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 레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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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사회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 가해자는 오히려 큰소리치고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숨기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그런 웅성거림이 듣기 싫고 주목받는 것이 두려워서.

 

13살 아이가 엄마가 아빠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충격적이다. 그전부터 사건의 전조는 있었다. 아빠의 꾸준한 학대와 폭력, 가스라이팅. 아빠는 엄마에게 집착하고 괴롭히고 폭력을 가하고 결국 죽였다.

 

아이가 더 힘든 건 아빠가 아이에게는 다소 다정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고 자라던 아이의 눈앞에서 아빠는 엄마를 칼로 여러 번 찔러서 죽였다.

 

이것은 우발적 사고가 아니다. 가정 안에서 일어난 가정 폭력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다. 문을 닫고 들어간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집의 일이라며 애써 외면하지 않았던가.

 

어릴 적 엄마에게 폭력적인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여 너무나 힘든 소설이었다. 소설이지만 마치 내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저자는 내 안의 힘들었던 것들을 꺼내어 문장으로 쏟아낸다.

 

동생은 그를 원망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았지만, 그들을 이어주는 모든 것, 여전히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모든 것을 강물에 던져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바로 그런 모순이 레아를 망가뜨렸다. (p.161)

 

그는 여전히 내 아버지였고, 마지막까지 그럴 것이고, 우리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고,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고, 감정이 있었고, 그 감정은 큰불로 소실되었지만, 완전히 꺼지지 않은 재가 남아 있었다. (p.202)

 

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의 상흔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그것은 생채기 정도가 아닌 아주 큰 흉터가 되어 어떤 계기가 되면 폭발할 수도 있다. 일상 속 불쑥 올라오는 힘든 감정을 다독이며 살아야 할 화자와 레아를 보며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사실,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겪었던 트라우마도 사라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충격이 가한 폭력은 이상하게도 온전히 남아 있었고 악몽도 줄지 않았다. (p.221)

 

우리는 이 사건을 치정이 아닌 사회적 사건으로 보아야 했다. 우리는 비극으로 끝난 부부싸움이 아닌, 지속적인 폭력과 공포가 어디로 치닫는지에 관해 말해야 했다. 살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내세우며 지배하려는 한 남자의 욕구에 관해 말해야 했다. 눈이 먼 사회를 말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에 이름 붙이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해야 했다.

(p.203)

 

피해자는 투명인간이 되고 이 사회는 마치 아무 일 없이 안전하다는 듯이 흘러간다. 우리는 그런 일을 쉽게 잊고 소리 내어 말하기를 꺼린다. 내밀한 가정 안에서 일어난 폭력이 살인까지 가는 동안 많은 신호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외면하기도 무시하기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 한다. 가장 내밀한 곳에 가장 예리한 방식의 폭력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괜찮지 않으니까.

 

읽는 내내 힘들었지만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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