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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스위치 - 최신 과학으로 읽는 후성유전의 신비
장연규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10월
평점 :

‘생긴 대로 살아라’는 옛말이다. 타고난 유전자만으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면? 그 궁금증을 파헤쳐보는 후성유전학의 세계 <유전자 스위치>이다. 좀 어렵지만 읽다 보면 재미있어지는 신비로운 후성유전학의 세계이다.
후성유전은 우리몸을 구성하는 체세포에 새겨진 후성유전적 변화가 모세포에서 딸세포로 전달되는 세포간 유전을 말한다. 생식세포에 새겨진 후성유전적 정보는 세대간에 유전되기도 한다. DNA가 아닌 후성유전 조절 시스템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후성유전학이 기존의 유전학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음식, 약물, 화학 물질등의 환경 요인은 생식세포를 포함한 모든 세포에 후성유전 변화를 새긴다는 사실을 초파리나 설치류를 통한 연구로 알게 되었고, 세포에 새겨진 후성유전적 변화는 개체의 형질 변화를 일으키며, 특히 생식세포에 새겨진 후성유전적 변화는 자손에게 대물림된다. 또한 유아기에 겪은 경험으로 생긴 후성유전적 변화는 뇌에 각인되며, 생식세포에 생긴 변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손에게 유전된다. 인간의 경험이 뇌에 각인된다는 것은 사춘기 이전의 성장 환경과 교육 환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일란성 쌍생아는 DNA가 같아도 다른 형질을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똑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발생 과정의 후성유전적 변화로 태어나는 순간부터도 형질이 완전히 같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도 후성유전적 변화로 인해 쌍둥이의 형질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쌍생아의 형질의 차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일상이나 노출되는 환경에 따라 형질 차이가 점점 커지는데 이는 후성유전적 변화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쌍둥이는 어렸을 때보다 나이가 들수록 구별하기가 쉬워진다.
후성유전은 유전자가 같아도 선택과 노력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학문이다. 태어난대로 살아진다면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는데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하니 좀 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유아기의 아이의 양육환경이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에서 더 책임감이 느껴졌다. 개인의 노력뿐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올바른 양육환경을 위한 부모교육도 절실하게 생각된다.
최근 <소년을 읽다> 책모임 중 청소년의 폭력의 정도가 심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원인이 뭘까 고민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원인은 한가지가 아니겠지만 입시위주의 경쟁적인 시스템과 스트레스의 과중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후성유전학을 읽으니 어떤 후성유전적 정보가 우리의 DNA에 새겨져 세대를 거쳐 유전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후성유전학의 발전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학문이지 않을까. 서로를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지금, 이 책이 주는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후성유전학이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기 위한 학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