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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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을 배경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의 오랜 역사적 갈등이 소설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아일랜드 퀸턴가 집안의 남자와 결혼한 영국 여성 애니 우드컴으로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킬네이에서 가족들과 살던 소년 윌리 퀸턴은 블랙 앤즈 탠즈 군인들의 학살로 아버지와 두 여동생을 잃는다. 사건의 생존자로 살아남은 어머니와 고모들은 그 후 일상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윌리는 학교와 집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어느 날 찾아온 이모와 사촌 메리앤으로 인해 윌리는 삶의 희망을 갖는데 그 또한 잠시일 뿐 윌리의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암울한 현재를 마주하고도 행복했던 과거의 공간인 킬네이로 회귀하려 했던 윌리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었는데 비극으로 치닫는 전개에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또한, 홀몸이 아닌 채 그를 찾아온 메리앤을 마을 사람들 모두 돌려 보내려 애쓰는 모습들도 기억에 남는다.

 

가혹한 삶을 살아내고 또 그들의 그런 삶을 지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헤매는 윌리, 그를 기다리는 매리엔, 과거를 알고 싶어하는 아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슬픔 속에서 위로 받기를, 하느님의 말씀이 아일랜드에 임하길 ’(p.322) 간절히 기도하며 일생을 보낸 조세핀에게서 그들의 마음이 엿보였다.

 

전쟁과 내전으로 할퀴어져 상처 난 그들을 보며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버텨내는 것이라는 것. 그 바탕에는 서로를 위하고 보듬는 사랑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끝까지 긴장하고 읽어 내려간 소설 <운명의 꼭두각시>였다.

 

-킬네이 가로수 길의 크고 하얀 대문이 녹슬지 않았기를, 불에 탄 정문 옆집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기를.

 

-어둠을 응시하며 방해받지 않은 채로 두는 편이 나은 것이 무엇일지, 그들이 내가 영국으로 가져갈까 봐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곱씹었다.

 

-“내 존재의 모든 세부, 내 몸의 모든 혈관, 내 모든 친밀한 부분이 눈을 감고 쓰러지고 싶게 만든 그 부드러움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hanibook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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