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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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신이경은 엄마가 죽음으로 외할아버지를 따라 외갓집으로 온다. 이모, 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네 명의 밥상을 차리지만 혼자 밥을 먹고 어두운 방에 매일 혼자 남겨진다. 식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외할아버지는 삼촌과 함께 하루 종일 벽돌공장에서 모래가 많이 섞인 벽돌을 만들고, 이모는 농협에서 남의 돈을 센다.

 

외가쪽 사람들은 대체로 말이 없는 편이다. 아예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같다. 그들이 말을 할 때는 서로 뺨을 후려치며 싸울 때가 거의 전부다.’ (p.16)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 화자의 외로움이 전해지는 문장들이 서걱서걱 모래가 씹히는 듯 마치 할아버지의 벽돌공장에서 나는 사막의 냄새가 코끝으로 스미는 것 같다.

 

나에게 가족이 생겼다. 밥상을 차려놓고 식구들을 기다린다. 상 위에는 네 벌의 수저가 놓여 있다.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아침이면 혼자 어두운 방안에 남겨진다. (p.13)

 

책 속의 화자가 사는 동네의 강물이 언저리부터 썩어가고 악취가 풍긴다는 문장이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여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샛강은 언저리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다. 뱀처럼 가늘고 긴 강이다. 이곳은 늘 습기로 가득 차 있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고즈넉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을씨년스럽다. (p.14)

강은 언저리부터 썩어가고 있다. 악취가 날로 심해진다. (p.20)

저녁인데도 거리에는 뿌옇게 안개가 피어오른다. 지독한 악취가 풍긴다. 이 모든 것은 강 때문이다. (p.33)

 

가족이라는 혈연으로 묶여 떠나고 끊어내지 않으면 계속 이어지는 가난과 불행의 고리가 숨막히게 죄어오는 느낌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서로 크게 다투어도 괜찮아진다는 말은 예전 말이지 않을까.

 

불행은 우성偶性이고 행복은 열성劣性이다. 그래서 불행은 유전되지만 행복은 유전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아도 불행해지는데, 노력해야만 행복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p.107) 는 문학평론가 김미현의 말에 절망과 희망을 함께 느낀다.

 

하루 두 번 기차가 출발하는 기차역을 서성이는 삼촌과 화자는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고 결국 남아 있게 된다. 먼저 떠난 이가 행복할지 남은 이들이 행복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 남은 이들이 만들어가는 가족은 화자가 가꾸는 꽃밭처럼 알록달록할 것이라 믿고 싶다. 부디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고 밝은 나날들이 이경에게 펼쳐지기를. 그러함으로 우리도 희망을 갖게 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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