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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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캐나다로 대학 유학을 떠난 딸과 브라질에 남은 엄마.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매일 밤 켜지는 스카이프 화면이다. 함께 마시던 커피와 따뜻한 치킨 수프를 대신하는 것은 노트북이 내뿜는 푸른 빛 뿐이지만, 그 빛은 물리적인 거리를 조금씩 지워낸다. 이 소설은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엄마와 딸이 서로의 하루를 견디고,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놀라울 만큼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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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엄마한테 약속하지?", "나는 점점 더 나다워 지고 있어.", "우리 딸이랑 진짜로 떨어진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어." 작품 속 문장들은 거창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다. 서로를 걱정하고,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시간들이다. 손톱이 자라고 다시 깎이는 시간, 프라이팬에서 달걀이 익는 소리,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까지. 작가는 거대한 사건 대신 사소한 일상으로 사랑의 깊이를 증명한다.


이 소설은 자녀의 독립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부모의 독립을 함께 말한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 어쩌면 독립이란 서로를 놓아주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믿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조금 삐딱한 마음으로 읽었다. 기억 속에서 엄마로부터 한 번도 따뜻한 포옹을 받아본 적 없는 K장녀인 내게 이 소설은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다. 정말 이런 모녀가 있을까, 내 이야기는 왜 이렇지 않을까. 아름다울수록 현실과 멀게 느껴졌고, 그만큼 부러운 마음도 컸다.


그럼에도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그려낸 엄마와 딸의 애틋함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에게 없는 사랑이라서 낯설었을 뿐, 누군가에게는 분명 현실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 엄마가 떠올랐다. 소설 속 치킨 수프처럼 나에게도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들이 있다. 없는 살림에도 먹성좋은 삼 남매를 먹이느라 애쓰던 엄마의 밥상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보다 배불리 먹이는 것이 먼저였던 사람. 그때는 왜 그렇게 무뚝뚝한 엄마라고만 생각했을까. 이제 와 돌아보니 사랑을 표현할 여유보다 하루를 버텨내는 일이 더 절박했던 시간이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엄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모마저 떠난 뒤에는 더욱 그렇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촌 언니들과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엄마와 이모를 다시 불러낸다. 기억을 나누는 일은 떠난 사람을 다시 살아오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지금의 나를 이해하게 된다.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후회였다. 

'엄마도 그랬을까.'

나는 왜 늘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미뤘을까. 왜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을까. 아이를 낳고 키워 성인이 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소설은 내게 엄마를 이해하게 하는 이야기이자, 딸이었던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감싼 것은 노트북 화면의 푸른 빛보다 엄마라는 존재의 온기였다. 몸은 멀어질 수 있어도 마음은 끝내 함께 머문다는 것. 사랑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매일의 안부와 기다림, 함께 먹었던 음식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이 소설은 조용히 전한다. 

200여 페이지 남짓 한 이야기지만 그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마음이 먹먹한 이유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딸에게, 그리고 모든 엄마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이키다서평단 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dasanchaekbang

@ekida_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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