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멀버리 - 오디나무 위에 두고 온 이름
로사 권 이스턴 지음, 권채령 옮김 / 서삼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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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미영에게 바란 건 단 두 가지였다.

흩어진 딸 보배를 다시 만나는 것,

그리고 딸이 배워서 자신처럼 속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일본으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가장 아끼던 옥비녀를 건넸다.


#화이트멀버리 #로사권이스턴 #서삼독


그날 이후 미영은

조선인 ‘미영’이 아닌

일본인 ‘미요코’로 살아가게 된다.


이름을 바꾸면 덜 외로워질까.

기도를 하면 괜찮아질까.


하지만 그 선택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우는 일이었다.


들키면 차별,

숨기면 죄책감.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를 떠도는 삶.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감각이었다.


고향을 떠났지만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니고,

새로운 땅에 왔지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상태.


몸은 일본에 있지만

삶은 늘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처럼 살아야 하는 삶.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완전한 일본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외로움은

단순한 타향살이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매일의 생존과 맞닿아 있는 삶.


이름 하나가

생존의 도구가 되는 세계.

그 안에서 미요코는

자신을 지우고 또 지우며 버텨낸다.


가난과 가부장제, 식민지라는 현실 속에서

여성의 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밀려남에 가까웠다.



그 이동은 꿈이 아니라

쫓겨남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라

‘강제된 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찾아온 사랑은

잠시 그녀를 한 곳에 머물게 했지만,

전쟁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떠나야 하는 삶.

다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


디아스포라의 삶은

끝내 ‘정착’이 아니라

끊임없는 이동과 상실의 반복이었다.


이 소설이 더 깊이 다가오는 이유는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했던 삶이라는 점이다.


기록되지 못했던 이주,

말해지지 않았던 여성의 시간들,

이름 뒤에 숨겨졌던 정체성.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삶으로 복원된다.


미영에게, 미요코에게

끝까지 남아 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완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도

끝내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


그리고 또 하나—

작은 오디나무 공책에 남긴 기록.

디아스포라의 삶에서

글쓰기는 ‘증명’이자 ‘저항’이었다.


나는 여기 있었다는 것.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 기록은 결국

손녀의 글로 이어져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건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흩어지고, 지워지고, 잊혀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고,

몇 번이나 숨이 막혔고,

마지막엔 오래 남았다.


그저 한 곳에 머물러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한 소녀의 삶.

그 소박한 바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해야 할 이야기였다.


“이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바로 ‘우리의 이야기(history) 한 친구가 내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냐고 물어서, 그 이야기는 나의 첫 책에 담겨 있다고 답했다. <화이트 멀버리>는 나의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에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이다.”_작가의 말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작가 추천


도서와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seosamdok.official

미요코는 자신이 둘로 갈라진 것 같았다. 하라모토의 말대로 겉으론 일본인 행세를 하지만, 핏줄은 여전히 조선 사람이다. 사람이 이름을 바꾸면 속도 바뀌는지 오랫동안 고민해왔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고, 어느 쪽도 온전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 P119

미요코는 더이상 자신이 알던 조선인이 아니었다. 과거의 자신과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자각할 때면 슬픔이 밀려왔다. 익숙했던 것들과는 멀어지고, 후회와 그리움만 남은 것 같았다. 여기가 인생의 막다른 곳은 아니겠지? 미요코는 지금과는 다른 삶, 더 나은 삶을 간절히 원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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