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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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기억하기>

우리가 어렸을 때,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전화기의 번호판을 돌릴 수 있었다. 엄마 사무실, 소아과 의사. 학교. 좋아하는 피자집. 물론, 이제 우리가 아는 전화번호는 없다. 내 말은, 기억하는 번호가 없다. 내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전화번호도 거의 알지 못하며, 심지어 두 아이에게 각자의 전화번호가 있다는 사실조차 믿을 수 없다. (p.134)

 

나는 우리 가족의 주민 번호, 계좌 번호, 각종 온라인 비번 등을 외운다. 심지어 카드번호도 외워서 쓰던 때가 있었다. 자주 사용하다 보니 외워진 것. 그러나 지금은 둘째의 전화번호가 우리 가족의 연번이 아니라서 외우지 못한다. 휴대폰에 즐겨찾기로 되어 있으니 굳이 기록하거나 외울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런데 아이를 생각하면서 외워보고 싶어졌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전화해 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목소리를 듣고 싶은 내 진심이 더 가닿지 않을까.


<도서관 서지 카드>

해독 불가능한 일련의 숫자와 우스꽝스러운 줄거리 요약으로 이루어진 도서관 서지 카드는 필요한 책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길을 잃기도 했다. (...)

도서관에 가서 서지 카드를 살펴본 다음 책더미에 들어가 책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온라인으로 책을 예약하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갈 때 이메일 알림을 박는다.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더 좋은 책을 찾을 수도 있었던 서가에서의 모험을 더는 할 수 없다. (p.265)

 

고등학교 시절 학교 지하에 엄청 큰 도서관이 있었다. 그곳으로 숨어들어 다양한 책들을 구경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러다가 만난 영웅문, 태백산맥 등 한창 공부해야 할 때 소설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왜 할리퀸이 아니라 무협지와 대하소설에 빠져 있었을까. 그곳에서 나는 무심코 펼쳐 든 책에 빠졌고 지금도 그때 그 공간에서 읽었던 책을 잊지 못한다. 소중한 기억. 이것도 저장.

 

끊임없이 연결된 지금,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는 연락이 끊기거나 물리적,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 없다. (p.319)

 

촘촘히 연결된 지금, 오히려 혼자 있기가 더 어렵다. 헬스장에 들어갈 때부터 앱으로 출석 체크하고, 스마트워치를 차고 운동을 하며 매 순간 심박수를 재고 몇 칼로리를 소모하는지 얼마나 걷는지 나는 공유된다. 운동하고 나오면서 사는 음료나 음식들은 카드로 계산되니 또 나의 데이터는 공유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조차 GPS에 연결되어 나의 길은 공유된다. 지금도 이렇게 리뷰를 쓰고 SNS에 올리는 순간 또 공유되겠지.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시간뿐이 아닌 온라인에서 만난 이들과의 만남도 나는 기록하고 싶다. 책으로 만나서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성장하고 치유되고 웃음 짓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매 순간을 기억하는 것.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이 책은 기억의 소중함을 내게 말해준다.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맞추는 시간도 소중하고 온라인상에서의 만남도 소중한 것이 지금의 시대이다. 내 소중함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기쁨을 나는 즐길 테다. 그러다가 잠시 옛 기억에 소환되기도 하겠지만 지금이 하루만 지나도 그리워질 터이니 지금을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기록하고 또 기록하려면 많이 바빠지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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