순간 나는 정말 마왕에게 잡힌 가련한 니나였으니까. 정말 진지했다는.
꿈꾸던 판타지의 세계를 보는 듯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 펭귄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우치다의 다정한 마음, 바다를 연구하며 아오먀마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하마모토의 마음, 친구들을 훼방 놓았지만 함께하고 싶은 스즈키의 마음 등이 읽혀서 손끝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그중 눈치 없고 유방을 좋아하는 아오야마가 제일 재미있는 캐릭터였지만.
SF든 판타지이든 나는 이 소설을 읽으니 어딘가 우리 세계가 접혀 세계의 끝이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닿는다. 내 주변에 있는 세계의 끝을 찾아본다는 상상이 나를 흥분시킨다. 다시 니나가 되어 나를 지켜줄 폴이 아니라 폴과 함께 마왕을 무찌르는 꿈을 꿔보고 싶어지니까. 뿅 망치 다시 소환!!!
아버지가 핸들을 잡고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걸까?”하고 말하면, 나는 그 아스팔트 도로가 아버지도 본 적 없는 세계의 끝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p.250)
“나는 아버지와 드라이브하면 어쩐지 세계의 끝에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세계의 끝은 더 멀리 있을 거예요. 우주 끝이라든가.” (중략)
“세계의 끝은 멀리 있지 않아. 세계의 끝은 접혀서 세계의 안쪽에 숨어 들어가 있어.”(p.253)
나는 짙은 안개에 휩싸인 채 서서 젖니를 잡아당겼다. 갑자기 톡 하고 젖니가 빠지면서 입안에 피 맛이 번져나갔다.
손바닥에 젖니를 올려놓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p.345)
“아버지는 세상에는 해결하지 않는 게 좋은 문제도 있다고 했어요.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그런 거라면 나는 상처 입게 될 거라고.”
“그렇게 말했지.”
“그걸 알 것 같은 기분이에요. 하지만 해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p.417)
@jakkajungsin 작가정신의 작정단12기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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