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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평점 :

[광고] 우리는 왜 소설을 읽을까.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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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꿈』과 『예수의 아들』로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데니스 존슨.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고 두 차례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평단과 독자의 찬사를 받은 그는 2017년 간암으로 투병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원고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 완성한 마지막 소설집이 바로 이 책이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며 남긴 말은 단 한 문장.
"그 무엇도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그 말은 어쩌면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삶과 죽음이 뒤섞인 기묘한 순간들을 무심한 얼굴로 바라본다. 알코올중독자, 노작가, 기억이 흐려진 사람들, 삶의 끝자락에 선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동정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살아가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인물들의 모습 속에 자기 자신을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삶을 되돌아보며 느꼈던 회한과 기억들이 인물들의 면면마다 깊숙이 배어 있다
"이제는 내가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잠시 책을 덮었다. 살아온 시간이 앞으로의 시간보다 많아지는 어느 시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갈까.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알츠하이머로 기억과 정체성을 잃어가는 리즈가 오직 한 사람, 링크만은 기억하는 모습이었다. 미래도 과거도 사라진 세계에서 끝내 남는 것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친절하지 않다. 이야기는 갑자기 튀고, 설명은 생략되며, 장면들은 꿈처럼 이어진다. 처음에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복잡한 생각들이 아무런 순서 없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래서 한 번 읽어서는 쉽게 붙잡히지 않았다. 의미를 찾으려 애쓸수록 더 멀어졌고, 오히려 의미를 내려놓았을 때 문장들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미국식 유머가 불쑥 고개를 내미는 순간들이 있다. 피식 웃다가도 곧 삶의 허탈함과 마주하게 된다. 웃음과 허무가 함께 존재하는 이 묘한 균형이 데니스 존슨만의 문체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은 결국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조용한 메시지처럼 읽혔다. 무엇도 건드리지 말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더 잘 살아라", "다정하게 살아라" 같은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기억은 희미해지며, 죽음은 늘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냉정함이 오히려 삶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몇 번이고 문장을 곱씹으며 읽어야 했고, 아마 10년 뒤 다시 펼치면 또 다른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춰 설 것 같다.
무엇보다 이 한 권을 덮고 나니 『예수의 아들』과 『기차의 꿈』을 비롯한 데니스 존슨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한 작가의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것. 타인의 삶을 따라가다 결국에는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좋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소설이었다.
#이키다서평단 으로 함께 읽었습니다.
@dasanbooks
@ekida_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