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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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은 30여 개국의 작가들이 함께 묵으며 리딩, 강연, 토론 등 여러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2023년에 참여한 문보영 시인의 아이오와 일기다. 3개월간 가을부터 겨울 초입까지 아이오와에서 다른 나라의 여러 작가와 함께한 다양한 작업과 여행, 일상을 엮었다. 한국 이름의 문을 이름으로 ‘Moon’이라 불리며 작가 채팅방에서는 초승달, 반달, 보름달, 슈퍼문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지냈다고 한다. 작가님의 바라보는 곳의 모습이, 사람들이,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은 마지막 페이지이다.

 

작가님은 여행지에서는 책을 찢어서 읽으며 몇 페이지의 상실로 또 다른 이야기를 짓게 되고, 어떤 페이지는 앞뒤가 뒤집혀 문장이 이어지지 않기에 시적인 문장이 탄생한다고 한다.

책이라는 것을 꼭 처음부터 정독하고 완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다소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런 작은 균열이 시가 된다니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작가님이 묵는 호텔은 들판과 강이 인접해 있어 자주 그곳을 거닌다. 낡은 호텔의 벌어진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이가 다 빠진 우리 할머니의 미소라고 표현하는 오릿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녀는 방수 영혼을 지녔고 살인자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며 비는 아름다워라고 말하기도 한다.

 

낮에는 들판을 등지고 세상에 파묻혀 살고, 들판을 잊는다. 밤이 되면 세상을 등지고 들판으로 돌아간다. 밤에는 세상과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균형이 맞으니까’(p.152) 일기라고 쓰고 나는 스토리가 있는 시라고 읽겠다. 아름다운 문장들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아이오와의 가을과 겨울의 들판을 걷는 상상을 한다.

 

최승자 시인의 아이오와 산문집을 보고 이곳이 더 궁금했다고 하는 작가님에게서 음, 덕후라는 묘한 동질감도 느껴지기도.

 

요즘 나의 화두는 나를 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말로 상처받고 참다가 나는 곪아 터져 버렸다. 내 상태를 아는 것. 그동안 참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나를 병리적으로 아프게 했다. 몸이 신호를 보내도 몰랐던 내가 참 바보같이 느껴졌다.

최근 읽은 책 중에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가족의 두 얼굴>이 있었다. 읽고 많이 울고 아팠는데 그건 나를 직면해서였다. 진짜 삶을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일까. 문보영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자유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 내가 얽매여있던 관습의 무게와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아직 나아가는 길이지만 나는 하루하루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믿는다.

 

삶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가지 게 된 아이오와 프로그램을 작가님은 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행복해도 되는 사람임을, 그러기에 내가 계속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일 테니. 누군가에게 지금과는 완전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만나는 어디쯤일까. 작게 찍은 점들이 이어서 가느다란 선이 되어 나를 데리고 미래로 간다. 진짜 삶을 발견하기 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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