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 4인 가족의 이야기로 현실 정치를 버무려내어 더 실감나는 이야기다. 대선이 있었던 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지금에 발 딛고 있기에 더 공감되고 날카롭기도 하다. 꼰대가 되어버린 전직 대학교수 아버지 영한, 전직 기자 출신으로 워커홀릭이었던 엄마 정희, 동성 애인과 독일로 떠나버린 딸 하민, 인디 밴드를 하고 가출한 아들 동민이 이들이다.

 

윤이 집권한지 1년 밖에 안되었는데 10년이 된 것 같다는 영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우리 세대가 유난히 정치적이라는 것도, 자기답게 살고 싶은 하민의 답답함에도 공감이 갔다. ‘사라진 꿈, 깨진 가족, 오지 않는 기회, 안정에 대한 욕망과 안정에 대한 두려움, 동경하는 마음과 거부하는 마음, 곧 지나가버릴 젊음. (p.169)’을 이야기하는 동민의 절규에 젊은 세대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족 안에서 정치적 다름으로, 성 정체성, 사회적 문제들로 서로 부대낌을 소설 한권에 녹여 낸다. 정치적으로 집단 우울증에 빠진 지금 저자는 나는 사람들의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 가지는 않을 거야.”(p.329)를 통해 절망보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어 한다. 나도 또한 그렇게 믿고 싶다. 정치적 현실을 사뿐하게 유쾌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보시라. 나 또한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었는데 잠시나마 이 책을 읽고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문학이 주는 힘을 제대로 느껴보는 시간을 준 <그리고 봄>이었다.

 

이번 대선은 정희네 집에서도 전쟁이었다. 44각의 열전이었다. 그나마 민주당 경선이 끝나 후보가 정해지고 정희가 경선 결과에 승복하면서 부부는 하나가 됐지만, 유권자로서 두 번째 대선을 맞는 딸은 부모의 설득에도 끝내 심상정 지지를 굽히지 않았다. (pp.13~14)

 

“4인 가족이 이렇게 제각각인데. 대통령은 어떻게 하나. 나라를 가지런히 운영하는 건 당최 불가능한 거지.” (p.24)

 

페북에서 정희 세대는 온통 나라를 구하거나 지구를 구하는 얘기들이다. (p.58)

 

하지만 서른은 판타지와 결별하는 나이, 이제 내 인생은 시시해지는 일만 남은 걸까. 책임에 가위눌리는 일만 남은 걸까. 집과 회사 사이의 셔틀인생, 연봉과 승진에 목을 매는 따분한 군상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걸까. 또는 워킹맘이라는 고단한 트랙에 올라타서 무면허 엄마 노릇을 하게 되는 걸까.(p.97)

 

나는 내 파트너도, 일도, 자유롭게 선택해 보고 싶어. 내가 사는 나라도, 사회도, 내 맘대로 골라 가져보고 싶어. 여기가 좀 갑갑해. 사람을 틀레 집어넣으려 하고. 고정관념들이 숨 못 쉬게 할 때가 있어.”(p.118)

 

그곳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경건함도 없었다. 158명의 죽음 앞에서 어찌 저토록 무례할 수 있나. 분향소를 떠난 때 영한은 모욕감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p.255)

 

아홉 달 자궁에 품었다 세상에 내보낼 때처럼 30년 내 품에 품었던 하나의 세계가 독립을 하고 있다. 딸이 이제 내 소속이 아니구나. 내 관할 밖에 있구나. 정희는 한편으론 썰렁하고 착찹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번민과 조바심 한 뭉치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딸과 엄마가 동시에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다. (p.3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